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치리포트]스토킹, 구애와 범죄의 사이

[the300](종합)

살인부르는 스토킹, 처벌은 8만원짜리 범칙금?


#경남 김해시에 거주하는 A씨(23·여)는 지난해 어머니가 운영하던 미용실에서 우연히 B씨(43)를 만났다. B씨는 첫 만남 이후 A씨에게 호감을 갖고 매일 수차례에 걸쳐 사랑한다는 문자를 보내는가 하면 지속적으로 쫓아다니며 만날 것을 요구했다. B씨가 집 앞에서 서성인다고 경찰에 신고를 한 적도 있었지만 B씨의 '스토킹'은 멈추지 않았다.

6개월간 B씨에게 시달리다 못한 A씨는 결국 지난 15일 B씨를 자신의 집으로 유인한 뒤 그를 식탁의자에 묶고 흉기로 찔러 살해했다.


최근 몇 년간 스토킹으로 인한 각종 강력범죄가 끊이지 않고 있다. 과거 유명 연예인을 대상으로 일부 '극성팬'의 행동으로 치부됐던 스토킹은 현재 일반인들도 누구나 대상이 될 수 있는 범죄가 됐다. 

하지만 국내 '스토킹범죄'에 대한 인식은 여전히 범칙금 8만원의 '경범죄'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단순한 애정공세?…강력사건의 '전조증상'
스토킹으로 인해 빚어진 참변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지난해 7월에는 대구 한 40대 주부가 평소 알고지내던 지인 김모씨(43)에게 흉기에 찔려 살해당했다. 해당 여성은 사건 보름 전부터 김씨로부터 스토킹을 당하고 있다며 경찰에 안심귀가 신청까지 했지만, 검찰은 경찰이 협박 등의 혐의로 신청한 김씨에 대한 구속영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2014년 12월에는 김모씨(37)가 전 남자친구 노모씨(37)에 의해 살해됐다. 7개월 가량 만남을 가지다 이별을 통보받자 노씨는 김씨의 집으로 찾아와 '사귀지 않으면 죽이겠다'고 협박하는 등 집착을 보였다. 김씨가 경찰에 신고를 하고, 사건 전날 직접 지구대를 찾아가 도움을 요청하기도 했지만 경찰은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2013년 10월엔 스토킹 피해를 경찰에 신고한 것에 앙심을 품은 50대 남성이 피해 여성을 보복살해했고, 같은해 5월엔 스토킹 가해자로부터 도망치던 10대 여성이 엘리베이터 통로로 떨어져 결국 숨지는 사건도 있었다.

현행법상 스토킹은 경범죄처벌법에서 '지속적 괴롭힘'으로 표현된다. 하지만 스토킹은 단순히 '조금 괴로운' 수준을 넘어 강력범죄로 이어지거나, 이어질 가능성이 매우 높은 범죄로 분류된다. 협박·강요 등 경미한 스토킹이 더 위험한 범죄로 이어지는 양상을 자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2014년 한국성폭력상담소와 한국여성민우회가 공동으로 주최한 '스토킹 피해 상담통계 분석 토론회'에 따르면 240건의 스토킹 피해 상담사례 중 직접적인 상해·살인미수·감금·납치 등 강력범죄에 해당되는 피해는 51건(21%)에 달했다.

하지만 강력범죄의 '전조증상'과도 같은 스토킹 범죄에 대한 처벌의 현행 법적근거는 '경범죄처벌법'이 전부다. 2012년 2월 28일 '경범죄처벌법' 전부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고, 2013년 3월 22일 법이 본격적으로 시행됐다.

개정에 따라 경범죄처벌법 처벌대상에는 '지속적 괴롭힘'(3조41호)이 명문화돼 담겼다. 해당 조문은 '상대방의 명시적인 의사에 반하여 지속적으로 접근을 시도하여 면회 또는 교제를 요구하거나 지켜보기.따라다니기.잠복하여 기다리기 등의 행위를 반복하여 하는 사람'을 처벌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경찰청이 일선에 내려보낸 기준으로는 이성이 거절 의사를 분명하게 밝혔는데도 3번 이상 만남이나 교제를 요구하면 스토킹에 해당된다. 요구 횟수가 2회에 그쳤더라도 상대방에게 공포나 불안감을 주는 명백한 사유가 있다면 처벌대상이다.

