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시민운동 30년...'우수의원상' 휩쓴 남인순의 '모성애'

[the300][국회의원사용설명서]남인순 새정치민주연합 의원

지난 3일 새벽 3시 한 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지 몇 시간이 지나지 않아 같은 날 오전 보건복지부가 이를 전면 부정하는 보도자료를 발표하는 해프닝이 발생했다.  

  

지난해 10월 남인순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지자체의 공공산후조리원을 허용하는 '모자보건법 개정안'을 발의했을 당시만 해도 법안 통과를 기대한 이는 드물었다. 특히 이재명 성남시장이 ‘무상’ 공공산후조리원 설립을 두고 보건복지부와 대치하며 이 법안은 1년 넘게 심사도 되지 못했다.

 

법안은 1년만에 가까스로 법안소위에 오른 후에도 수차례 난항을 겪었다. 정부는 '지역적 접근성이 떨어지는 곳'에 한해 '복지부 장관과 사전 협의를 거친다'는 조건으로 법안을 받겠다고 했다. 야당이 이를 '꼼수'로 보고 거부하자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산후조리원을 설치할 수 있게 하고 '해당 지자체 내 산후조리원 이용·분포 현황을 고려해야 한다'는 또 다른 제한 조항을 넣으려 했지만 끝내 실패했다.

 

결국 법안은 제한 조항을 모두 삭제한 채 원 취지를 그대로 살려 통과됐다. 법안소위를 6차례나 거치면서도 '원안 사수' 입장을 꺾지 않은 남의원의 뚝심에 결국 여당이 손을 든 셈이었다.

 

그러나 법안 통과 불과 하루만에 보건복지부는 "산후조리원 이용이 불편한 지역이나 산모가 집에서 서비스를 받기 어려운 지역에 한해 지자체가 산후조리원을 설치·운영할 수 있게 됐다"고 보도자료를 냈다. 또한 "무분별 무상지원이 안 되도록 적정 이용자 부담 등 운영방안을 시행령에 담을 것"이라고 밝혔다.

 

남 의원은  즉시 재반박 보도자료를 내고 "여야가 합의해 만든 법에 대해 법안이 통과된 지 하루도 채 지나지 않아 딴소리를 하는 것은 이율배반적"이라며 "앞으로 복지부의 행보를 지켜볼 것"이라고 쐐기를 박았다. 복지부는 더 이상 대응을 내놓지 않고 확전을 피했다.

 

무상 공공산후조리원법은 남 의원이 왜 '모성애 1위' 의원으로 꼽히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례다. 보건복지위원회와 여성가족위원회에서 활동하며 '모성'과 관련된 보육, 청소년 관련 법안을 많이 내놓았다는 뜻이기도 하지만, 자신이 낳은 '새끼'(법안)를 계속 추적하고 제대로 시행될 때까지 끝까지 돌본다는 데서 붙여진 애칭이다.

  

법안은 발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후 법안소위에 상정돼 소위 논위를 거쳐 상임위를 통과하고도 법제사법위원회와 본회의 통과까지 험난한 여정을 거친다.


이번 모자보건법 개정안 사례와 같이 법안이 통과되고도 정부가 '시행령' 등으로 법안 취지를 무력화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남 의원은 남다른 '모성애'로 19대 국회 보건복지·여성 분야에서 '다산'을 이뤄냈다. 

 

2014년 남인순 의원이 보건복지위에서 질의하고 있다. /사진=남인순 의원실

[국어교사 꿈꾸던 소녀, 여성 노동에 눈뜨다]

 

남 의원은 어린 시절 집과 학교밖에 모르는 얌전한 학생이었다. 감수성 예민하던 청소년 시절 국어선생님의 영향으로 '시를 읽어주는 국어교사'를 꿈꿨던 그는 사범대 국어교육과에 진학하며 큰 변화를 겪는다.

 

김수영 시인을 좋아했던 문학소녀는  70년대 말 독재정권 시절 대학 독서회를 통해 세상에 눈떴다. 그는 '여성'과 '노동'에 눈뜨게 된 순간의 '첫 느낌'을 잊을 수 없다고 했다.

  

"대학 1학년 겨울방학 때 인천지역 독서모임 선배가 답동 성당에 가재서 갔는데 당시 어용노조가 방직노동자들 노조를 파괴한 사건이 있었어요. 여성들이 파란 작업복을 입고 머리에 흰 수건을 두르고 ‘인간답게 살고 싶다’고 외치는데, 책을 통해 여성노동자의 현실을 알았지만 그걸 처음 본 거죠. 그 느낌이 잊혀지지 않아요. 일하는 여성들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됐죠."

