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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경태 의원을 이길 수 있는 후보를 내겠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지난달 부산을 찾은 자리에서 내년 총선과 관련 "사하구 을 당협위원장 선임이 미뤄지는 건 새정치민주연합의 조의원을 이길 사람을 선택하기 위한 것"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집권여당 대표가 영남지역에서 특정 야당 의원을 지목하며 꺾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조의원은 영남의 유일한 '야당 3선'이다. 그 자체가 그의 정체성이고, 비주류이면서도 제 목소리를 내는 자신감의 근원이다.
그래서 조 의원에게 사람들이 흔히 품는 질문은 대략 3가지다. 왜 부산에서 야당으로 나왔는가? 어떻게 부산에서 야당으로 당선됐는가? 무엇으로 부산에서 야당 3선을 지냈는가? (문재인을 왜 싫어하는가? 에 대한 답도 찾아보겠다.)
새누리당 텃밭에서 홀로 자리 잡은 데 특출한 배경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는 15대 총선에서 떨어졌고 절치부심한 16대에서도 고배를 마셨다. 그러고선 17대, 18대, 19대에 내리 이겼다.
20대 총선 전망도 나쁘지 않다. 정치권이 예상하는 부산지역 현역 '안정권'은 18명 중 단 2명인데, 그 중 한 명이 야당인 조 의원이다. 이를 두고 한 부산 아재는 "부산에선 새누리당 열 명보다 조경태 한 놈이 더 인기인기라"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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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경태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사진=뉴스1 |
조 의원은 '지역주의 타파'를 외친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 영감을 받은 사람이다. 지금은 당내 대표적인 비노(非盧) 인사로 꼽히지만, 반문(反文)으로 보는 게 더 적절하겠다. 조 의원은 친노반문(親盧反文)이다. 그 스스로도 자신을 '원조 친노'라고 설명한다.
노 전 대통령과의 인연은 8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노 전 대통령은 그 해 치러진 1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통일민주당 후보로 부산 동구에 출마해 당선됐다. 당시 부산대 3학년생이었던 조 의원은 불법선거감시단원으로 활동하면서 노 후보를 지지했다. 선거 당일엔 부산고 운동장에서 밤새 결과를 기다리고, 환호성을 지르고, 후보와 악수하는 경험을 했다. 대학생 조경태에게 후보 노무현이 롤모델이 됐을 법하다.
조 의원은 스물일곱이던 96년 민주당 후보로 15대 총선에 도전했다. 대학원 박사과정을 밟던 중이었다. 여당 중진 의원이 '부산지역에서 전국 최고 득표율을 목표로 하겠다'고 말한 언론 인터뷰가 직접적 자극이 됐다. '지역주의에 편승해 선거 승리를 당연하다는 듯 말하는 것은 문제 아닌가. 아무도 출마하지 않는다면 나라도 해야하지 않을까….'
부산 사하갑에 첫 출마한 조 의원은 그러나 당연한(?) 수순으로 낙선했다. 그를 후보로 세운 민주당은 노무현 등 개혁성향 정치인들이 모여 만든 3김정치와 거리를 둔 정당이었고, 당시 부산은 대통령인 YS의 정치적 텃밭이었다. 지인 대부분이 그를 외면하며 떠나갔고 설상가상으로 연구실에서도 내쫓겼다.
떨어졌지만 의미는 있었다. 선거 날 조 의원 자신은 200표, 아내는 20표를 예상했는데 1만835표를 얻었다. 득표율 15%로 3위를 하면서 여당 중진의 최다 득표율 목표도 좌절시켰다. '감출 것 없는 정치를 하겠다'며 선보인 누드포스터는 화제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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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의원은 패배 직후 다음선거 준비에 들어갔지만, 2000년 16대 총선에서도 한나라당 후보에게 졌다. 그는 자신의 책 <지역주의는 없다>에서 이 시기를 "외로운 시간이었고 친척들에게 비웃음을 샀다"고 회상했다. "영남에서 민주당으로 정치활동을 하는 것은 계란으로 바위치기를 하는 것과 같았다…."
