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복되는 '학살' 논란…한국 정당공천 '흑역사'

[the300][런치리포트-오픈프라이머리 명암③]정당 공천, 제3대 총선부터...타 계파 배제 수단 악용

해당 기사는 2015-01-07 런치리포트에 포함된 기사입니다 PDF 런치리포트 뷰어
6·4 전국동시지방선거 투표가 시작된 6월4일 오전 전북 고창군 흥덕면 내사마을 마을 회관 앞에서 갓과 흰색 도포 차림의 유권자들이 선거벽보를 살펴보고 있다. 사진=뉴스1.

대통령, 국회의원, 도지사, 시장, 군수, 구청장 등은 국민 각자가 직접 1표를 행사해 뽑는 선출직이다. 각각의 직책별로 일정 수준의 나이 제한은 있을 수 있지만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후보로 나서는 데 제한이 없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럼에도 후보들은 선거철이 다가오면 정당 공천에 목을 맨다. 정당의 조직 활용을 통해 당선 가능성을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특정 정당이 특정 지역의 민심을 대변하는 정치적 지형 토대가 쌓인 대한민국에서는 정당 공천의 결과가 곧 당선으로 이어지는 함수 관계를 양산했다. 후보들이 정당 공천에 목을 맬 수밖에 없는 이유다.

◇계파정치 양산하는 공천…정치 후퇴 견인

한국 정당사에서 공천 과정은 투명하고 공정하지 못했다. 특정 계파 보스의 이익에 좌우됐고, 결국 갈등으로 이어졌다.

정당 공천이 선거 당선의 8부 능선으로 인식되면서 공천권을 가진 사람과 이를 따내려는 사람 간의 권력관계가 형성됐기 때문이다.

결국 하향식 공천 제도가 뿌리 내려진 우리나라 현실에서 당권을 쥔 정당 대표가 공직선거 후보자를 추천하는 공천권을 행사하게 됐고, 당권 및 공천권을 둘러싼 당권 경쟁과 계파정치가 우리 정치를 후퇴시키는 결과로 나타났다.

◇정당 공천은 제3대 총선부터…높은 당선 가능성 목도

우리나라 정당 공천의 역사는 이승만 대통령 시절인 제3대 총선에서 집권당인 자유당이 203개의 의석 중 181명의 공인후보자를 선정해 발표하면서부터다. 이후 당 차원의 전폭적인 선거지원에 나서 114명을 당선시켰다. 무소속이 67명, 민주민국당이 15명 당선된 것에 비교해 압도적인 결과였다.

여야가 각각 24명의 국회의원을 당선시키는데 그치고 무소속 당선자만 126명을 배출했던 제2대 총선과 비교해 정당의 공천이 얼마나 당선 가능성을 올릴 수 있는지를 확인시켜준 선거였다.

이후 정당공천제도는 대선과 총선을 두루 거치며 유명무실한 군소정당들을 정비하는 역할을 했고 정당 정치의 기틀을 마련하는 초석이 됐다는 평이다.

◇공천, 당선 가능성 높이는 만큼 부작용도 확연

그래픽=이승현 디자이너.

그러나 정당의 공천이 당선 가능성을 높여주는 역할을 함에 따라 부작용도 선거 과정에서 확연히 드러났다.

제7대 총선에서 야당인 신민당에서 발생했던 이른바 '진산파동'이 대표적이다. 신민당 유진산 당수가 후보 등록 마감 3분 전에 자신의 지역구인 서울 영등포구 갑구 출마를 포기하고 전국구(현 비례대표) 기호 1번 후보로 등록을 해 당권을 둘러싼 내홍을 촉발했다.

가까운 시기에는 18대 총선 공천 과정에서 불거진 '친박(친 박근혜)계 학살'이 있다. 이명박 대통령 취임 이후 당권까지 거머쥔 '친이(친 이명박)계'가 당내 대선 경선 경쟁자였던 박근혜 의원 측근들을 공천에서 대거 배제한 사건이다. 공천을 받지 못한 친박계 인사들은 탈당해 '친박연대'를 구성하고 선거에서 총 14석의 의석을 확보했다.

19대 총선에서는 반대로 보복공천이 이뤄졌다. 역으로 당권을 잡은 친박계가 친이계 출신 다수를 공천에서 탈락시켜 계파 갈등의 골을 키운 것.

새정치민주연합(당시 민주통합당)의 19대 총선 양상도 비슷하다. 한명숙 대표가 취임하면서 당권을 잡은 '친노(친 노무현)계'는 이명박 대통령의 실정으로 총선승리가 확실하다는 판단 아래 이미 공천을 받은 후보를 배제하고 다른 후보를 공천하는 무리수로 계파갈등을 노출하며 총선 패배를 자초했다. 

여야 모두 공천 부작용을 없애겠다고 공언했지만 결과는 상대 계파 '학살'에 지나지 않았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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