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일의 정치 깊이보기]'빗나간 47석' 총선판 읽기에 대한 반성

[the300]

편집자주the300이 여론에 나타난 민심 흐름을 분석하고, 이를 통해 우리 정치 현상들을 한단계 더 깊이 들여다보는 '이상일의 정치 깊이보기'를 연재합니다. 필자인 이상일 아젠다센터 대표는 여론조사 분석 전문가로 TNS코리아 이사, 청와대 행정관 등을 지냈습니다.

◇새누리당 침몰의 깊이

총선에서 교차투표가 어느 정도였는지, 세대별 투표율이 얼마나 바뀌었는지 등을 놓고 분석이 활발하다. 지상파 3사의 출구조사 자료에 따르면 새누리당은 전국 253개 선거구 중 186곳에서 정당투표 1위를 했지만 당선자 수는 105명이었고, 더불어민주당은 정당투표 1위를 13 지역에서만 하고도 당선자를 110명 냈다고 한다. 새누리당이 정당투표 1위를 한 곳에서 더민주 후보가 당선된 곳이 74개 선거구고, 국민의당이 1위를 한 지역에서도 더민주는 23명의 당선자를 냈다고 한다. 일견 새누리당이 뭔가 손해를 본 것처럼 들린다. 정말 그럴까.

이번 총선에 출마했던 새누리당 후보들은 자신들을 공천해 놓고 당선을 가로막은 당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이라도 내야 할 판이다. 몇 곳의 자료만 비교해 보자. 현재 중앙선관위 자료는 지역구 후보자 득표율은 선거구 단위로, 비례대표 투표 결과는 시군구 단위로 공개돼 있다. 비교가 용이한 단일 선거구(선거구가 갑/을로 나뉘지 않은) 몇 지역의 후보-정당 득표결과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서울과 부산, 경기도의 몇몇 선거구 후보자 득표수와 새누리당 득표(정당명부 비례대표 투표) 결과다. 모든 지역에서 새누리당 득표수가 후보 득표보다 적다. 새누리당 후보가 당선이 된 지역이든 낙선 지역이든 같은 패턴이다. 보통 5천표 정도는 기본으로 정당득표가 적었고 부산 금정구는 무려 1만 7천표 이상 정당 득표가 적었다.

인구수 변화로 단순비교는 어렵지만 탄핵 역풍 속에 치러진 17대 총선의 같은 지역구 후보자 득표와 당시 한나라당 득표수를 비교해 봐도 이번 총선에서 새누리당이라는 간판은 후보들에게 탄핵 당시보다 더 무거운 ‘짐’으로 작용했음을 유추해 볼 수 있다.

부산 연제에서 낙선한 김희정 후보는 04년 총선에도 출마했었다. 탄핵 바람에도 57%를 득표하며 당선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이번 선거에서 3선에 도전한 김 후보는 패했다. 48.4% 득표였고 개인적으로 12년 전보다 1만여 표를 덜 받았다. 김희정 후보가 의정활동을 잘못했고 지역주민의 인심을 잃었을까. 그런 부분도 분명 있을 것이다.

하지만 04년에 한나라당에 5만6천표를 몰아줬던 연제구 주민들은 이번 선거에서 새누리당에 4만명만 표를 던졌다. 1만6천명 가까운 당 지지층이 마음을 바꾼 것이다. 김희정 후보는 이번 선거에서 당보다 8천표를 더 얻고도 상대후보에 3천표가 뒤져 선거에 낙선했다. 후보와 당, 어느 쪽이 더 큰 패인이라고 봐야 할 것인가.

대다수 지역에서 새누리당 후보들은 정당이 끌어 내린 마이너스 표심과 싸웠다는 뜻이고, 개인기로 당의 비인기를 극복했다는 뜻이다. 수도권에서 당선에 이른 후보들은 정말 눈물겨운 싸움을 하지 않았을까. 당이 저 처참한 공천 내전에 휩싸이지 않고 ‘제대로’ 선거를 치렀다면 최소한 후보를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걸림돌로 작용하지는 않았어야 했다. 야당세가 강한 수도권에서 새누리당 후보들은 누더기가 된 당 이름으로는 얻을 수 없었던 수천~만여 표 이상을 더 얻기 위해 사투를 벌인 것이다. 그러나 수도권 전역은 야당 깃발로 채워졌고 새누리당은 참패했다. 누구의 잘못인가?