 

이것이 바로 1978년 발생한 인천 '동일방직 노조' 사건이다. 노조를 만들기 위해 어용노조에 저항하던 여성 노동자들은 남성들로부터 ‘똥물’ 세례를 받고 회사에서 쫓겨나 투쟁하고 있었다.

  

남 의원은 결국 대학 3학년 때 재단비리 관련 학내 민주화운동을 하다 강제퇴학을 당한다. 국어교사의 꿈을 접는 대신 인천 부평공단에서 야학운동을 하고 직접 미싱을 배워 공장에 취업, 노동운동에 투신하게 된다. 

 

공장에서 해고된 후엔 여성노동자의 교육과 상담, 직업훈련을 위해 1989년 인천여성노동자회를 만들었으며 1994년 한국여성단체연합 사무국장을 시작으로 2011년 상임대표로 임기를 마칠 때까지 성평등 사회를 위한 시민활동을 계속 해왔다.

  

2012년 민주통합당 여성·아동 성범죄 근절 대책특위에서 남인순 의원이 토론회 사회를 보고 있다. /사진=남인순 의원실

[30년 시민활동 접고 제도정치에 발을 들인 이유]

  

남 의원이 제도정치를 생각한 것은 오래되지 않았다. 30년 이상 시민사회에서 여성 정책활동과 캠페인 등을 벌여온 남 의원은 이명박정부가 들어서며 제도정치의 중요성을 깨닫고 정치입문을 결심하게 됐다고 했다.

  

그는 "이명박정부 들어서면서 과거 시민사회와 제도정치가 협력하며 발전하는 구조가 완전 붕괴됐다"며 "시민사회만으로 사회를 변화시키는 데 한계를 느꼈고 직접 정치질서 안에서 직접  여성, 시민, 아동을 위한 정치를 펼쳐야겠다는 고민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남 의원은 민주통합당 출범 직후인 2012년 1월20일 지명직 최고위원으로 선임된다. 최고위에서 청년비례선출특위와 여성정치참여확대위원장을 지낸 그는 박영숙 전 한국여성재단 이사장과 주변 동료 등의 제안으로 최고위 활동 2개월여 만에 비례대표에 공모한다. 시민단체에서 문제제기해온 것을 제도화할 수 있는 곳은 국회란 생각에서였다. 

  

남 의원이 국회에 입성하자마자 대형사건이 줄줄이 터졌다. '나주 초등학생 성폭행사건'을 계기로 출범한 국회 아동·여성대상 성폭력 대책 특위에서 야당 간사를 맡아 성폭력 범죄에 대한 친고죄 전면 폐지를 이뤄냈다. 다른 국회 특위와 달리 입법권까지 부여받았기에 가능했다.

 

그는 "20여년간 여성계에서 외쳤던 것인데, '이게 입법부의 힘이구나' 싶었다"며 "어떤 문제의 중요성과 우선순위를 아는 사람이 국회에서 활동할 때 가능한 것"이라고 밝혔다.

  

[우수한 법안성적 비결? '현장정치', '가치정치']

 

남 의원은 정책활동 면에서 자타공인 모범 비례대표로 꼽힌다. 2012년과 지난해 국회사무처로부터 입법 및 정책개발 우수의원상을 받았으며 새정치연합의 국감우수의원에 4년 연속 선정됐다. 머니투데이 더300(the300)이 지난달 실시한 19대 비례대표 종합평가에서도 1위를 차지했다. 법안발의와 법안통과 부문에서 성적이 우수했다. 법안발의 수가 많을 뿐만 아니라 전문성을 살린 법안을 발의했기 때문이다. 남 의원은 12월 현재까지 총 127개의 법안을 발의했으며 이중 통과법안은 비례대표 중 가장 많은 38건이다.

 

남 의원은 이 같은 실적이  '현장정치'와 '가치정치'를 추구한 덕분이라고 말한다. 

그는 "일이 터지면 현장부터 간다. 책상머리가 아니라 현장에 가면 생각했던 것과 다른 부분이 있다"며 "현장에서도 의제가 발굴되고 계속 팔로업을 해줘야 한다. 법안을 낼 때 현장과 협업하기 때문에 통과가 됐는지 안 됐는지 이유는 무엇인지 계속 현장의 압박을 받는다"고 말했다. 

  

남 의원이 의정활동에서 현장정치 못지않게 중시하는 것은 '가치정치'다. '가치'보다 '이익'을 더욱 중시하는 정치풍토에서도 국공립어린이집 확충, 공공산후조리원 설치, 공공의료 활성화 관련 정책을 관철시킬 수 있었던 것은 성평등, 공공성의 강화라는 가치를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소개한다.