◇스토킹, 암표매매보다 가벼운 죄?

문제는 피해자가 느끼는 공포나 불안감을 구체적인 증거로 제시해야 하고, 피해자가 명시적인 거절 의사를 표현해야 한다는 것이다. 피해자가 반드시 전화나 구두, 서면 등으로 거절 의사를 밝혀야만 스토커를 처벌할 수 있다. 

신원을 알 수 없는 사람에 의해 이뤄지는 스토킹의 경우엔 '명시적 거절'을 할 방법이 마땅찮은 셈이다. '지속적인 괴롭힘'이라는 증거를 모으기 위해 피해자가 가해자를 접촉하는 과정에서 2차 위험에 노출될 우려도 있다. 

모든 조건을 충족해 가해자가 처벌을 받더라도 처벌의 상한선이 10만원 이하 벌금, 구류 또는 과태료 처분이라는 것은 더 큰 문제다. 

경범죄처벌법 시행령은 경범죄처벌법 3조41호 규정을 위반하는 범칙자는 범칙금으로 8만원을 내도록 했다. 출판물 부당게재나 거짓광고, 암표매매 적발시 부과되는 범칙금인 16만원보다도 적다. 이마저도 최근 법원의 판결 결과는 집행유예 등 가벼운 처벌이 대다수다.

학계와 시민단체를 중심으로도 경범죄처벌법에 규정된 스토킹 처벌규정이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경범죄처벌법에 규정됐다는 자체가 스토킹 행위를 지나치게 가볍게 보고 있는 것을 방증한다는 것이다. 법에서 규정한 피해자의 불안과 공포가 주관적 판단일 수 밖에 없다보니 오히려 직접적인 법적보호의 필요성이 있는지 논란이 일 수 있단 설명이다.  

한국여성민우회는 2013년 법 개정 당시 논평을 통해 "스토킹 피해에 대한 이해없이 경범죄로 해당사안을 처리하고자 하는 것은 '사랑하니까', '애정공세다'며 가볍게 치부해버리는 기존의 스토킹에 대한 잘못된 통념을 강화시키는 것과 다름없다"고 강조한 바 있다. 

반면 가벼운 괴롭힘까지 처벌대상으로 볼 경우 처벌 규정이 남용될 수도 있고, 경찰이 사생활에 지나치게 개입하는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단 비판의 목소리도 있다.

이원상 조선대학교 교수는 2013년 발간된 '형사정책연구'를 통해 "피해자의 신고가 오히려 스토커의 분노를 야기하여 보다 강력한 2차 범행이 발생할 위험도 있으며 일상적인 구애가 사법기관의 자의적 판단에 의해 처벌될 수 있는 문제점도 있다"고 스토킹을 경범죄처벌법으로 처벌하는 것의 위험성을 지적하기도 했다.

한편 현재 19대국회에는 성폭력특별법처럼 스토킹 관련 범죄를 특별법으로 적용하는 내용의 법안 3건이 계류 중이다.

'스토킹범죄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을 대표발의한 남인순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스토킹이 개인 간의 문제가 아니라 반드시 처벌을 받아야 하는 사회적 범죄임을 분명히 하고 초동단계에서부터 가해자의 행위를 제재하여 재발방지 및 피해자 보호를 확실히 하기 위한 것"이라고 특별법 제정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18년째 국회서 잠든 '스토킹처벌법'


토킹으로 유발된 각종 강력범죄가 세간을 떠들썩하게 만들면서 사회적으로도 이같은 문제의 심각성을 인지하는 분위기가 형성돼 있지만 관련 법은 국회 문턱을 넘는데 실패하고 있다. 15대 국회서부터 스토킹 특례법안이 꾸준히 발의되고 있지만 한 번도 통과된 적이 없다.