19대 총선 및 지난 총선들과 20대 총선의 정당득표 현황을 직접 비교해도 당의 몰락, 추락의 심각성은 여실히 드러난다. 이번 총선에서 새누리당이 얻은 정당득표 총 수는 796만여 표다. 득표율로는 33.5%였다. 지난 총선보다 투표자 수는 240만명 이상 늘었지만 새누리당은 그 와중에 120만표 가까이 득표수가 줄었다. 득표율로는 10%P 가까운 대폭락이다. 생각보다 하락 폭이 작게 느껴진다면, 탄핵 역풍으로 한나라당이 몰락했던 2004년 총선과 비교하면 이해가 빠르다.

당시에도 한나라당은 760만표 정도를 득표했다. 이번 총선과 정당 득표수는 비슷한 수준이었고 득표율은 당시 선거인/투표자 수가 지금보다 적어 35.8%였다. 탄핵 역풍 때도 한나라당은 35%가 넘는 정당 득표를 한 것이다. 이번은? 33.5%에 그쳤다.

교차투표가 문제가 아니라 새누리당은 유권자들로부터 ‘폐업’ 선고를 받은 당의 현실, 추락의 깊이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해야 한다. 저 상태를 그대로 두고는 차기 대선도, 미래도 어떤 비전을 담아내기 어렵다. 그런데도 당은 선거 직후 참패의 충격에서 빠르게 벗어나 벌써부터 ‘당권 경쟁’에 돌입하려는 조짐이 보인다고 한다. 파행 공천을 이끌었던 새누리당의 공천관리위원장은 선거 후 ‘명예롭게 불출마 할 기회를 거부한 유승민 의원이 문제’라고 언론 인터뷰에서 밝혔다. “잘못된 사실은 꼭 바로잡아야 한다”는 말도 덧붙였다.

자르기로 결정한 사람에게 나는 자를 의지가 확고하니 잘리기 전에 스스로 목을 매라고 압박하면서 목을 매는 것은 명예로운 일이고 버티는 것은 불명예라는 논리다. 그(유승민)가 불출마를 택했다면 자신과 당, 정부가 모두 좋았을 것이라고도 했다. 이한구 전 공관위원장의 말이다. 지난 공천 과정을 지켜본 모든 사람이 어리둥절해 할 말이 너무 자연스럽다. 공천 파문과 이후 총선 패배를 보는 친박의 시각 일단이 드러난 것이 아니길 기대해야 할 판이다. 정치논리가 얼마나 일반의 상식에서 멀어질 수 있고 어디까지 위기에 無感해질 수 있는 것인지 신기할 지경이다.

이 정도 선거 결과면 충격을 넘어 패닉에 빠져야 할 일이고, 출구를 찾기 위해 몇 날 며칠을 당 구성원 모두가 모여 머리를 싸매고 고민해야 옳다. 진정성조차 느껴지지 않는 “준엄한 민심의 심판을 새기고 어쩌고…” 하는 말로 체면치레를 하고 어떤 고민도 읽히지 않는 비상스럽지 않은 비대위 간판을 내 건다고 될 일이 아닌 것이다.

비상대책위원회. 그 이름은 무거워야 한다. 비상한 시국임을 인정했을 때 시작되는 조직이고, 그만큼 평상하지 않아야 울림이 생겨날 수 있는 이름이다. 그런데 새누리당의 ‘원유철 비대위 체제’ 전환 소식에는 어떤 무게도 진정성도, 비상한 각오도 읽히지 않는다. 당 지도부로 총선 패배의 책임을 함께 져야 할 사람이 비대위원장으로 ‘추대’되고 당사자는 수락하고 주변에선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다. 오히려 비대위라는 단어에서조차 친박 비박 계파 같은 말들이 어른거리는 것 같다. 2004년 탄핵 역풍, 그 이전의 차떼기 정치자금 파문과 천막당사 시절. 그 시절 한나라당은 정말 비상 상황을 자인하고 어떤 변화를 모색했고 그 결과로 지금의 새누리당이 있을 수 있었다.

