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일의 정치 깊이보기]'자기발등' 자기모순 총선전략 3선

[the300]

편집자주the300이 여론에 나타난 민심 흐름을 분석하고, 이를 통해 우리 정치 현상들을 한단계 더 깊이 들여다보는 '이상일의 정치 깊이보기'를 연재합니다. 필자인 이상일 아젠다센터 대표는 여론조사 분석 전문가로 TNS코리아 이사, 청와대 행정관 등을 지냈습니다.

자기모순(自己矛盾) ; ①(논리) 어떤 명제가 주장하는 바가 그 명제의 부정을 함축하는 경우 ②어떤 사람이 자신이 한 주장을 스스로 부정하는 것.

 

#1. ‘야권 통합’ 김종인의 작전, 더불어민주당의 ‘호남 열세’ 역설을 초래하다

 

김종인 대표는 ‘야권통합’ 카드를 꺼내들어 창당 한 달도 안 된 국민의당을 뿌리째 흔들었다. 안철수 대표는 분열의 원흉이 되었고 국민의당 안팎이 통합 찬반 논란으로 들썩거린 와중에 통합파 김한길 의원은 불출마 선언 상황까지 몰려 이번 총선의 장외로 퇴장했다.

 

그렇게 시작된 야권통합 논란은 국민의당의 반대에 부딪혀 좌초되는 것 같다. 총선이 임박하면서 각 지역별로 후보 단일화라는 ‘지역별 연대’가 추진되고 있지만 당 차원의 개입과 지원 없이 후보들이 단일화 협상을 완결짓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 와중에 호남의 총선 판세가 주목받기 시작했다. 각종 여론조사가 쏟아져 나오면서 호남권 전역에서 국민의당 후보들이 더민주에 비해 우세한 흐름이 포착된 것이다. 현역의원들이 탈당 대열에 합류한 호남에서 양 당이 치열한 경쟁을 벌일 것이라는 건 예상된 수순이지만, ‘국민의당 현역 파워 vs 더민주 정당 파워’가 격돌하는 상황의 승자를 예측하기는 쉽지 않았고, 선거가 임박할수록 전국적 정당지지도에서 앞서가는 더민주로 호남의 표쏠림 현상이 나타날 것이라는 전망도 상당했다. 그런데 뚜껑을 열어 본 호남 표심은 그렇게 보이지 않는다.

 

김종인 대표의 (야권통합) 제안은→ (야권=한 몸통)임을 선언한 셈이고→ (호남 유권자의 갈등요소를 제거)해 주면서→ (더민주의 호남 탈환)은 더 어려워 진 것

 

각 지역구 후보들의 인물 경쟁력, 인지도 격차 등이 주요 요인일 것이다. 신인들을 대거 내세운 더불어민주당이 초반 고전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분석도 있다. 그러지만 그것이 초반 판세 표심의 전부일까. 꼭 그렇지는 않을 수도 있다. 김종인대표의 ‘야권통합-연대’ 제안은 뒤집어 생각하면, 더민주와 국민의당이 ‘한 뿌리’임을 선언한 셈이다. 갈라서 치열하게 싸우는 듯 했지만 두 당이 통합의 대상임을 선언한 것이고 총선 이후 대선 국면에서는 결국 ‘합쳐질 것’이라는 의미를 내포한 제안이었기 때문이다.

 

이 덕분에 호남 유권자들은 더민주와 국민의당 사이 선택이 조금 더 편해졌을 것이다. 어느 쪽을 찍든 결국 마지막 길, 대선에서는 같은 그룹으로 묶일 후보들이고 정당이니까. 김종인 대표의 통합 제안은, 갈라진 두 야당 사이에서 선택을 강요당하던 호남 유권자들이 정당을 무시하고 ‘인물 위주 투표’를 가능하게 해 준 것은 아닐까. 그 결과가 인물 경쟁력 중심 여론조사로 표출되고 통합을 제안한 더민주는 신인들을 앞세운 채 호남에서 고전하는 상황을 만든 것일 수도 있다.

