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선진화법'…다수(多數)를 잊은 국회

[the300]

#2012년 5월 탄생한 ‘국회 선진화법’은 사실 정략적 타협의 산물이다. 2012년 19대 총선을 앞둔 시점, 당시 여당(새누리당)은 과반 의석 확보가 어렵다고 보고 ‘선진화법’을 공약으로 건다.

선거 결과는 여당의 과반 확보. 새누리당은 슬쩍 물러서려 했지만 “약속은 지켜야 한다”는 박근혜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의 한마디에 당론이 정리됐다. ‘친이 vs 친박’ 갈등이 불거진 또하나의 장면이었다. 총선에서 진 야당도 당연히 반겼다.

아이러니하게도 ‘선진화법’은 박근혜 정부를 두고두고 괴롭힌다. 불평과 불만도, 주류가 된 ‘친박(친박근혜)’으로부터 나온다. “이런 법을 선진화법이라고 부르는 것 자체가 코미디 같은 상황”(2013년 최경환 새누리당 원내대표) “다수결 원칙이 있는데도 야당의 결재 없이 법안 통과가 안 되는 것이 헌법 원리에 맞냐”(김진태 새누리당 의원). 오죽했으면 여당 의원들이 헌법재판소에 선진화법 권한쟁의심판 청구까지 했을까.

#‘국회의장의 직권 상정을 없앤 게 '선진화법'의 핵심이다. 머릿수로 밀어붙이는 이른바 ‘날치기’를 막자는 취지다. 날치기가 없다면 몸싸움할 필요가 없으니까. 해외 토픽 단골 메뉴였던 ‘동물 국회’도 사라진다.

‘식물 국회’가 될 부작용을 우려해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까지 만든다. 60%가 찬성하면 패스트트랙에 안건에 올라 자동 진행되도록 하는 장치다.

18대 국회 때 선진화법 제정을 주도한 원혜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가중다수결”이란 용어를 쓰며 설명한다. “51대49로 부딪치면 죽기 살기로 싸운다. 51%라도 충분한 대화와 타협으로 지지를 확보하자. 60%가 넘는 안건을 소수 야당이 반대하는 것은 곤란하다는 게 패스트트랙의 취지였다”. 하지만 폭력 없는, 타협을 전제로 한, 선진화된 국회를 지난 8년간 본 적이 없다.

#‘선진화법’이 몸싸움 관행을 바꾸긴 했다. (지난 4월말 패스트트랙 지정 과정에서 발생한 폭력 사태로 다시 등장하긴 했지만 말이다). 대신 다수결 원칙을 잃었다. 60%의 가중 다수결도 무력하다. 패스트트랙 시한이 지났는데도 상정된 안건은 없다.

소수 의견을 위해 도입한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는 4년만에 변질됐다. 2016년 2월 민주당이 야당 시절 테러방지법 원안의 본회의 의결을 막기 위해 사용한 게 선진화법 이후 첫 필리버스터다. 2월 23일부터 3월 2일까지 만 8일, 192시간 25분 동안 진행했다. 총 38명의 의원이 연단에서 호소한 뒤 표결했다. 당시 박근혜 대통령은 "이것은 정말 그 어떤 나라에서도 있을 수 없는 기가 막힌 현상들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2019년 12월엔 기막힌 현상에 기괴한 상상력이 더해져 필리버스터의 어원(약탈자)을 떠오르게 한다. 반대하지 않는 법안은 물론 회기 일정 안건에도 필리버스터를 걸며 스스로를 희화화한다.

#국회법상 다수결 조항이 존재하지만 대부분의 안건이 ‘합의 처리’다. 우리도 착각한다. ‘표결’보다 ‘합의’를 도덕적·감성적·정치적 측면에서 우월한 것으로 받아들인다. 자연스레 합의에 집착한다. 소수가 반대하면 방법이 없다. 데모크라시(democracy·민주주의)가 아닌 ‘비토(veto·거부) 크라시’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민주당 사무총장인 윤호중 의원은 다수결이 사라진 이유를 선진화법이 아닌 88년 총선 후 국회 체제에서 찾는다. “13대 국회는 헌정사상 처음으로 탄생한 여소야대 국회였다. 의석 비율에 나눠 지배하는 관행을 만들었다. 당시엔 굉장한 타협이었다. 하지만 그런 분점 국회가 30년 이어지다보니 부작용을 낳고 있다.”

선진화법 때문이건, 역사적 경험 때문이건 대한민국 국회가 다수결을 잊은 것은 분명하다. 다수가 없으니 책임질 이도, 책임을 물을 대상도 없다. 싸잡아 국회만 욕할 뿐이다. 국회도, 민주주의도 다수결, 타협, 조정 등이 공존해야 하는데 지금 중요한 바퀴 하나가 빠져 있다. 

다수를 인정할 수 없다면 총선 때 다수를 호소할 필요도 없다. 일정 득표율 이상 정당 대표가 모여 원로회만 구성하면 될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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