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만섭 전 국회의장 영결식, 국회서 엄수…소신행보 기려

[the300]정의화 "고인이 지켜낸 삼권분립 흔들려, 빈자리 크다"

18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 대강당에서 엄수된 고 이만섭 전 국회의장 국회장 영결식에서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와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가 고인의 영정을 바라보고 있다. 2015.12.18/뉴스1

14일 숙환으로 타계한 이만섭 전 국회의장(향년 83세)의 영결식이 18일 국회에서 엄수됐다. 국회장으로 치러진 이날 영결식엔 여야 의원과 전직 국회의장, 고인과 인연을 나눴던 정치권 인사를 합해 약 400명이 참석했다.

집행위원장인 박형준 국회사무총장이 고인의 약력을 보고하고 장의위원장인 정의화 의장이 영결사를, 신경식 대한민국 헌정회장과 정갑영 연세대 총장이 조사(弔辭)를 각각 낭독했다. 이어 천주교 예법에 따라 종교의식을 치렀고 고인의 생전 모습을 담은 영상도 상영됐다.

참석자들은 고인의 정치적 이력 가운데 소신 있는 국회의장이었다는 점을 치켜세웠다. 이 전 의장 재임중인 1994년 국회의장이 당적을 이탈, 무소속이 되는 제도가 생겼다. 또 이 전 의장은 한국 의회의 흑역사 격인 '날치기' 법안처리를 하지 않은 것으로 평가된다.

때마침 쟁점법안 처리방법을 두고 청와대·새누리당과 정의화 의장이 충돌양상을 보이는 시점이어서 고인의 이런 이력이 두드러졌다.

정 의장은 "'가슴으로 펼쳤던' 이만섭 의장님의 정치는 두 번의 국회의장 재임 시기 가장 환한 빛을 발했다"며 "이 기간 헌정사의 고질병인 날치기(입법)이 사라졌고 스스로 당적을 이탈하여 입법부의 수장으로서 정치적 중립을 견지했다"고 말했다.

또 "'자유투표제'를 명문화해 의원 개개인이 국민의 대표자로서 양심에 따라 투표할 수 있는 기초를 닦아줬다"며 "의장님의 투철한 신념과 원칙으로 어렵게 지켜내신 의회민주주의와 삼권분립이 흔들리고 있는 작금의 상황에서 빈자리가 더욱 커 보인다"고 했다.

신경식 헌정회장은 "후리후리한 키로 걸어오시며 '어! 신 동지' 하고 오른손을 높이 들었던 이 전 의장이 지금도 뒤에서 다가오시는 것 같다"고 고인을 추모했다.

정갑영 총장은 연세대 한 강의실을 '이만섭홀'로 이름 붙인 것 관련, 고인이 생전에 "더없는 영광"이라며 "정치가 국민을 더 생각한다면 이 홀의 가치가 더욱 올라갈 것"이라고 말했다고 회고했다.

영결식에는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와 원유철 원내대표,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 심상정 정의당 대표, 김수한·김원기·김형오·박관용·박희태·임채정 전 국회의장도 참석해 고인을 기렸다.

8선 의원인 이 전 의장은 196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국회의원으로 의회정치 역사를 현장에서 겪은 산증인이었다. 1932년 대구 출생으로 1950년 연세대에 입학했으나, 곧 6.25 전쟁이 발발해 공군사관생도로 자원했다.

1957년 연세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 동아일보 정치부 기자로 활동중 31세이던 1963년 민주공화당 전국구 의원으로 제6대 국회에 진출했다. 전형적인 유신 시대 정치인의 이력같지만 30대의 젊은 의원 시절부터 박정희 대통령의 3선개헌에 비판적으로 나서는 등 소신 행보로 주목 받았다.

고인의 유해는 영결식을 마친 뒤 장지인 국립대전현충원으로 향했다. 유족은 부인 한윤복 씨와 장남 승욱, 딸 승희·승인 씨 등 1남2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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