국회에 '스토킹' 법안이 처음 등장한 건 1999년 5월 김병태 의원(당시 국민회의) 등이 공동발의한 '스토킹처벌에 관한 특례법'이다. 스토킹의 정의에서부터 수사단계에 스토킹 피해자를 위한 접근금지, 의료기관 요양소 위탁 등 '임시조치'를 명시해놓은 김 의원의 법안은 이후 발의되는 법안들의 골격이 되고 있다.

법안은 스토킹을 '특정한 사람을 그 의사에 반해 반복적으로 미행하거나 편지, 전화, 모사전송기(팩스), 컴퓨터통신 등을 통해 반복하여 일방적으로 말이나 글 또는 사진이나 그림을 전달함으로서 심각한 공포심이나 불안감을 유발하는 행위'로 규정했다. 또 이런 행위를 한 경우 2년 이하 징역 또는 5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하도록 했다. 

법안이 2000년 임기만료로 폐기된 후 16대 국회인 2003년 10월 이강래 의원(당시 새천년민주당)이 '스토킹방지법' 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해당 법안에서는 '스토킹' 범위가 피해자 자신 뿐 아니라 가족까지로 다소 넓어진다. 하지만 스토킹 행위의 처벌은 그 행위에 대해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경찰의 금지명령 등을 위반하거나 금지명령 등의 기간이 만료한 후 다시 스토킹을 한 후에만 1년 이하 징역이나 1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하도록 했다.

2005년 9월 염동연 의원(당시 열린우리당)이 발의한 '스토킹 등 대인공포유발행위의 처벌에 관한 특례법안'은 스토킹 행위를 보다 세분화했다. 계속적으로 접근을 시도해 면회나 교제를 요구하는 행위 뿐만 아니라 상대방으로부터 감시받는 인식이 들게하는 행동, 진로에 막아서거나 주거지 근처에서 지켜보는 행위 등이 포함됐다.

또 이전과 달리 '스토킹피해센터'를 두도록 해 스토킹 피해자가 법적보호 및 상담을 받을 수 있도록 하기도 했다. 그러나 처벌은 앞서 이강래 의원의 법안과 마찬가지로 스토킹 행위에 대한 직접 처벌이 아니라 금지명령을 위반했을 때 3년 이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하도록 했다.

염 의원은 같은해인 11월 해당 법안을 철회하고 곧바로 '지속적 괴롭힘 행위의 처벌에 관한 특례법'을 재발의했다.

스토킹 처벌을 규정하는 데 있어서 '계속적'이라는 표현대신 횟수를 보다 구체화해 '2회 이상'이라고 제시했다. 처벌도 일반인과 청소년 대상을 나눴다. 일반인 대상으로는 1년 이하 징역또는 1000만원 이하 벌금, 청소년 상대 스토킹 범죄는 3년 이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하도록 했다. 이밖에 흉기 및 기타 위험한 물건을 휴대하고 스토킹범죄를 범했을 경우 1년 이상 유기징역에 처하도록 하는 가중처벌 규정도 포함됐다.

18대 국회에서 제안된 김재균 의원(당시 민주당)의 '스토킹 처벌 및 방지에 관한 법'은 염 의원의 법안과 대동소이하다. 처벌 규정도 염 의원의 법안을 거의 그대로 따랐다. 흉기를 휴대하고 스토킹을 한 자에 대해서 5년 이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하도록 처벌규정만 다소 강화했다.

19대 국회 들어서는 이낙연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김제남 정의당 의원, 남인순 더민주당 의원, 안효대 새누리당 의원이 각각 대표발의한 4건의 법안이 계류돼 있다.

2012년 8월 제안된 이 의원의 '스토킹 처벌 및 피해자 보호에 관한 법안'은 스토킹피해자 지원에 초점을 맞춰 스토킹피해자 지원법인 신설 등이 포함됐다. 김제남 의원의 '스토킹 방지법안'도 마찬가지다.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스토킹 피해자 지원시설을 설치해 운영할 수 있도록 했다.

지난해 2월 발의된 남인순 의원의 '스토킹 범죄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은 스토킹 행위에 대해 보호처분이나 다른 예외를 적용하지 않고 반드시 형사처벌을 하도록 한 점이 특징이다. 

