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땅에 도시 세우는 '세종시의 아버지' 이춘희

[the300]이춘희 세종시장 사용설명서

그래픽=이승현 디자이너


[신도시 설계자]

이춘희 세종시장의 손때가 묻은 도시는 우리나라 곳곳에 있다. 분당, 일산, 판교, 동탄 등 맨땅에 세운 도시만 10개가 넘는다. 1990년대 이후 수도권 과밀화와 서울 지역 부동산 가격 폭등을 억제하기 위해 건설된 신도시들이 모두 그의 작품이다.

 

이 시장은 건설교통 분야 정통관료 출신의 도시 전문가다. 고려대 행정학과 4학년 때인 1978년 행정고시에 합격해 2008년 건설교통부 차관으로 퇴임할 때까지 약 30년을 공직에 몸담았다.

 

그는 1·2기 신도시 건설에 참여하며 도시 전문가로서 자리매김했다. 건설부 재직 당시 1989년 정부가 발표한 '수도권 5개 신도시 건설사업'에 따라 분당과 일산 등을 만들었다. 참여정부 시절엔 청와대 건설교통비서관과 건설교통부 차관 등을 역임하면서 동탄, 판교 등 제 2기 신도시 설계에 참여했다.

 

신도시 건설 경험은 고스란히 이 시장의 건설 철학에 반영됐다. 주택공급을 넘어 수준 높은 주거환경과 직주(직장과 주거)근접 원칙 등을 고려하는 게 도시계획의 새로운 패러다임이라는 것이다.

 

이 시장은 21세기 지식정보화 시대의 도시는 20세기 산업화 시대와 달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산업화 시대의 도시는 공해 때문에 주거지역과 산업 현장의 분리가 중요했다"며 "지식사회에서는 오히려 공해가 산업보다 교통에서 발생하는 만큼 집과 직장을 가까이 둬 걸어서 출퇴근할 수 있게 하면 공해를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이 시장은 "정부청사 근처에 살면서 5분 거리에 걸어서 다니는 도시를 꿈꿨는데 이같은 직장과 집의 근접 원리를 처음 적용해 본 게 세종시"라고 했다.

 

이 시장은 '도심의 공유'가 세종시만의 차별 지점이라고 했다. 그는 "기존 도시는 가장 힘센 사람, 돈 많은 사람이 도심을 차지해 관청, 기업 등이 자리잡고 외곽으로 갈수록 변두리다"며 "세종시는 호수공원을 도심 한가운데 두는 등 모든 시민들이 함께 쓰는 공간을 도심에 만들었다, 다른 도시와 철학 자체가 다르다"고 했다. 


이춘희 세종시장 인터뷰/ 사진=이기범 기자


[그의 분신 세종시]

그가 세종시와 인연을 맺게 된 것은 2003년 참여정부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 합류하면서였다. 신도시 건설 분야에서 능력을 인정받은 이 시장은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핵심공약이었던 신행정수도 건설을 위한 신행정수도건설추진지원단장을 맡았다.

 

헌법재판소가 2004년 신행정수도건설특별법을 위헌이라고 결정하며 참여정부의 계획은 차질을 빚었다. 행정기능 전부가 아닌 중앙부처 일부가 이동하는 행정중심복합도시가 대안으로 제시됐고 그는 초대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장(행복도시건설청장)을 맡아 세종시 밑그림을 직접 그렸다. 이 시장은 입지 선정에서 토지보상 협상, 도시명 결정, 도시계획 수립, 설계까지 세종시 건설의 모든 것을 주도했다.

 

이 시장은 참여정부에서 건교부 차관까지 지내며 노무현 대통령 재임 중 세종시 건설에 올인했다. 자신의 손으로 직접 만든 세종시를 이제는 키우는 입장에 선 이 시장은 "세종시는 나에게 분신과도 같다"며 "신행정수도 추진을 시작한 지 4000일 정도가 지났는데 이 도시를 제대로 반석에 올리기 위해서는 또 다른 4000일이 필요하다"고 했다.

 

[정치인보다 행정가]

지난해 6·4 지방선거에서 세종시장으로 당선된 이 시장은 정치인보다 행정가에 가깝다. 30년 공직생활을 마친 뒤 뒤늦게 현실 정치에 뛰어든 점, 전북 고창 출신으로 지역연고가 없음에도 '세종시 완성'을 위해 시장직에 출마한 점 등에서 그렇다.

 

이 시장 스스로 자신은 정치인이 아니라 행정가라고 강조한다. 정치에 뜻을 품었다면 국회의원에 출마했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이 시장은 "세종시 만드는 일 때문에 정치를 시작한 것이지 정치 자체가 목표가 아니다"라고 했다.

 

그럼에도 이 시장이 정치를, 그것도 야당을 택한 이유는 뭘까? 그의 저서 '4000일의 약속'을 살펴보면 알 수 있다.

