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의 "운명공동체", 유성엽 세번째 도전

[the300][국회의원사용설명서]유성엽 국민의당 의원, 호남서 민주당 후보 꺾은 이력

그래픽=이승현 디자이너

유성엽(재선, 전북 정읍) 하면 호남 무소속 재선이란 수식어가 따라 붙는다. 현재 정치구도에서 쉽지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그는 지난 연말부터 꽤 많은 조명을 받았다. 새정치민주연합 내홍의 한가운데, 문재인 대표 측에 반발해 당무감사를 거부하는 등 각을 세웠다. 탈당해서는 안철수 의원으로부터 "운명공동체"란 소리를 들으면서 국민의당에 합류했다.

유 의원 지인들은 그의 진면목이 덜 알려졌다고들 한다. 행정고시 합격 후 고향인 전북 근무를 자원, 선출직 정읍시장까지 올랐다. 행정부 출신이지만 의회의 정부 견제를 중요한 입법과제로 삼고 집중해 왔다. 28일 현재 국민의당 당대표 권한, 공천원칙 등 당의 토대를 닦는 당헌기초위원장을 맡은 것도 이런 '내공'과 무관치 않다.

[그는…]
전라북도 정읍에서 태어나 전주고, 서울대학교 외교학과를 졸업했다. 1983년 제27회 행정고시에 합격, 내무부와 전라북도청 등에서 2002년 1월까지 17년 공직생활을 했다. 2002년 7월 열린우리당 소속으로 전북 정읍시장이 됐고 2006년 1월까지 일했다.

원래 꿈은 언론인이었다. "정치에 대해 구체적인 생각을 어렸을 때부터 한 건 아니다. 언론인의 사회비판 기능으로 사회 발전에 기여하는 것도 있겠구나 했다. 그러다 아는 분의 권유로 행정고시를 보게 됐다. 공무원도 괜찮겠다 싶었다."

내무부에 잠시 근무한 걸 빼면 공직 대부분을 고향 전북에서 보냈다. 전북도청의 주요 부서 국장을 지낸 뒤 2002년 정읍시장에 출마하면서 정치인생이 시작됐다. 18대, 19대 총선에서 모두 무소속 당선됐다. 국회 농림수산식품위원회, 교육과학기술위, 예산결산특별위원회 등을 거쳤고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에서 활동 중이다. 새정치연합의 세월호 대책특위 위원장을 지냈다.

공직자 출신이라 '무색무취'로 보기 쉽지만 소신이 뚜렷한 편이다. 정부의 시행령 등이 법률을 뛰어넘어선 안 되고 의회의 통제가 필요하다는 입장으로 2012년 19대 국회가 열리자마자 관련 국회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해양수산부가 세월호특별법 시행령을 만들 때 절차를 제대로 지키지 않았다는 사실을 처음 밝혀냈다.

예결특위 위원으로서는 기획재정부 예산실이 행정부처에서 독립하고, 감사원도 국회 소속 기구로 분리돼야 한다는 주장을 줄곧 폈다. 지방행정 경험을 바탕으로 분권국가론을 편다.

유 의원은 올해 숫자 3과 인연이 있다. 국회의원 3선에 도전한다. 이번엔 '국민의당' 소속 후보로 나설 전망이다. 현재 국민의당도 여야 양당과 달리 제3신당으로 차별화를 꾀하고 있다. 전북도지사 출마는 2006년, 2014년 '재수'에 실패했지만 삼세번 도전의 꿈을 버리지 않았다.

△1960년(전북 정읍) △서울대 외교학과, 전주고 △제27회 행정시험(1983) △내무부 지방자치기획단, 전라북도 경제통상국장 △민선 정읍시장(2002) △제18, 19대 국회의원 △새정치민주연합 전라북도당위원장 △새정치민주연합 세월호 대책특위 위원장

[키워드-무소속 재선, 444호실의 남자]
2006년 전북도지사 후보 경선에서 탈락했다. 심사과정이 편파적이었다며 당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으나 훗날 "바람직한 선택은 아니었다"고 회고했다.