특히 기존에 발의된 법안이 피해자의 명시적인 처벌의사 없이 공소를 제기할 수 없는 '반의사불벌죄'였지만 남 의원의 법안은 누구나 신고하고 수사할 수 있도록 했다. 가해자가 고소하지 못하도록 하거나 고소취하를 종용하며 피해자에게 2차 피해를 입히고 괴롭히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다.

또 접근 금지의 경우, 경찰이 선조치한 후 법원에 승인을 얻는 방식으로 피해자 보호 체계를 갖췄다.

이밖에 현재 '경범죄처벌법'상 경범죄로 규정돼 있는 것을 '형법'에 명시하도록 하는 안효대 새누리당 의원의 법안도 발의돼 있다. 상대방의 명시적 의사에 반해 정당한 이유 없이 스토킹 행위를 지속적 또는 반복적으로 해 상대방에게 공포심이나 불안감을 유발한 사람에게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했다.


스필버그·마돈나도 시달린 스토커, 외국선 강력처벌

레이건대통령

'영화감독 스티븐 스필버그, 비틀즈의 멤버 존 레논, 이탈리아 패션디자이너 지아니 베르사체, 로널드 레이건 전 미국대통령, 미국 팝스타 마돈나' 이들의 공통점은 뭘까. 모두 스토커로부터 심각한 정신적, 육체적 피해를 경험한 유명인들이라는 점이다. 

스필버그 감독은 한 남성 스토커로부터 1000회 이상 전화를 받고 수시로 신체적 위협을 당했다. 이 남성은 구속된 이후 '스필버그를 강간하려 했다'고 진술해 주변을 경악케 했다. 존레논과 베르사체는 급기야 스토커의 흉탄에 목숨을 잃었다. 

마돈나는 "결혼해주지 않으면 죽이겠다"는 스토커의 협박에 시달려야 했다. 이 스토커는 마돈나의 집에 침입했다가 경호원이 쏜 총에 맞고서야 검거됐다. 레이건 전 미국대통령을 저격해 죽이려 했던 범인은 배우 조디 포스터의 스토커였다. 

한국에서는 스토킹이 경범죄 취급을 받고 있지만 선진국에서는 일찍부터 스토킹 범죄의 심각성이 부각되면서 '스토킹=중범죄'라는 인식이 성립돼 있다. 스토킹 피해에 대해 중형을 선고할 수 있는 법 조항이 마련된 배경이다. 

독일은 2001년부터 스토킹범죄을 법으로 처벌해 왔다. 이후 지속적인 법 개정을 통해 처벌 수위를 높였다. 10년 전인 2007년에는 '스토킹 범죄의 처벌에 관한 법률'을 별도로 만들었다. 독일 내에서는 이 법의 제정에 대해 '정신적 건강을 형법상의 보호법익으로 공인한 사례'로 그 가치를 높이 평가하고 있다. 

이 법은 가까이 접근하는 것은 물론 전화 등을 통해 접촉을 시도하는 것 등을 모두 스토킹으로 간주한다. 이를 통해 피해자의 정신이나 신체적 건강을 침해하는 행위를 한 경우에는 3월 이상 5년 이하의 징역을 선고할 수 있다. 또 스토킹으로 인해 피해자나 피해자의 주변인물을 사망하게 한 경우에는 10년 이하 징역에 처할 수 있도록 정하고 있다. 

미국은 스토킹 처벌의 역사가 더 깊다. 1990년대부터 모든 주가 반스토킹법을 제정했고 1998년에는 사이버스토킹도 처벌 대상으로 포함시켰다. 각 주별로 스토킹행위에 대해 2~4년의 징역을 부과할 수 있으며 다른 범죄와 연결될 경우 더 무거운 형벌도 가능하다. 마돈나의 스토커가 10년형을 선고받은 것이 대표적이다. 

일본도 2000년부터 스토커 규제법을 제정해 시행하고 있다. 징역 1년 이하, 벌금 100만엔(1000만원)을 부과하는 등 독일이나 미국에 비해서는 처벌 수준이 낮지만 한국에 비해서는 역시 높은 수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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