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 27일 우리 군은 동해영토수호훈련을 컴퓨터 시뮬레이션 훈련으로 실시했다. 각종 상황에서 지휘관의 작전수행능력을 숙달하는 지휘소연습(CPX)으로 진행한 것인데 훈련에는 병력과 장비가 동원되지 않았다. 시뮬레이션 프로그램을 활용해 외부세력이 독도에 침입한 것으로 상정하고 대응하는 가상훈련으로 대체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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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2월 육군포병학교에서 실시한 합동화력시뮬레이터 전력화행사에서 관계자들이 시뮬레이터 시현을 참관하고 있는 모습 / 사진 = 뉴스1

군 안팎에선 한일관계를 감안해 수위조절을 했다는 비판이 일었다. 군 당국은 현지 해상 기상이 좋지 않아 지휘소 훈련으로 대체한 것이라고 했지만 가급적 일본을 자극하지 않기 위한 ‘로키(low-key·최소 대응) 행보’라는 분석이 많다.

이번 사례에서 보듯 컴퓨터 시뮬레이션 프로그램과 시뮬레이터를 통한 '가상훈련'은 광범위하게 활용된다. 특히 군수 시뮬레이터 기술은 공군 전투기·훈련기 등 고위험 장비뿐 아니라 최근에는 육군의 전차·장갑차, 해군 함정용 시뮬레이터까지 사용범위가 확대되고 있다. 전투원이 실탄을 사용하지 않고 쌍방교전을 할 수 있는 전술훈련 장비까지 등장했다.

◇실제포격 방불, 함정용 방수훈련 시뮬레이터도...=각종 시뮬레이션 훈련은 인공지능(AI), 빅데이터, 사물인터넷(IoT) 등 ICT 기술이 국방분야에 접목되면서 효용성을 높인다. 정찰분야에선 가상현실(VR)과 증강현실(VR) 기술이 적용된다. 우리 군은 정찰기와 무인기 등에서 수집한 영상정보를 통합 분석하는 '지능형 감시정찰 시스템'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육군은 '특수작전 모의체계훈련'에 전술훈련용 VR 기술을 적용한다. 최근에는 국내 기술로 개발한 '합동화력시뮬레이터'가 육군 포병학교에 배치됐다. 이 장비는 포병 관측요원의 표적 포착, 화력 요청·조정 능력을 키우는 훈련장비다. 포격 대상 지형과 육·해·공군에서 운영 중인 주요 화기의 포격 장면을 입체적으로 묘사하고 관측장비로 탄착점을 측정한다.

모든 군인이 숙명적으로 이수해야 하는 사격훈련도 시뮬레이션 훈련이 적용되고 있다. 고정된 표적에 사격하는 훈련이 아닌 쌍방 교전훈련은 실탄으로는 훈련 자체가 불가능하다. 실제 총기가 아닌 대체화기와 모사탄을 사용하는데 각종 특수음향 효과를 적용해 실전과 유사한 전장 분위기를 재현한다. 날씨 등 환경 변화에 따른 다양한 시나리오를 제공하고 야외·실내 등 다양한 배경에서 훈련할 수 있다.

운항 중인 함정(수상함·잠수함)에 균열 등 사고가 났을 때 이를 대비하는 '함정용 방수훈련' 시뮬레이터도 있다. 현재 우리 해군 1함대에 1기가 있는데 시뮬레이터에 탑승한 승조원이 균열에 따른 해수 유입 등 비상상황에 대비한 훈련을 할 수 있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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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7년 K9 자주포 조종시뮬레이터는 국내 기술로 연구개발에 성공했다. 당시 K9조종시뮬레이터 훈련 모습. / 사진 = 뉴스1

◇화력분야 높지만 시레이션 분야 가장 낮아= 우리나라 군수 시뮬레이션 기술은 어느 정도일까. 국방기술품질원(기품원)이 지난해 발간한 '국방과학기술 조사서'에 따르면 우리나라 국방과학기술 수준(2018년 기준)은 세계 주요 16개국 중 이탈리아와 공동 9위로 집계됐다.

조사서는 미국 국방과학기술 수준을 100으로 설정해 방위산업 선진국으로 분류되는 16개국을 평가했는데 미국에 이어 △프랑스(90) △러시아(90) △독일(89) △영국(89) △중국(84) △일본(85) △이스라엘(84) △한국(80) △이탈리아(80) 순이다.

우리나라는 국방과학기술 8대 분야 중 화력분야가 84%로 가장 높지만 국방 모델링&시뮬레이션(M&S) 및 국방 소프트웨어(SW) 분야가 76%로 가장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M&S 분야가 상대적으로 뒤져있다는 것으로 차세대 시뮬레이션·시뮬레이터 기술 역량을 키워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방산업계 관계자는 "우리 환경이 장비 이동이나 사격 등에 제약이 많아 군수 시뮬레이터를 통해 필요한 전술을 숙달하는 게 큰 도움이 된다"면서 "세계적으로 실전훈련이 가상현실과 증강현실을 이용한 합성훈련으로 대체돼 주요 군수시장을 형성하고 있는 만큼 기술력 확보가 시급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