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경, 단독처리라도 하려 했다"-정의화의 꿈과 철학

[the300][머투초대석]北평양서 의료봉사 희망…"국회미래연, 중장기 어젠다"

국회 의장- 여야 원내대표 국회법 중재안 수용, 황교안 인준안 처리 관련 회동
"제 인생이 15년쯤 남았다고 하면 국회의원 임기를 마친 뒤엔 13년이다. 마지막 3년은 집사람과 함께 보낼 생각이니 10년이 남는다. 그 10년간 무엇을 할지가 요즘 고민이다."

5선 국회의원이자 입법부 수장인 정의화 국회의장. 국회의원으로 올라야 할 산은 다 오른 셈이다. 하지만 그의 시선은 내리막길이 아니라 또다른 10년을 내다보고 있었다.


예산안과 부수법안의 연내 일괄통과, 국회법 개정안 처리, 추가경정예산안 통과, 국회 운영개선 등 굵직한 현안처리로 의장임기 절반을 보낸 정 의장을 국회에서 만났다.

◇퇴임후 10년...'북한 봉생병원' 꿈꾸는 '닥터 정' 

외과의사 출신인 정 의장은 퇴임후 북한에서 의료지원을 펼치는 '한국의 슈바이처'를 꿈꾼다.  정치나 의술이나 사람을 살리는 일이기는 매한가지인만큼 앞으로 그의 길이 지금과 크게 다를 것 같지도 않다.


정의장은 "퇴임후에는 장인 고향인 평양과, 장모 고향인 의주에 30병상 정도의 병원을 짓고 봉사하고 싶다"고 말했다. 정 의장 희망대로라면 '북한 봉생병원'이 생길 수 있다. '생명을 받든다'는 뜻의 봉생병원은 그가 의사이자 CEO(최고경영자)로 일생을 몸담은 종합병원이다. 부산 동구와 동래구에 있다.


그의 장인인 고 김원묵 박사가 부산에서 개업한 봉생신경외과가 지금 봉생병원의 모태다. 김 박사의 조부, 즉 정 의장의 처증조부가 1910년대에 평양에 '봉생의원'을 연 게 시초다. 김원묵 박사는 전쟁통에 단신으로 월남했다.


우선 첫 단계로 의료 봉사활동을 준비하려 한다. 정의장은 "통일부장관을 통해 북한에 제안도 넣어놓았고 좋은 소식을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정 의장은 "북한에서 미국 시민권을 가진 한국인들은 수술을 하게끔 받아주던데 북한당국에서도 대한민국 의사들도 의료봉사를 할 수 있도록 해줬으면 좋겠다“"라고 덧붙였다. 미국 시민권이라도 있었으면 하는 농담이 농담처럼 들리지 않을 정도로 정의장의 바람은 진지하고도 오래된 것이다.

 

최근 논란이 됐던 봉생병원 메르스 진료거부 논란에 대해서도 언급할때는 자식들에 대한 애틋한 사랑도 묻어났다. 정 의장은 "병원에서 치료가 안된다는 식으로 마치 기피하는 듯한 문구를 사용해서 서서 오해를 샀다"며 "그래서 아들에게 오해가 생기지 않게 표현하는 법을 배우라고 했다. 아들도 TV에 나와서 잘못했다고 사나이답게 사과해서 잘 했다고 했다"고 말했다. 봉생병원은 현재 정 의장의 3남이 기획이사를 맡고 있다.


정의장은  초등학생이던 아들 셋을 한꺼번에 하루아침에 전학시킨 적이 있다. "미국 유학을 마치고 돌아와보니 우연히 아들 셋이 모두 사립초등학교를 가게 됐다. 나중에 어른이 되어 사회생활을 할 때 세상 사리를 알아야 할텐데, 사립학교는 아무래도 좋은 환경에서 다니는 곳이라서 어렵고 힘들게 사는 친구들에게도 배워야 한다는 의미에서 공립초등학교로 아들 셋을 다 옮겼다. 학교교장이 '우리가 뭐 잘못했냐'고 물어왔을 정도"라고 말했다.

 

◇"추경 여야 합의 안됐으면 밤 10시 쯤 단독처리 했을것"

 

정의장을 만난 지난달 23일, 그의 표정은 홀가분했다. 오전에 들려온 여야 추가경정예산안 처리 합의 소식 덕이다. 이날 여야는 우여곡절 끝에 추가경정예산안을 합의 통과시켰다.

