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기호 "박상옥 대법관 후보자, 박종철 고문치사 은폐 가담" 주장

[the300] "임명동의안안에 관련 내용 빠져…고의 누락 의혹"

서기호 정의당 의원이 지난해 29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법사위 전체회의에서 김현웅 법무부 차관에게 기업인 가석방과 관련해 자료를 들어보이며 질의를 하고 있다. 2014.12.29/사진=뉴스1

대법관 후보자로 지명된 박상옥 전 형사정책연구원장이 검찰의 축소·은폐 의혹이 일었던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의 담당검사였다고 서기호 정의당 의원이 주장했다. 

대법관 후보자 인사청문특별위원회 위원인 서 의원은 3일 보도자료를 통해 "대법관 임명동의안의 임명동의 요청사유나 박 후보자의 주요경력에도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을 담당했다는 내용은 빠져 있어 일부러 누락시킨 것 아니냐는 의혹이 일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따라 오는 11일 예정돼 있는 대법관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 박 후보자의 당시 역할과 대법관으로서의 자질을 놓고 논란이 예상된다.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은 서울대학교 3학년이던 박종철군이 1987년 1월14일 치안본부 대공수사관들에 의해 영장 없이 불법으로 강제 연행된 후 경찰의 물고문 등으로 숨진 사건이다.

경찰은 같은 달 15일 박군이 "탁치니 억하고 죽었다"면서 단순 쇼크사했다고 발표했으나 부검의의 증언과 언론보도 등을 통해 의혹이 제기되자 사건발생 5일 만인 19일 물고문 사실을 공식적으로 시인했다. 이 사건은 이후 1987년 6월 민주화운동의 출발점이 됐다.

검찰은 같은 해 2월27일 고문경찰관으로부터 "범인이 3명 더 있다"는 자백을 받았으나 수사를 진행하지 않고 2명만 기소하는 선에서 사건을 매듭지으려 했다. 그러나 같은 해 5월18일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이 "고문경찰관이 3명 더 있다"고 폭로한 후 재수사에 대한 여론이 커지자 검찰은 3명을 추가로 구속했다.

검찰은 또 당시 치안본부장에 대해 "범인 축소 조작에 가담한 혐의가 전혀 없다"며 무혐의 처분했으나, 1987년 민주화항쟁 이후인 1988년 1월15일에서야 직권남용 및 직무유기 혐의를 적용해 구속했다.

2009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는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의 관계기관대책회의 은폐·조작 의혹'에 대한 결정문을 통해 "검찰은 사건의 진상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음에도 직무를 유기하여 수사를 제대로 진행하지 못하다가 국민에게 은폐사실이 폭로된 이후에야 추가 공범을 포함해 치안본부 관계자 등 은폐에 가담한 책임자를 최소한만 기소해 결과적으로 관계기관대책회의의 부당한 개입을 방조하고 은폐한 잘못이 있다"고 밝혔다.

서 의원은 "대법관은 우리 사회의 정의를 수호하고 양심을 대변하는 최후의 보루"라며 "사법부 특히 대법원은 그 어떠한 권력 아래에도 소속되지 않으면서 독립성이 보장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박 후보자는 당시 담당검사로서 사건의 진실을 알고도 권력층의 압력에 굴복하여 헌법이 보장하는 수사의 독립성을 지키지 못하였을 뿐만 아니라 현재까지도 반성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다"며 "대법관으로서 자질을 의심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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