조 의원이 낙선한 16대 총선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지역주의의 벽을 넘겠다'고 외치며 부산에 나섰다 떨어진 총선이기도 했다. 조 의원은 앞서 98년엔 노 후보의 종로구 보궐선거를 도왔고, 99년엔 노 의원이 '영남지역의 정치적 지형을 바꾸겠다'고 조직한 동남특별위원회에 참여해 활동했다. 이런 인연들로 그는 2002년 16대 대통령선거에서 노 후보의 정책보좌역을 맡게 됐다.
노 대통령 당선 이후 치러진 2004년 17대 총선에선 마침내 배지를 단다. 한나라당 후보와 2000표 차이밖에 나지 않는 신승이었는데, 한나라당 공천 탈락 후보가 무소속으로 나서면서 표가 분산된 게 당선을 도왔다. 노 대통령은 '조경태 학습법'을 의원들에게 추천했다. 지역주의 타파 가능성을 보여줬다는 이유로 조 의원에겐 '리틀 노무현'이란 별명이 붙기도 했다.
◇무엇으로 부산에서 야당 3선을 지냈는가?
조 의원은 부산 지역구에선 '지하철 왕'으로 통한다. 그는 17대 국회의원에 당선되고서, 지반이 약해 불가능으로 여겨졌던 '부산 지하철1호선 다대포 연장' 사업을 이뤄냈다. 부산 신평에서 다대까지 연장 길이만 7.8km, 9500억원의 비용이 투입되는 국책사업이다.
조 의원은 이에 대해 "특수공법으로 연장이 가능하다고 봤다, 지역주민 서명을 받아 온갖 곳을 다 찾아다니며 설득을 했다"고 말했다. 실제 그는 부산대에서 토목공학과 학사, 동대학원 석박사를 취득한 전문가다. 조 의원은 16대 총선에서 낙선한 직후부터 신평-장림-다대 간 지하철건설추진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사업을 추진했다.
앞서 서두에서 "조경태 한 놈"을 강조했던 지역 아재는, 조 의원의 지역구 관리를 두고선 "지하철 하나로 조경태는 일 잘한다고 인식이 박혔다. 진짜 일 하나는 확실하게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런 말을 덧붙였는데, 최근의 정치 상황과 당내 좁아진 입지에 대한 우려를 보여주는 듯 했다. "그런데 요새는 와 문재인한테 개기는데? 그것 때문에 정나미 떨어졌다는 사람도 더러는 있다."
◇친노반문, 왜 반문이 되었나
조 의원이 자신을 원조친노로 칭하는 데는 몇 가지 확실한 근거가 있다.
먼저 대선이 있었던 2002년 초의 일이다. 한 주간지가 민주당 지구당위원장을 상대로 '대선후보 지지성향' 여론조사를 실시했는데, 응답자 107명 중 노무현을 지지한 국회의원은 단 한 명도 없었다. 23명이 이인제를 지지했고 조 의원을 비롯한 원외지구당위원장 7명만이 노무현의 편에 섰다.
그해 8월엔 국회의원-지구당위원장 연석회의에서 노무현 후보의 후보사퇴를 종용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당시 5선이던 안동선 전 의원은 지방선거와 재보궐선거 패배에 대한 책임을 물으며 노 후보의 사퇴를 압박했다. 여기에 강하게 항의한 것이 조 의원이다.
정치권 일부는 조 의원이 친노, 친문재인 세력과 틀어진 계기를 2010년 민주당 부산시당위원장 경선으로 본다(경선에서 친노는 최인호 위원장을 지지했고 조 의원은 낙선했다).
그러나 감정이 싹튼 것은 더 이전의 일이다. 조 의원은 일련의 일들을 '토사구팽'으로 표현했다. "2004년 총선에서 당당히 부산에서 유일하게 당선됐지만 마음 한 구석에는 동지를 배신한 그들에 대한 서운함과 분노가 여전히 남아있었다."
조 의원은 저서에서 노무현 대통령 당선 이후 '이상한 조짐'을 느꼈다고 밝혀두었다.
