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일의 정치 깊이보기]너도 나도 '심판론'

[the300]

편집자주the300이 여론에 나타난 민심 흐름을 분석하고, 이를 통해 우리 정치 현상들을 한단계 더 깊이 들여다보는 '이상일의 정치 깊이보기'를 연재합니다. 필자인 이상일 아젠다센터 대표는 여론조사 분석 전문가로 TNS코리아 이사, 청와대 행정관 등을 지냈습니다.

 

더불어민주당은 이번 총선을 박근혜 정부의 경제 실패에 대한 책임을 묻는 ‘경제 심판’ 선거로 치르겠다고 밝혔다. ‘국민이 일하지 않는 국회를 심판해야 한다’는 박대통령을 총선 표적으로 정조준 하고 나선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여러 차례, 국민에 의한 정치 심판을 호소했다. 박대통령이 누차 강조하고 있는 ‘국회 심판론’은 중층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 전체 맥락에서 국정의 발목을 잡아 온 야당을 심판해 달라는 것으로 읽히는 게 상식이지만, 부분적으로는 여당 내부로도 칼끝의 일부가 겨눠져 있다. 야당은 물론 여당 내에서도 국정에 협조적이지 않은 의원들은 바꿔야 한다는 메시지가 여당 내에 이른바 ‘진실한 사람’ 논쟁을 불러일으켰고, 그 여진은 경선이 끝날 때까지 진행형으로 남아 있다.


새누리당은 현행 국회법의 3/5 규정을 이용해 국정을 가로막는 야당을 심판해 달라고 호소하는 모양새다. 180석을 넘기면 자력으로 국회법을 재개정할 수 있다. 무능 국회 책임론을 야당의 발목잡기 탓으로 돌리며 심판론을 둘러싼 전선을 여야간 구도로 명확히 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국민의당은 거대 양당 체제가 기득권을 유지하는 방향으로 정치를 몰아가고 있다며 양당 기득권 체제를 심판해 달라고 주장하고 있다. 서로 싸우면서도 기득권 구조를 형성 해 온 양당 체제의 판과 구도를 바꿔야 실질적 변화가 나타날 수 있다는 논리다. 국민의당은 야당으로 정부여당에 대립각을 세우는 선거전략이 본령이지만, 당장 정통야당 입지 경쟁에 내몰리면서 오히려 더불어민주당을 ‘기득권 정당’으로 몰아붙이는 형국이다.


이번 총선에서는 다층적 의미의 ‘심판론’들이 전개될 것으로 보인다.



기본적으로 박대통령과 새누리당을 축으로 하는 집권세력은 ‘야당의 국정 발목잡기’가 현재 경제나 각종 어려움을 초래하는 원인이라며 대야(對野) 전선에서 공조를 취할 것이다. 그러나 내부에서는 ‘국정 지원세력’과 ‘비협조 세력’이라는 구분을 갖고 총선 본선 이전에 치열한 전투가 진행중이다. 공천과 경선 결과에 따라서는 내부 갈등의 골이 더 깊어져 본선까지 영향을 미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야권은 박근혜 정부의 정책실패, 경제 무능론에 대한 공세에서 보조를 같이하며 대여(對與) 전선에서 연대의 모양새를 취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호남지역 쟁패와 정통야당의 자리를 둘러싼 야권 진영 내부의 경쟁이 격하게 전개될 수밖에 없어 ‘野 vs 野’ 구도의 싸움이 총선까지 계속될 수밖에 없다. 상호 공세의 수위가 어디까지 전개될지 가늠하기 어렵다.


국민은 여야 양쪽의 심판론, 여권내부와 야권 내부에서 서로를 겨누는 다양한 심판론을 어떻게 받아들이게 될까. 누구의 심판론이, 누구를 향한 심판론이 더 강하게 작동할 것인가를 대략 가늠해 볼 수 있는 여론지표 몇 가지를 살펴보자.


여론조사를 통해 자주 발표되는 국정운영 지지도와 정당지지도는 각 정치주체의 파워를 알아보는 가장 중요한 척도다. 취임 3주년을 지난 박대통령의 국정지지도는 여러 언론에서 발표가 됐다. 대략 40% 초반대에 걸쳐 있는 조사결과가 다수였다.


국민의당 창당 준비-초기에 대한 기대효과가 사라진 현재 여론조사에서 나타나는 정당지지 구조는 새누리당 40% 초반, 더불어민주당 20% 내외, 국민의당 10% 안팎 정도로 정리되는 흐름이다. 국민의당이 출현하면서 다소 지형변화가 있었지만 새누리당은 양당 구도 당시와 비교해 3~5%p 정도 지지율이 하락했고 더민주 역시 비슷한 정도의 지지율 감소에 그쳤다. 국민의당 지지율 10% 안팎은 양당의 지지층 일부와 무당층 일부가 합세해 떠받치는 형국이다.