정 의장은 "추경 합의가 안되면 밤늦게라도 기다려보고 정 안되면 단독 처리라도 하려고 했다"고 털어놨다. 그는 "그만큼 제때 추경이 통과되는 게 중요하다. 국민들 삶이 걸린 문제"라고 말했다.

정의장은 "만약 여야가 합의를 하지 못해 여당 단독으로 처리했다면 내가 취임한 뒤 첫 단독처리가 될 뻔 했다"고 말했다. 그는 "협상이 진행되는 동안 야당에는 '단독 처리할 수 있다'고 협박했고 여당에는 '내 사전에 단독 처리는 없다'고 했다. 내가 원래 그런 것 잘한다"고 너털웃음을 쳤다.

국회법 개정안을 놓고 견해차를 드러냈던 박근혜 대통령에 대해서는 말을 아꼈다. 그러면서도 "대통령과 참모진 사이 원활한 소통이 중요하다"는 말로 답답한 심경을 비쳤다. 그는 이날 오후엔 국회로 자신을 찾아온 현기환 청와대 정무수석을 만나 30분 넘게 대화했다.
 
"이번 추경예산안만 해도 국회 예산정책처가 있으니 기획재정부가 마음대로 못하는 것 아닌가"라며 입법부와 행정부 간의 건전한 경쟁과 긴장관계를 강조했다.

정의화 국회의장이 7월3일 판문점 JSA안보견학관 주위의 건물들에 대해 질문하고 있다. 2015.7.3/뉴스1

 

국회미래연 설치, 임기중 숙원


정 의장이 힘을 실어 추진해오던 수많은 현안 중에 국회미래연구원 설치법이 있다. 국민 대표기구인 국회가 단기과제에 갇히기보다 국가 중장기 과제를 초당파적으로 연구하자는 취지다. 정의화 국회의장과 박형준 국회사무총장이 의기투합했다.


정 의장은 "국회입법조사처는 단기 대응 과제 위주고, (정부의) KDI(한국개발연구원)도 중장기 과제에 대한 연구를 제대로 못한다"며 "정부에 중장기 과제 연구하는 곳이 없는데다, 국회도 비슷한 조직을 만들어 경쟁하도록 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

여야 의원들도 상당수 이 같은 취지에 공감하고 있다. 미래연구원 설치법이 속도를 내지 못하는 것은 여야의 잦은 지도부 교체 영향도 있다. 2년 의장임기가 반환점을 돈 정 의장은 연내 법안을 통과해 미래연구원 설치에 속도를 내고자 했다.

◇'영수증 국회의장?…'"피땀흘린 돈은 함부로 못쓴다"
 
정 의장은 '돈'에 대한 철학이 확고하다.  디테일에 강하다는 평가와 지나치게 작은 부분까지 직접 따진다는 평가가 엇갈린다. '영수증 국회의장'이란 별명도 있다.

 
정 의장은 그러나 "피땀 흘려 번 돈은 함부로 못쓴다"고 잘라 말했다. 국회의원과 정당에는 국민 세금으로 세비·보조금을 지급한다. 그 씀씀이를 정확히 하는 건 국회의원이자 입법부 수장으로서 당연한 일이라는게 그의 생각이다.
 
"남들이 나를 보고 (국회의원) 배지까지 달고 쩨쩨하다고 그랬다. 예컨대 돈 낼 때 영수증 본다는 것이다. 그런데 자기가 돈 내면서 영수증 보는 게 당연하지 않은가. 돈은 10원짜리 한 개까지 정확해야 한다. 어머니께 배우기로도 그렇다. 1만원 주면서 '뭐 좀 사오라' 했을 때, 얼마가 남았다고 잔돈까지 주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은 다르다. 정치권 들어오니 사람들이 돈을 대충 쓰는 것 아닌가 싶다."

◇내달초 부산서 사진전, 재출마 여부엔 "…"
 
정 의장은 정치입문 전부터 사진 사랑이 유별났다. 의대 졸업을 앞두고 대학생 신분으로 사진 개인전을 열었다. 정 의장은 "당시에는 갤러리도 마땅한 것이 없어서 다방을 빌렸다"며 "대학생으로 사진전을 연 것은 그때까진 내가 처음이었을 것"이라고 했다.

정의장은  7일부터 다음달 4일까지 부산 해운아트 갤러리에서 두번째 개인 사진전 '정의화의 시선'을 연다. 이후 다음달 7~11일에는  서울 국회 의원회관으로 자리를 옮겨 전시한다.