 

이는 그가 대중적으로는 크게 호응받기 어려운 정책을 소신껏 펼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남 의원은 다양한 가족을 수용해야 한다며 '건강가정기본법' 전면 개정안을 내고 청소년은 보호해야 할 대상이라며 성매매 유입 청소년을 법률상 '대상 청소년'이 아닌 '피해 청소년'으로 바꿔야 한다는 등 '소수의견'을 끈질기게 제기하며 독보적으로 여성가족위원회 활동을 해왔다.

  

2015년 지역 현안 릴레이 청책토론회 중 하나로 안심보육 토론회를 진행하고 있다. /사진=남인순 의원실

[지역 정치인 변신, 제2의 도전]

 

여성·초선·비례대표로서 돋보이는 활동을 보인 그는 내년 20대 총선을 앞두고 지역 정치인으로서 변신을 꾀하고 있다. 학교와 노인정, 상가 등에서 다양한 이들과 스킨십하며 '일하는 사람'으로서 '송파 똑순이'를 알리는 데 노력하고 있다.

 

그의 지역활동의 중심은 ‘소통’이다. 올해 상반기부터 '어린이집 아동학대 방지 및 안심보육', '메르스 사태 이후 골목상권 살리기' 등 지역 현안에 대해 지역주민으로부터 의견을 청취하는 '릴레이 청(聽)책 토론회’를 진행했다. 보건복지,여성 분야와 관련된 직능단체를 지역 간담회를 갖고 2주에 한 번씩 지역 고충 민원상담도 운영하고 있다. 의정보고도 동별로 진행하며 긴밀한 소통을 시도했다.

  

비례대표가 너무 초반에 지역을 정하고 선거운동을 하면 본연의 임무에 집중할 수 없다는 판단에 따라 지난해 말에야 지역구 활동을 시작했다. 그것도  '새누리의 텃밭'인 강남 벨트 공략의 전략 요충지이자 '험지'인 송파를 택했다.

  

내년도 총선 지역구 획정을 놓고 비례대표 의석수 축소론이 나오고 있지만 남 의원은 비례대표 의원을 전체 의원의 최소 30%, 최대 50%까지 늘려야 한다는 소신론을 폈다.

  

그는 "국민들의 요구가 다양화되는 상황에서 지역구 의원들로도 빠질 수 있는 영역을 감당하도록 분야별 대표성을 보완하지 않으면 정책활동이 왜곡될 수 있다"며 "지역구 의원들이 자기 지역 없어질까 봐 비례대표를 늘리는 걸 반대하는데 전체 의석수를 350석, 비례를 100석 정도로 늘리고 의원에 대한 지원규모를 줄이면 된다"고 말했다.

 

그는 다만 비례 선출과 관련, 분야별 공모·추천제를 두거나 당의 핵심가치를 먼저 정하고 세분화해 그에 적합한 인재를 영입하는 등 선출방식을 바꿔야 하며 우수 비례대표는 비례대표 재선도 가능하도록 보장해야 한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남 의원은 내년도 총선에서 새정치민주연합의 보육특별위원장과 여성·성평등 의제발굴 TF를 맡아 당 차원의 보육 및 여성 공약을 준비 중이다.

  

[시민의 삶을 바꾼 대표법안들]

 

그는 여성·보건복지분야 제도의 미비점, '틈'을 찾아내 개선하는 법안을 통해 시민들의 삶을 변화시키고자 했다. 

 

아동·청소년 대상 성범죄가 피해 당사자의 의사에 따라 공소제기 여부가 결정되는 불합리성을 해소하기 위해 아동·청소년 성보호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발의, '반의사 불벌죄'를 폐지하고 음주 또는 약물로 인한 심신장애의 경우에도 아동·청소년 대상 성폭력에서는 형법상 감경사유를 대폭 축소했다.

  

학교 안뿐 아니라 학교 밖으로 시선을 돌려 '학교 밖 청소년 지원에 관한 법률'을 제정, '학교 밖 청소년 지원센터' 설립과 이들에 대한 상담과 지원 근거를 마련했다. 이로 인해 여가부에 '학교밖청소년지원과'가 신설되기도 했다.

 

남 의원은 '아동학대 방지 및 피해아동의 보호에 관한 법률안'과 '아동복지법 개정안'을 발의해 아동학대 정책을 사후처벌 중심에서 사전예방 중심으로 전환하도록 했다. 또 아동의 보호자에 아동에 대한 체벌 금지 의무를 부여하고, 지방사무였던 아동보호 전문기관 운영을 국가사무로 전환토록 했다.