 

호남 표심이 더민주 쪽으로 쏠리지 않자 김종인 대표를 비롯한 더민주 지도부가 호남에서 국민의당을 맹공하기 시작했다. ‘반역자’ 같은 극한 용어까지 동원한 두 야당의 ‘적대적 관계 재설정’은 또 어떤 정치적 후과(後果)를 내포하고 있을까.

   

#2. ‘텃밭엔 진박(眞朴)만’ 이한구의 계파 공천, ‘친박 공멸’의 씨앗을 뿌리다

 

새누리당의 수도권 정당지지도 약화 현상이 심상치 않다. 여론조사마다 다소 편차는 있지만 대체로 공천과 선거전이 본격화 한 2~3주 사이에 수도권에서 새누리당 지지도가 10%p 가까이 하락했다는 관측이 일반적이다.

 

여당이 계파 논리에 집중하면서 극한 공천갈등의 민낯을 드러냈을 때 ‘수도권 역풍’은 어느 정도 예견된 일이었다. 일부에서는 TK(대구‧경북)와 수도권에서 몇 석 손해보더라도 친박 위주의 공천을 강행하는 게 총선 후 당권과 대권 주도권 싸움에서 유리하다는 말까지 등장했다.

 

공천 막바지 김무성 대표의 ‘옥새 파동’으로 계파공천 갈등의 상징이었던 유승민, 이재오 의원 지역구에 대한 무공천이 이뤄졌지만 이번 총선의 새누리당 공천이 ‘진박 가려심기’ 공천이었다는 점은 당 내에서조차 부인하는 사람이 없을 정도의 상식이 되어 버렸다.

 

그런데 선거전이 본선에 돌입하면서 수도권의 정당지지율 약세는 물론 영남권 전역에 빨간불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탈당한 무소속 후보들이 새누리당 후보를 상대로 선전하는 것은 물론, 야당 후보들마저 대구와 부산, 경남 일원에서 새누리당 후보를 위협하기 시작한 것이다.

 

친박의 (무리한 계파 공천)은→ (공천 구도에서 물리적 승리)를 일궜지만→ (친박의 브랜드 가치를 훼손) 시키면서→ (친박의 정치적 파워)를 점점 약화시키고 있는 셈

 

그토록 심혈을 기울인 ‘진박 공천’의 수혜자들은 스스로 친박 또는 진박이라는 말을 쓰지 않기 시작했다. 친박이나 진박이라는 말이 자꾸 등장하는 것이 선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겠지만, 이런 상황의 이면에 담긴 흐름은 그렇게 간단해 보이지 않는다.

 

이한구표 공천을 통해 친박 세력은, 자파 후보들을 다수 공천하는 데 성공했지만 ‘친박’이라는 정파의 가치를 크게 떨어뜨린 것은 아닐까. ‘친박’ 꼬리표를 달고 다니는 것이 정치적으로 마이너스라는 판단이 선거 후에도 그대로 유지된다면 새누리당의 총선 후 계파 분포도는 빠르게 변형될 가능성이 있다.

 

2012년 19대 총선의 새누리당 공천도 ‘친박’이 중심이 돼 단행한 공천이었다. 그러나 친박계는 이후 당내 각종 선출직 선거는 물론 2014년 지방선거 광역단체장 후보 공천에서도 주류의 자리에 설 수 없었다. 그 여파가 이번 총선의 무리한 공천을 야기한 배경이 된 셈이다.

 

2012년에서 2016년 사이는 친박이라는 계파의 근원이자 전부인 박근혜 대통령의 힘이 극대화된 시기였다. 유력 대선주자에서 현직 대통령으로 정치적 힘을 유지한 박대통령 재임기에도 친박은 공천 당시의 계산과 선거 후 정산 결과가 달라 당 내에서조차 고전을 면치 못했다. 이제 박대통령의 임기는 중반을 지났다. 내년이면 ‘미래권력’이 정치 구도를 좌우하는 대선 시즌이 열린다.

