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조사 요구 13대 이후 89건…'보고서' 겨우 11건

[the300][국정감사 보고서③]정치 쟁점화로 유야무야 일쑤…비 정치 문제는 합의 도출

해당 기사는 2014-12-29 런치리포트에 포함된 기사입니다 PDF 런치리포트 뷰어
그래픽=김지영 디자이너
국정조사는 중요한 국가 현안에 대해 국회가 진상규명과 조사를 할 수 있는 수단이다. 국회 재적의원 4분의 1 이상이 서명하면 국정조사요구서를 제출할 수 있고 본회의에서 과반 이상이 찬성하면 국정조사를 진행할 수 있다.

국정조사 요구는 야당이 단골로 들고 나오는 메뉴이지만 실제 국정조사 계획서가 승인을 받은 경우는 드물다. 양당제 중심의 우리나라에서 여야의 합의가 없다면 한 걸음도 나아가기 어려운 구조 때문이다.

국회사무처 의정자료집과 의안정보시스템 등을 통해 분석한 결과 13대 국회부터 지금까지 90건의 국정조사 요구서가 제출됐으나 조사계획서가 받아들여진 경우는 25건에 그쳤다.

특히 국정조사의 결과를 기록으로 남기고 공식화하는 조사보고서 채택 건수는 11건 뿐이다. 14건은 조사활동을 벌이고도 여야의 이견 등으로 보고서를 채택하지 못했다.

결과보고서가 채택되지 못한 채 마무리된 굵직한 국정조사는 한 두 건이 아니다.
13대 국회 5공특위나 5·18 광주민주화운동 진상조사, 14대 때 12·12 군사쿠데타적 사건과 율곡사업 및 평화의 댐 건설 의혹, 상무대 공사대금 정치자금 유입 의혹 사건 등은 결과보고서 채택에 실패한 대표적인 케이스다. 16대의 경우 한빛은행 대출관련 의혹 사건 등 4건의 국정조사가 열렸으나 한 건도 보고서가 채택되지 않는 불명예를 기록했다.

결과보고서 채택 실패가 많은 이유는 국정조사가 진상규명보다 정치적 공세 수단으로 이용돼서다. 국정의 문제점을 드러내 반사이익을 얻을 수 있는 야당 입장에선 국정조사의 표적을 '실세'로 겨냥하는 게 여러모로 유리하다는 게 정치권의 공통된 해석이다.

전진영 국회 입법조사처 조사관은 "국정조사 요구 사안 대부분이 여야가 첨예하게 대립하는 안건이나 전임 대통령의 공과에 대한 평가와 관련된 정치적 사안이었다"며 조사요구에 비해 조사가 이뤄지는 경우가 매우 적고, 조사결과보고서 채택이 부진한 이유를 설명했다.

이 같은 정치공세는 진보와 보수를 떠나 공통적으로 활용해왔다. 15대 한보그룹 국정조사의 경우 야권은 김영삼 전 대통령의 차남 김현철씨를 조사대상에 포함시킬 것을 주장한 반면 신한국당은 각종 의혹설의 당사자들을 증인이나 참고인으로 불러야 한다고 맞섰다. 당시 표적은 새정치국민회의 김대중 총재였다. 국정조사 검증 대상에 처음으로 대검찰청이 포함되는 의미도 있었느나 결국 결과보고서 채택은 불발됐다.

촛불시위로 확산된 미국산 쇠고기 수입 국정조사에서는 수입의 주체를 두고 여야는 당시 노무현 전 대통령과 이명박 현 대통령 간의 책임공방 속에 헛심만 썼다. 같은 해 열린 쌀소득 직불금 부당수령 조사 역시 두 차례 조사기간을 연장했지만 노 전 대통령을 증인으로 세워야 한다는 한나라당의 주장에 결국 정쟁만 남긴 채 마무리됐다.

최근에는 국정원 대선개입 의혹이 여야 공방 속에 성과 없이 마무리됐고, 세월호 국정조사는 청문회도 열지 못한 채 90일간의 활동을 끝내야 했다. 모두 정치적으로 사안이 옮겨가면서 나온 결과다.

국정조사가 정치적으로 첨예하게 대립할 경우 조사계획서 승인조차 받지 못하는 예도 적지 않다. 민간인 불법사찰 및 증거인멸 사건은 특별위원회를 구성하고도 15개월간 단 한차례의 회의를 열지 못한 채 지난해 말 해산됐다.

그렇다고 국정조사가 모두 무의미했던 것은 아니다. 조사보고서가 채택된 11건의 사안을 살펴보면 삼풍백화점 붕괴 사건, IMF 환란원인규명과 경제위기 진상조사, 이라크 무장단체에 납치돼 살해된 김선일씨 사건 등 정치색이 옅은 사안들은 의미있는 국정조사로 기록된다.

지난해 보고서가 채택된 공공의료 정상화를 위한 국정조사 역시 진주의료원 매각을 중단하고 1개월 내에 재개원 방안을 마련하라고 의미있는 결론을 내렸다.

그러나 경상남도가 국회 국정조사를 거부하고 진주의료원 폐지를 강행하면서 국조 무용론이 일기도 했다. 경남도는 지자체 고유권한을 침해당했다며 헌법재판소에 권한쟁의심판을 청구했다가 폐업절차를 마무리한 뒤 슬그머니 취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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