"약간의 이상한 조짐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언론에는 당선을 시킨 주역들과 고생한 사람들 그리고 측근들의 이름이 나오기 시작했다. 뒤늦게 뛰어든 유력한 정치인들 이름이 거론됐고, 가까이에서 참모로 오랫동안 함께했던 이들의 이름도 나왔다. 하지만 내 이름은 거의 빠지는 때가 많았다. 부산지역 일부 사람들 이름은 계속 거론됐지만, 함께 고생했던 평생동지였던 우리의 이름은 어느 순간부터 빠졌다. '아마 착오가 있겠지' 애써 침착하려 노력했다. 시간은 계속 흘러갔다. '분명히 전화가 올 거야! 나랑 약속까지 했는데…' 한 달, 두 달, 석 달, 시간이 흘러도 소식이 없었다. 언론에선 연일 부산파니, 측근이니, 실세니 하면서 그들의 이름만 나왔다. 토사구팽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설마? 하면서도 나의 마음이 아프기 시작했다. 참 열심히 싸웠는데 결국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되놈이 받는다는 말처럼 그렇게 돼버렸다. 나는 진짜 열심히 했다."
"창당준비위원들 가운데 대다수는 대통령 선거 때 노무현 후보를 적극적으로 돕지 않았다. 일부는 오히려 타당 후보의 선거대책위원장을 한 이도 있었다. 하지만 그들 모두는 노후보가 대통령이 되고 나선 불나방처럼 날아와서 마치 일등공신인양 새롭게 변신하는 놀라운 솜씨를 보여줬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는가! 노무현 대통령 후보를 위해 고생한 대가가 바로 이것인가! 엄청난 충격이었다."
앞선 것이 기회주의적인 면에 대한 지적이었다면 다음에 나오는 것은 패권주의, 패거리의식에 대한 것이다.
그는 최근 새정치연합 혁신위원회가 발표한 인적쇄신안에 대해서도 "마음에 안 드는 사람은 쫓아내고 마음에 드는 자신들의 패거리들만 같이 당을 하겠다는 것"이라고 질타했다.
"정치개혁이 되지 않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가 패거리 문화 때문이라고 본다…시간이 흐를수록 친노 반노의 논란은 심해지고 여기에다 비노라는 용어까지 등장했다. 기가 찰 노릇이었다. 내 눈에는 마치 충성경쟁을 하는 것처럼 보였다."
"노무현 정신은 지역주의의 극복과 국민통합이다…노무현 정신은 특정세력의 전유물이 아니라, 우리민족이 함께 공유해야 할 정신이며, 이 정신에 동의하는 이들은 모두 친노세력이며 친DJ세력이며 개혁평화세력인 것이다.
◇한마디
*"죽어봐야 저승맛을 알겠는가." - 문재인 대표에게 재보궐 참패 책임을 물으며.
*"행정부 수반에 대한 기본적인 예의를 갖추는 것은 상식입니다." - 박근혜 대통령 시정연설 이후, 야당 의원 중 홀로 일어나 박수친 이유를 묻자.
◇법안 성적은
조 의원은 국회 산업통상자원위원회 소속이다. 그러나 상임위보다는 지역구 활동에 무게를 두고 있다. 올해 12개의 법안을 대표 발의했지만, 그중 '원자력 손해배상법' 개정안만이 지난 12일 국회를 통과 했을뿐 나머지는 모두 계류중이다.
지난 5일엔 변호사시험의 성적과 석차를 공개하는 내용의 '변호사시험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최근 로스쿨을 졸업한 국회의원 자녀들의 취업 특혜의혹이 연달아 제기된 데 따른 입법 추진이다.
◇요주의…정치형 정치인
정치형보다는 정책형이 주목받는 요즘이다. 정책 이슈를 설명하고 목소리를 낼 필요가 있다. '문재인 물러나라' 외 다른 주요 사안에 대한 입장도 밝혀주시길.
참고로 조 의원은 역사교과서 국정화 논란과 관련 "여야가 국정이냐 검정이냐라는 프레임에 갇혀 국론 분열을 이끌고 있다"며 "(교과서)내용을 갖고 토론하면 되지 왜 형식을 두고 싸우나"라고 말했다. 맞는 말씀이긴 한데….
[프로필]
△경남 고성(47) △경남고-부산대 토목공학 학사-부산대 대학원 석사·박사 △16대 대선 노무현 후보 정책보좌역 △대통령직 인수위 기획조정분과 자문위원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자문위원 △열린우리당 원내부대표 △17대·18대·19대 국회의원△민주당 최고위원 △새정치민주연합 최고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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