2008년 민주당 정읍 국회의원 후보 압축 과정에서 '3배수' 밖으로 밀려나며 이른바 컷오프 됐다. 그는 여론조사에서 앞섰음에도 또다시 공천을 받지 못한 것이 석연치 않다며 탈당, 무소속 출마했다. 해당행위라는 비난을 뒤로 하고 61%를 득표했다. 이는 호남 무소속 중 최고, 전국 무소속 중 2위 득표율이었다. 민주당 텃밭에서 민주당 후보를 압도적으로 꺾어 화제가 됐다.

그는 2011년 5월 당 최고위원에게 편지까지 쓰며 민주당 복당을 요청했지만 무산됐다. 결국 19대 국회도 무소속으로 출마, 재선했다. 호남에서 무소속으로 연속 당선은 전례를 찾기 어려운 일이다.

18대 국회때 의원회관 사무실은 444호. 정치권에선 유 의원이 범상치 않은 방 번호의 기운(?)도 꺾고, 호남에서 무소속 재선이 될 정도로 '기가 세다'는 평가가 나왔다. 이런 곡절을 겪고 2012년 여름에야 복당할 수 있었다. 2014년 6.4 지방선거 당시 전북도지사 경선에 다시 도전했으나 쓴잔을 마셨다.

[이 한 장의 사진-고속도로 라면]
/사진=유성엽 의원실 제공
그는 전북 정읍에서 서울로 출퇴근하는 국회의원이다. 피치못할 사정이 있는 날도 있지만 출마때 약속을 되도록 지키려 한다. 덕분에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수행원과 김밥, 라면으로 종종 식사한다. 간편하고 저렴해서 좋은데, '나랏일' 하면서 끼니 잘 챙겨야 하지 않느냐는 아내의 잔소리를 듣기도 한다. 

애창곡은 고향무정. 하지만 "못하는 것 중에 하나가 노래"라고 말한다. 잘 자라준 딸 셋을 늘 흐뭇하게 바라보는 '딸바보' 아빠이기도 하다.

[한 마디]
재치있는 언변이 인상적이다. the300의 [300어록] 기사에 여러 번 등장했다. 지난해 10월 농협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농협이 NH개발이나 택배사업 등을 추진하기 보다 "(차라리) 농협중앙회에 농악단을 만들라"고 꼬집었다.

유 의원은 지난해 10월 6일 농협 조합원 비율에 걸맞게 농협중앙회 신입직원도 지역안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안효대 새누리당 의원이 "서울 사람을 (중앙회에서) 뽑지 말라고 하시는데…대머리 치료제는 대머리인 분들만 개발하라는 논리"라고 반박했다. 유 의원은 "그래도 대머리가 만드는 대머리약이 국민들에게 신뢰와 믿음을 줄 가능성이 크다"고 재반박했다.

[사람들]
민선 3기 시장 때 50세 미만의 시장·군수·구청장이 모여 '청년목민관' 모임을 만들었다. 이곳에서 교류하고 국회에 입성한 이들이 현재 새누리당 이진복·이학재 의원, 더민주당 신정훈 의원 등이다.

더민주당 시절 황주홍 의원, 최재천 의원과 가까웠는데 세 사람 모두 더민주당을 떠났다. '마당발' 이상민 법제사법위원장과도 가깝다.

인간적인 면도 있다. 공천 탈락 등 낙선 경험이 큰 자산이 됐다고 털어놨다. "떨어져보니까 사람을 보는 눈도 생겼다. 다른 사람 어려움이나 아픔에 관심 가지고 함께 해야 한다고 느꼈다."

[요!주의]
그의 무소속 신화는 동전의 양면이다. 여간해선 정당의 후보로 공천되지 못한다는 아픔이 있다. 극심한 계파정치의 피해자일 수도, 자신의 친화력을 정당 내부정치에서 잘 살리지 못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아무튼 이런 경험은 그가 공천개혁·정당개혁을 주장하는 배경이다.

적재적소 임기응변을 발휘하는 말솜씨가 국회의원 중에 돋보이지만 때때로 강한 발언은 자제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최근 탈당과 신당 창당 등 정치적 선택도 총선을 통해 유권자의 판단을 받아야 한다.
그래=이승현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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