 

그는 어린이집 아동학대 사건으로 CCTV(폐쇄회로TV) 설치가 논란이 되자 교사 처우개선과 인권교육을 강화를 하는 영유아보육법 개정안을 발의해 통과시키기도 했다.

  

남 의원은 또한 '모자보건법 개정안'을 통해 공공산후조리원 설치근거를 마련한 것 외에도 난임시술의 의학적·한의학적 기준을 마련하고 의료기관의 질적 향상과 정부 지원을 강화한 것도 성과로 꼽는다.

  

그는 약사법 개정안을 통해 약국의 서면 복약지도 제공을 의무화했다. 또한 메르스 사태 이후 국립중앙의료원과 지방의료원의 감염병 대응을 강화하기 위한 '공공보건의료에 관한 법률 개정안' 등 4개 법안을 발의해 법사위 심사를 기다리고 있다.

  

2013년 3.8세계여성의 날 기념 국회청소노동자와 간담회. /사진=남인순 의원실

[그의 사람들: 조화순, 박영숙, 이효재]

  

남 의원은 자신의 의정활동에 영향을 미친 인물로 산업선교에 투신한 조화순 목사를 꼽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남 의원은 대학 시절 인천의 '동일방직' 여성 노동자들을 돕던 조 목사를 처음 만나 여성노동 운동에 뛰어들게 된다.

  

제13대 국회의원과 한국여성재단 이사장을 지낸 고(故) 박영숙 이사장은 남 의원의 정치 입문에 큰 역할을 했다. 박 전 이사장은 남 의원이 민주통합당에 처음 들어왔을 때부터 "여성이 국회에 진출해야 정치를 살릴 수 있다"며 '살림의 정치'를 강조했고 그의 비례대표 도전을 적극 권유했다.

 

남 의원은 호주제 폐지 운동을 함께 한 원로 여성학자 이효재 선생의 영향도 받았다. 지금도 여성문제의 정책화에 관심이 높은 이 선생에게 의정활동 보고서를 보내며 조언을 받고 있다.

  

[정치철학: 치유와 대안의 정치]

 

그의 정치 철학은 '치유와 대안의 정치'로 요약된다. 남 의원은 "불평등한 사회구조 속에서 불평등의 격차를 줄이고 개개인이 갖고 있는 아픔을 치유해 마음까지 회복시키는 '치유'의 역할을 정치가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대안의 정치란 실질적으로 답을 줄 수 있는, 대안을 갖고 해결해줄 수 있는 정책지향 정치를 말한다.

  

남 의원은 의원실에 '치유와 대안의 정치'라는 표어와 함께 보좌진들이 19대 국회 초반에 함께 의원실이 추구할 가치와 방향을 작성한 '사명서‘를 내걸고 초심을 되새기고 있다.

 

[요!주의: 비례대표로서 능력, 지역정치에서도 통할까]

 

오랜 시간 시민단체에서 여성주의적 가치와 수평적, 개방적 관계에 익숙했던 남 의원은 때로 수직적이고 권위적으로 작동하는 정당활동에 적응하기 어려움을 느꼈다. 관계를 형성하는 데 소극적이기도 했고 초선과 여성, 비례대표의 위치에서 한계도 느꼈다고 한다.

  

그는 각종 특위와 TF에서 간사로서 우수한 정책활동을 한 데 비해 눈에 띄는 정치력을 증명해보이진 못했다. 비례대표에 대한 비판과 회의론 속에 그가 정치적 생명력을 증명해낼 수 있을지 주목된다.


[이 한장의 사진]

2005년 3월2일 여성계의 오랜 숙원이었던 호주제 폐지를 담은 민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자 남인순 당시 한국여성단체연합 상임대표가 기뻐하고 있다. /사진=남인순 의원실 제공



[프로필]

△인천 출생(57세) △인일여고·세종대·성공회대 대학원 졸업 △한국여성단체연합 사무총장 △한국여성단체연합 상임대표 △중앙생활보장위원회 위원 △대통령 직속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위원 △국민고충처리위원 △시민단체연대회의 공동대표 △민주통합당 최고위원 △제19대 국회의원(보건복지위원, 여성가족위원회 간사) △국회 아동·여성대상 성폭력 대책 특위 간사 △새정치민주연합 서울시당 을지로위원장 △새정치민주연합 전국여성위원장 △새정치민주연합 보육특별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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