 

"평생을 공무원으로 살면서 특별한 정치적 입장을 갖지 않았다. 민주당에 입당한 것은 세종시에 대한 애정 때문이다. 세종시 건설은 민주당이 책임지고 추진한 사업이며 민주당은 세종시 건설에 대한 입장이 흔들린 적이 없다. 이 사업을 제대로 마무리할 정당은 민주당이고 그래서 자연스럽게 선택했다" 


이춘희 세종시장 인터뷰/ 사진=이기범 기자


[연관검색어→노무현]

이 시장은 노무현 전 대통령과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서 처음 만났다. 여타의 친노(친노무현)계 인사보다 한참 늦은 인연이다. 하지만 이 시장은 신행정수도 건설이라는 참여정부 대표 공약을 앞장서 추진하며 노 전 대통령의 신임을 얻었다. 이 시장은 '노무현은 운명'이라며 '세종시 완성'을 노 전 대통령과의 약속이라고 표현한다.

 

노 전 대통령은 이 시장에게 전권을 줬다. 중간 보고도 받지 않을 정도로 믿었다. 함께 사진을 찍을 때엔 직접 이 시장의 넥타이를 고쳐 매줄 정도로 이 시장을 아꼈다.

 

두 사람 사이의 관계를 보여주는 일화가 있다. 2004년 신행정수도건설특별법에 대한 위헌 결정 직후 노 전 대통령과 신행정수도추진위원들이 오찬을 가졌다. 노 전 대통령은 식사 30분 전 이 시장을 따로 불러내 '미안하다, 대통령이 힘이 없어서 당신들이 고생이 많다'는 취지의 말을 했다.

 

이 시장은 노 전 대통령 퇴임 전날 청와대 환송 만찬에서 이 일화를 꺼내며 "당시 실무책임자로서 응분의 책임을 지겠습니다라고 말씀 드리려 했지만 대통령님 말씀에 몸둘 바를 몰랐습니다. 끝까지 저를 믿고 일을 맡겨주셔서 깊이 감사드립니다"라고 환송 인사를 대신했다.


[어록→"나도 은퇴하면 여기서 살겠다"]

2005-2006년 이 시장은 세종시 토지보상 문제를 놓고 주민들과 힘겨운 협상을 벌였다. 개발 과정에서 조상 대대로 살아온 터전을 내줘야하는 원주민들은 정부에 대한 불만이 컸다.

 

이 시장은 주민들에게 "여러분들이 이 도시의 첫 번째 주민이다"며 세종시를 살기 좋은 도시로 만들겠다고 다짐했다. 보상 받더라도 세종시를 떠나지 말라는 이 시장이 못 미더웠는지 한 주민이 "그럼 당신도 세종시에 와서 살 작정이오"라고 물었다. 이에 그는 "당연히 은퇴 후 여러분과 함께 여기 살겠다“고 했다.

 

이 시장의 이 약속은 세종시장 출마로 이어졌다. 2011년 인천도시공사 사장 재직 당시 세종 주민들이 찾아와 2012년 초대 세종시장 선거 출마를 요청했다. 아무 연고도 없이 선거에 뛰어든 그는 개표 결과 유한식 당선자와 불과 4%포인트 차로 아쉽게 낙선했다. 하지만 2년 뒤 열린 제6대 지방선거에서 전임 유 시장과 재대결해 15.6%포인트 차로 설욕에 성공했다.


SBS 드라마 '하늘이시여' 방송화면 캡쳐


[이 한 장의 사진]

이 시장은 TV 드라마에 '카메오'(단역으로 출연하는 유명인)로도 출연한 적이 있다. 2006년 행복도시건설청장 재직 당시 화제의 드라마였던 '하늘이시여'에 출연해 기자 대상 브리핑을 하는 장면을 연기했다. 이 시장의 출연은 당초 예정에 없던 것이었다. 제작진은 행정도시 브리핑 장면에 보조연기자를를 투입하려 했으나 연기가 너무 어색해 즉석에서 이 시장을 섭외했다.

 

이 시장의 드라마 출연은 논란을 낳기도 했다. 정부가 드라마까지 동원해 행복도시를 홍보한다며 당시 한나라당(현 새누리당)이 문제 삼은 것이다. 이 시장은 당시를 떠올리며 "전혀 그런 의도가 없었고 단지 드라마 촬영에 장소를 협조하고 카메오로 출연한 것일 뿐"이라며 "정부로서 따로 비용을 들이지 않고 국가 정책을 홍보할 수 있는 기회를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고 출연 소감을 밝혔다.

 

[요 주의!→업무추진비 과다 사용 논란]

지난해 10월 열린 세종시 국정감사에서 이 시장의 과다한 업무추진비 사용이 논란이 됐다. 당선 직후인 3분기(7월~9월) 업무추진비 사용액이 유한식 전 시장과 비교해 많았다.

 

이 시장은 해당 기간 동안 5023만원(총 123건) 가량의 업무추진비를 썼다. 반면 유 전 시장은 2분기(4~6월)에 1058만원, 1~2분기 합쳐서는 4982만원을 썼다. 이 시장은 업무추진비 대다수를 음식점 등에서 실시한 간담회 등의 오·만찬 비용으로 썼다.

 

이 시장은 업무추진비 과다 사용 지적에 대해 "취임 초 시민과의 대화, 읍면동 직원, 유관기관 등 인사 차원으로 식사 비용 지출이 많았던 점은 인정한다"며 "지적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분기별로 공개하던 사용 내역을 매달 1회 알리겠다"고 해명했다.


그래픽=이승현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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