국정-정당지지도 형세에서 가장 먼저 읽히는 점은 박대통령의 ‘국회 심판론’이 상당히 강하게 작동할 가능성이다. 집권 4년차에 접어들었지만 대통령 지지율은 40%를 상회하는 수준에서 안정돼 있고 새누리당 지지도와 견줘도 밀리지 않는다. 오히려 지지층의 ‘견고함’ 측면에서는 박 대통령의 지지층 구조가 한결 더 안정적일 수 있다. 이른바 30% 정도로 추산되는 콘크리트 지지층을 보유한 대통령이기 때문이다.



지난 해 ‘국회법 거부권 사태’ 당시에 이미 국회심판론이 먹혀들 가능성은 충분히 엿보였다. 여야가 합의해 처리한 국회법(행정부의 시행령이 모법에 위배되는 경우 국회가 시정을 요구할 수 있도록 한)에 대해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했다. 당시 정치권과 언론의 초기 반응은 박대통령이 과도한 ‘행정 독재’를 하는 것 아니냐며 부정적 시각이 주류였지만 여론의 반응은 달랐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에 대해 갤럽(15년 7월초 조사) 조사는 ‘찬성’ 36%, 반대 ‘34%’였고, 리얼미터(6월말 조사) 조사에서는 찬성 46.8%, 반대 41.1%라는 조사결과가 나왔다. 국민이 대통령의 ‘국회 심판’ 쪽에 손을 들어준 것이다.

총선에서는 대통령이 정치권과 직접 대결하지도, 선거에 개입할 수도 없겠지만 정치적으로 ‘일하지 않는 국회’를 국민이 심판해야 한다는 대통령의 목소리는 어떤 방식으로든 총선 지형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그것도 상당히 강한 위력을 낼 가능성이 있어 주시해 볼 부분이다.


여야가 상호 심판론을 주장하는 상황에서 초기 구도는 역시 지지층이 견고하고 지지도가 높은 새누리당쪽이 유리해 보인다. 정당지지도 구조 자체도 그렇지만 한국일보 여론조사에서 여야 심판론 공감도가 ‘여당 심판 < 야당심판’ 결과로 나타난 것은 가볍게 보이지 않는다. 지난 19대 총선을 앞두고 실시한 같은 여론조사에서는 ‘여당심판 > 야당심판’ 구조였다.


4년 사이에 왜 이런 변화가 나타났을까. 과거 집권세력은 자신들이 원하는 정책이나 법안을 밀어붙이는 경우가 많았다. 여소야대 국면만 아니라면 다수 의석을 점한 여당이 총대를 메고 법안을 강행처리했고 직권상정 카드도 쉽게 사용했다. 야당은 물리력을 동원해 이를 저지하기 일쑤였고 결국은 패자로 남았다. 야당과 언론은 ‘날치기 법안 통과’를 성토하고 집권세력은 자신들이 원했던 바를 얻는 대신 선거 때마다 국민 앞에 ‘심판의 대상’으로 서야 했다.

그러나 18대 국회가 선물하고 19대 국회 내내 논란이 계속되고 있는 현행 국회법, 일명 선진화법 체제 하에서는 상황이 전혀 달라졌다. 과반 의석을 점했지만 여당은 야당이 반대하는 어느 법안도 일방적으로 통과시킬 수 없었고 국회 전체가 ‘식물국회’라는 비난에 휩싸였다. 야당은 합법적으로 반대하는 법안을 물리력 없이 저지할 수 있었지만 그 결과로 집권세력을 ‘심판할 기회’를 스스로 차단한 꼴이 된 것이다. 그 결과가 야당 심판론이 여당 심판론보다 더 설득력 있게 들리는 상황을 초래한 건 아닐까.


국민의당은 기득권 심판론을 내걸었지만 창당 전 20% 수준에 육박했던 지지도가 10% 수준으로 절반 가까이 내려앉았다. 거대 양당을 기득권 세력으로 낙인찍으려면 그 폐해를 명확히 드러내고 제3당의 존재가치를 설득해 내야 하지만 현실은 녹록치 않아 보인다.


물론 지금의 여론은 유동적이다. 각 당의 경선과 공천이라는 예선이 마무리되고 본선에서 치열한 전투가 시작된 이후의 흐름은 아직 예단할 수 없다. 그러나 현 시점의 여론지형으로 미뤄, 야권이 제기하는 ‘심판론’이 심판론만으로는 크게 성공하기 어려워 보인다.


다가오는 총선에서 야당과 비판적 여론이 표출할 심판론에 맞서 새누리당이 어떤 변화와 정책비전을 제시하는지, 또 야당들은 자신들이 주장하는 심판론의 설득력을 높이기 위해 어떤 콘텐츠를 들고 선거에 임할 것인지 눈여겨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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