 

지금처럼 ‘친박’의 브랜드 가치가 절하된 정치환경에서 친박의 후원을 얻고 당선된 여당의원들이 친박에 대한 의리를 지키며 ‘주류 친박계’ 파워를 유지해 갈 확률은 얼마나 될 것인가.

 

#3. ‘3당 체제 독자 생존’ 안철수 고집, ‘안철수 개인 생존’ 여건을 위협하다

 

국민의당은 결국 독자 생존의 길을 고수하는 방향으로 들어선 것 같다. 김종인 대표의 통합 제안을 거부할 당시만 해도 당대당 차원의 통합이나 연대는 아니더라도 수도권에서 지역별 연대가 활발하게 추진될 것이라는 전망이 많았다.

 

그러나 안철수 대표와 국민의당이 ‘개별 후보자의 단일화는 막지 않겠지만 당과 협의 후 추진해야 한다’며 적극 개입하기 시작하면서 그나마 협상이 진행되던 지역구들조차 단일화 추진이 쉽지 않아졌다.

 

단일화 성사 여부에 따라 승률이 크게 달라지는 더불어민주당은 다급해졌고 야권연대를 압박하고 호소하다 이제는 극한 용어를 쓰며 안철수 대표를 저주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야당의 최고위원을 지냈던 문성근씨는 더민주 후보 지원유세장에서 ‘안철수라는 괴물, 역사에 반역자가 될 것’이라는 독설을 퍼부었다고 한다.

 

‘반역자’ 같은 표현은 독재와 민주화 투쟁 시기를 지난 후 정치적 상대를 향해 일반적으로 쓸 수 있는 용어가 아니다. 그만큼 야권연대의 절실함이 배어나온 말이라고 십분 이해하더라도 반역자로 낙인을 찍은 상대와 차후 어떤 식으로든 연대나 통합을 다시 논의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문제는 더민주의 절박함은 그 당의 입장에서 표출된 것이라 하더라도, 실제 선거판세에 국민의당 독자 생존 노선이 미칠 영향이 간단치 않다는 데 있다.

 

안철수 대표의 (독자생존) 선언은→ (다야구도를 기정사실)로 만들면서→ (국민의당이 작은 활로를 확보하는 대신 수도권 야권 공멸)을 초래해→ (안철수의 정치적 생존 여건)을 어둡게 해

 

선거 결과를 예단할 수 없지만, 현재 발표되고 있는 여론조사들이 비교적 정확한 민심을 반영해 냈다고 가정한다면, 수도권의 표심은 대략 40(새누리) : 30(더민주) : 10(국민의당) 구조를 형성한 경우가 다수 분포한다. 더민주와 국민의당 후보가 힘을 합치지 않을 경우 새누리당이 승리할 지역이 크게 늘어날 수 있다는 의미다.

 

영남권 전역과 강원, 충청 등지에서 더민주나 국민의당이 확실히 우세한 흐름을 보이는 지역은 별로 많지 않다. 호남은 두 야당이 치열하게 싸우며 표심을 양분할 것이다. 하지만 어느 쪽이 이기든 그건 ‘야당 내부의 지분 재배분’에 그칠 뿐 전국 판세와는 무관하다. 수도권은 두 야당과 정의당까지 야 3당 체제가 현실화되면서 새누리당이 18대 총선 수준을 넘어서는 압승을 거둘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비례대표 의석 확보를 통해 국민의당이 일정한 생존 요건을 갖춘다 하더라도 수도권에서 야권이 궤멸에 가까운 성적표를 받아든다면 안철수 대표는 ‘정당의 활로는 확보했지만 개인의 정치적 미래는 닫힌’ 그런 상황에 처하게 되지는 않을까.

 

야권이 분열된 책임을 안철수 대표에게만 묻는 것은 타당해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분열과 통합 구도에서 ‘약자’에게 분열의 책임이 돌아가는 것은 일반적 현상이다. 의외의 결과가 나올 수도 있지만, 수도권에서 야권이 대패할 경우, 안철수 대표는 무엇으로 ‘자신의 독자 생존’ 명분을 유지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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