[이상일의 정치 깊이보기]5.18 기념곡 논란에 담긴 함의

[the300]

편집자주the300이 여론에 나타난 민심 흐름을 분석하고, 이를 통해 우리 정치 현상들을 한단계 더 깊이 들여다보는 '이상일의 정치 깊이보기'를 연재합니다. 필자인 이상일 아젠다센터 대표는 여론조사 분석 전문가로 TNS코리아 이사, 청와대 행정관 등을 지냈습니다.

 

이명박 정부 출범 후 5.18 기념행사에서 제창하던 ‘임을 위한 행진곡’이 합창단 합창으로 바뀌었다. 행사 참석자 모두가 함께 부르는 제창에서 합창단의 공연 노래로 바꾸고 ‘부르고 싶은 사람은 따라 부르는’ 형식으로 바뀐 것이다.

제창을 합창으로 바꾼 2009년부터 해마다 5.18이 다가올 때마다 임을 위한 행진곡을 아예 5.18 기념곡으로 지정해야 한다는 주장부터 합창이 아닌 제창으로 바꿔야 한다는 요구와 반대논리가 뒤엉키는 논란이 거듭되고 있다.

올해도 예외는 아니다. 지난 13일 20대 국회 신임 원내대표단이 박근혜 대통령과 만난 상견례 자리에서도 5.18 기념곡 지정 및 제창 문제가 회담 테이블에 의제로 올랐고, 박대통령은 ‘국론 분열이 생기지 않는 좋은 방안’을 마련할 것을 지시하겠다고 밝혔다.

결과는? 기존 방식대로 합창단 합창으로 기념식을 진행하겠다는 것이 보훈처의 입장이고, 20대 국회에서 ‘협치’를 위해 노력하겠다던 두 야당은 5.18 기념곡 문제를 이런 식으로 처리하는 것은 협치 대화의 정신을 무시한 것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국내외 산적한 현안들을 행정부와 의회가 협력해 풀어가는 방안을 논의하기 위한 첫 상견례 자리에서 5.18 기념곡 문제를 꺼내야 하는 야당의 사정도 딱하지만, 2008년까지 별 문제없이 부르던 노래 한 곡이 무슨 대단한 赤化歌라도 되는 것처럼 절대불가를 외치며 완강한 정부를 보는 심정이 더 답답하다.

새누리당 신임 원내대표는 보훈처의 결정이 유감스럽다며 재고를 요청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그 결기가 반드시 이 문제를 풀고 가겠다는 정도로 강해 보이지 않는다. 지난 수년간 그랬던 것처럼 비슷한 패턴으로 5.18 당일 기념식을 넘기고 보자는 정도의 정치적 수사로 읽힌다.

당장 5.18이 내일모레로 다가온 상황이니 아마 별다른 변수가 없다면 올 해 5.18 기념식도 임을 위한 행진곡 갈등에 묻혀 정부주관 기념식은 그것대로 5.18 단체들이 주관하는 행사는 별도로 열리는 반쪽짜리 행사로 치러질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노래 한 곡을 어떤 행사에서 모두가 부르느냐 아니냐 하는 것이 그다지 중요한 문제로 보이지 않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난 총선에서 나타난 민심과 보수 지지기반의 균열, 새누리당 참패의 각도에서 이 문제를 조명한다면 그렇게 녹록한 문제는 아니다.

5.18 기념곡 문제 때문에 누군가 새누리당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고 또 유입되지는 않겠지만 이런 이슈를 다루는 태도를 보면서 어떤 정당, 정치세력에 대한 이미지가 형성-고착되고 다른 문제까지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사안을 바라보는 여론은 어떨까.



리얼미터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기념곡 지정이든 제창 재허용이든 찬성 여론이 50%를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 오랜 기간 반복해서 갈등 이슈로 부상한 문제라 여론도 어느 정도 임을 위한 행진곡을 둘러싼 이슈와 입장은 정리가 된 사안으로 이해한다면 이런 여론은 크게 변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주목할 부분은, 특히 새누리당과 현정부가 주목해야 할 부분은 정치적 입장에 따라 이 논란을 이해하고 찬반 태도를 취하는 지지층-비토층이 아니라 중간지대에 위치한 국민들이 어떤 태도를 보이고 있느냐 하는 부분이다.

새누리당이 총선에서 대패한 서울과 수도권, 40대와 50대, 중도층 유권자들의 다수는 임을 위한 행진곡을 기념식에서 제창하도록 하거나 아예 기념곡으로 지정하는 데 찬성하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이들 지역, 계층의 대통령 지지도와 정당지지도를 한 번 살펴보자.




5.18 기념곡 논란에 대해 정부 입장에 부정적 태도를 보인 중도층에서 대통령 직무수행 긍정평가율은 21%였고 새누리당 지지도는 20%에 불과했다. 중도층에서 대통령 직무수행 부정평가율은 68%에 달했고, 새누리당은 3당중 중도층 내에서 정당지지도가 3위로 내려앉았다.

아직 보수가 우위를 보이고 있는 50대를 보자. 50대의 국정지지율은 40%고, 새누리당을 지지하는 비율이 43%로 아직은 ‘버틸만한’ 상황으로 보인다. 그러나 50대의 5.18 기념곡 문제에 대한 여론은 40대 이하, 중도층에 가깝게 수렴되는 양상이다. 이런 식의 ‘보수의 선택’이 계속되는 흐름에서도 50대가 여전히 보수의 지지기반으로 유지될 수 있을까.

과거 세대간 이념대립 구도에서 중간 세대로 평가받던 40대는 이미 보수에 완연하게 등을 돌렸고 이슈(5.18 기념곡 논란)와 정치정서(국정지지도, 정당지지도) 양 쪽에서 모두 2030 세대와 동질화된 모습이 보인다. 보수가 다시 되찾아 오기 힘든 정도의 완강한 비판정서가 엿보이는 수준이다.

보수 정치세력은 그 동안 진보 야당에 비해 ‘상대적으로 안정감이 있다’, ‘역량 면에서는 그래도 보수가 낫다’는 평가를 받아왔고 그런 기류 덕분에 보수적 색채를 강화하면서도 과거에는 여론이나 선거 성적표에서 야당에 비해 상대적 우위를 지킬 수 있었다.

그러나 당내 극심한 갈등과 비민주적 당 운영(총선 공천과정)이 도를 넘어서면서 중도 성향 보수 지지층이 대거 이탈했고, 양당 체제에서 3당 구도로 바뀐 선거환경에서 이들 유권자는 더 쉽게 제3의 대안을 선택했다.

물론 지난 총선에 나타난 성적표가 그대로 각 당의 힘으로 연결, 유지되는 것은 아니다. 보수 집권당이 싫어서 이탈해 온 표를 ‘내 표’로 만드는 것은 또 다른 과정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새누리당과 보수 집권세력이 ‘5.18 기념곡 정도의 문제’ 조차 극복해 내지 못하고 민심과 동떨어진 선택을 계속 해 간다면 총선을 통해 재편된 정치지형은 다음 대선까지 그대로 이어질 수도 있을 것이다. 진보를 표방한 두 야당이 보수 집권세력보다 더 큰 패착만 두지 않는다면 말이다.

광주민주화운동을 기념하는 기념식에서 광주 지역민과 정치권, 시민사회 그룹이 원하는 어떤 노래 한 곡을 제창하겠다는 것을 허용할 수 없는 ‘보수의 국가정체성 지키기’. 이 노력을 이해할 수 있는 코드를 지닌 국민이 과연 얼마나 될 것이며, 그 길 위에서 새누리당과 보수세력은 어떤 활로를 찾아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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