오만의 극치까지 보여준 후 몰락의 길로 접어든 새누리당은 1년 반 남짓 남은 대선까지 어떤 변화를 만들어 낼 수 있을까. 지금의 모습에서 별다른 변화가 없다면 그나마 남아 있던 지지층도 모래알처럼 흩어질 것이다. 전면적인 세대교체, 사람 중심의 계파 구조 혁파와 노선-정책집단으로 분화된 건강한 그룹이 당의 중심에 서는 것 같은 큰 변화를 일궈내지 못한다면 단단히 화가 나 ‘이탈한 민심’을 되돌리는 일은 요원해 질 것이다. 새누리당의 2016년 봄에서 여름 사이, 조용히 지켜봐야 할 대목이다.

Ps. '-47석' 총선판 읽기에 대한 반성

선거가 임박해 새누리당 의석을 ‘나름으로’ 추산해 보니 169석 쯤 될 것 같았다. 뚜껑을 열고 확인한 실제 의석은 122석이었다. –47. 이쯤 되면 정치 분석이나 평론, 여론분석 판을 떠나야 한다. 저런 엉터리 분석력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부끄러움보다 왜 틀렸는지가 먼저 궁금했다.

수도권 122개 선거구 중 국민의당 후보가 출마한 지역은 103곳이었고 막판 단일화로 일부 후보가 사퇴했어도 100지역은 一與多野구도였다. 다야 구도를 액면 그대로 야권 분열로 판정했고, 접전지 60여 곳 중 절반 이상을 새누리당 우세로 예측했다. 완벽히 틀렸다. 분노한 유권자들은 강남과 분당에서까지 보수여당을 심판했다. 민심의 기저에 흐르는 절망감과 분노를 읽지 못했고 공개된 여론조사의 수치에 의존했다.

과거에는 선거판 전반을 관통하는 어떤 흐름, 분위기에 예민하게 반응했던 적이 있었다. 그런데 어느덧 보수 우위의 선거결과가 반복되면서 정서적 흐름을 읽는 데 소홀해졌고, 혹시나 하는 가능성을 의심하면서도 결국 ‘야권분열 구도’라는 보이는 변수에만 무게를 실었다. 예측은 깨끗하게 틀렸다.

여론조사를 두고 말들이 많다. 유선전화 중심의 여론조사가 판세를 잘못 보게끔 한 문제도 작지 않다. 그러나 그것이 이번 총선 판을 오판한 이유의 전부는 아닐 것이다. 선거를 정당-구도-이슈 같은 것으로만 판정하려는 자세가 문제였다. 가장 중요한 유권자에 대해, 유권자들의 정서에 대해 너무 쉽게, 안이하게 접근했다. 유권자를 객체로만 분석하고 정치의 주체로 보지 않은 것이다. 반성할 부분이다.

유권자가 만들어 낸 ‘선거 혁명’. 87년 체제 이후 30여년 쌓인 정치의 적폐를 정치권이 해결할 생각을 안하자 유권자가 직접 나선 것처럼 보인다. 지역주의 극복, 인물중심 투표, 유권자발 정치・정당 다중 심판…. 20대 총선 이전에 쓰던 선거공식과 도식적 분석방법, 구조적 관점들은 이제 무용지물이 될 가능성이 높다.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하는 선거 민심이다.

헌법 1조 2항,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선언적 조문이 살아 있는 현실로 등장하고, 정치가 추상화시킨 유권자(有權者)라는 단어가 구체적 실체로 나타났다. 유권자는 쉽게 보수 몇 %, 진보 몇 % 식으로 편하게 묶고 구분한 뒤 표 계산에나 쓰는 대상이 아니라, 살아있는 생각과 고민, 행동의 주체였던 것이다. 지극히 당연한 사실을 언제부턴가 잊고 있었다. 정치만 오만한 게 아니라 정치를 바라보는 주변도 오만해졌고 나도 부인할 수 없이 그런 부류였음을 자각해야 했다. 부끄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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