'사진찍는 국회의원'으로도 꽤 알려진 그는 국회의장 선출 이후에는 카메라를 들 기회가 많지 않은 게 아쉽다. 그는 "국내에서는 아무래도 사진을 많이 못찍어 얼마전 해외 순방을 나갔을 때 찍어보려 했는데 경호원들이 카메라 앵글에 자꾸 들어와 제대로 못찍었다"며 웃었다.
 
사진전을 여는건 내년 20대 총선 출마를 염두에 둔 것으로 비칠수 있다. 하지만 정의장은 43년간 촬영한 사진기록을 정리하는 의미일뿐 이라고 일축했다. 사진전 수익도 전액 기부할 생각이다.  
 
아직까지 국회의장을 마치고 다시 출마한 전례는 없다. 정의장처럼 자신의 목소리를 내며 정치력을 키운 국회의장도 전례없긴 마찬가지다. 
 
 
정의화 국회의장이 6월25일 저녁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의사봉을 두드리며 개회를 선언하고 있다.2015.6.25/뉴스1

정의화는 누구?

정 의장은 대표적인 의사출신 정치인. 부산대 의대 졸업 후 세브란스병원 등을 거쳐 신경외과 전문의가 됐다. 장인이자 신경외과 의사인 김원묵 박사가 1974년 사고로 사망하자 김 박사의 신경외과 병원을 승계했다.

정 의장은 20대인 데다 레지던트 과정이어서 당장 수술을 맡거나 병원을 경영할 처지가 아니었다. 정 의장은 이때 동요하는 직원들과 아내를 안정시키려 과감한 결정을 내린다. "3년 뒤 전문의가 돼 돌아오겠다"며 직원들의 역할과 직급에 따라 50%, 많게는 300%까지 급여를 파격 인상한 것도 그중 하나다. 의사이기 전에 병원 경영자로 먼저 능력을 발휘한 셈이다. 이후 봉생병원은 수술 실력은 물론, 경영 면에서도 성장을 거듭했다.

의사 겸 병원 경영자로 지역에 이름을 알리면서 정치권도 그에게 관심을 보였다. 1996년 15대 총선을 앞두고 김영삼 대통령 뜻에 따라 새 인물을 찾던 박관용 대통령특보가 출마를 제안했다.

정 의장은 15대 총선 후 부산(중구·동구)에서 19대 총선까지 내리 5선을 했다. 정치적으로 두각을 나타낸 건 3선인 17대 국회부터다. 야당 소속 재정경제위원장(현 기획재정위원장)을 맡았을 때 근로장려세제(EITC) 도입 등을 이끌었다. 2006년엔 남북의료협력재단을 설립, 대북 의료지원에 나섰다.

2008년 광주와 전남 여수 각각의 명예시민증을 받았는데 광주명예시민은 한나라당 의원으론 처음이었다. 2009년엔 2015년 광주하계유니버시아드 대회 유치위원장으로 뛰며 유치에 성공했다. 

동서화합, 남북관계에 대한 관심은 자연히 외교정책에 대한 고민으로 이어졌다. 정 의장은 한국의 외교현실을 "코끼리의 네 다리에 낀 상황"으로 표현한다. 이른바 주변 4강인 미·일·중·러에 대한 양자·다자외교에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2010~2012년 국회부의장을 지냈고 이 기간 박희태 국회의장이 과거 전당대회 도중 '돈봉투' 사건으로 의장에서 물러나자 의장 직무대행을 맡았다. 2011년 11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안 국회 본회의 표결 당시 박 의장을 대신해 회의를 주재했다. 이때 김선동 민주노동당 의원이 본회의장 의장석 앞에서 터뜨린 최루탄 가루를 뒤집어썼다. 2014년 2년 임기의 국회의장을 맡았다.

1948년 창원에서 태어나 1955년 부산의 학교장으로 부임한 아버지를 따라 이주했다.
대학 시절 허리디스크를 앓았다. 세브란스병원 인턴 시절 수술이 불가피할 정도로 디스크가 악화됐다. 이 때문에 병역이 면제됐다. 지금도 병역면제란 지적을 받으면 "옥석을 가려달라"고 강조한다.

△경남 창원(67) △부산고·부산대 의대 △15·16·17·18·19대 국회의원 △봉생병원 원장 △한나라당 원내총무 권한대행 △17대 국회 재정경제위원장 △국회 2012년 여수세계박람회유치특별위원회 위원장 △한나라당 인재영입위원장 △한나라당 세종시특별위원장 △한나라당 최고위원 △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장 △18대 국회 후반기 국회부의장 및 국회의장 직무대행 △19대 국회 후반기 국회의장 △2015광주유니버시아드 대회 유치위원장·조직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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