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국회로 온 '윤리 선생님', 다음 목적지는 '이천'

[the300]김용진 전 기재부 차관 인터뷰


"아이가 나중에 고아원에 가게 될 수 있습니다".

지난해 예산 국회 당시 김용진 기획재정부 2차관은 ‘한부모 가정 돌봄예산’을 삭감하려는 야당 의원에게 읍소하며 눈물을 보였다. 예산을 총괄하는 고위 관료의 ‘진심’이 엿보인 장면이다.  

공직을 떠난 김 전 차관은 아이와 교육에 관심이 많다. 행정고시 합격 후 몸담은 첫 부처가 교육부였다. 그에 앞서 교직에도 있었다. 그는 ‘윤리 선생님’이었다.

교육학을 전공한 김 전 차관은 1985년 서울시 고교 교원 합동 공채시험에 합격했다. ‘사립학교의 임용고시’로 불리던 ‘어려운’ 시험이었다. 교사가 될 지, 공무원이 될 지 고민하던 그에게 여러 학교에서 ‘러브콜’이 왔다. 행정고시 준비를 병행하고 있었지만 교사의 삶이 궁금했다. 첫 직장은 서울 동성고였다. 그는 윤리 교사로 학생들 앞에 섰다.

교직 생활은 즐거웠다. 김 전 차관은 “선생님들과 어울려 지내는 것,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 둘 다 재밌었다”고 돌이켰다. 그는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칸트 등 두꺼운 철학 고전을 항상 품에 끼고 다녔다. 윤리 교과서에 나오는 수많은 철학이론을 제대로 가르치기 위해 100권에 달하는 철학고전 목록을 작성하고 읽어나갔다.

행정고시는 ‘가지 않은 길’이었다. 물론 교직 생활도 충분히 즐거웠지만 미련이 남았다. ‘시험이라도 한번 보자’는 생각에 1986년 제 30회 행정고시에 응시했다. 기대는 크지 않았다.

교사 채용시험 때처럼 또 덜컥, 합격했다. 그는 다시 고민했다. 교직을 내려놓는 것도 쉬운 선택은 아니었다. 동료 교사들이 공직에서 교육행정과 정책을 개선해달라고 그에게 당부했다. 이 말을 듣고 교단을 내려올 수 있었다. 

그렇게 교육부 공무원이 됐다. 교육부에서 교육 행정을 파악했다. 이 역시 즐거운 일이었다. 업무능력도 인정받았다. 4년 뒤 기획예산처(현 기재부)에 ‘스카우트’돼 예산 영역에 발을 들였다.

김 전 차관은 당시를 회상하며 “재정은 교육 행정의 ‘아킬레스건’”이라며 “기재부에서 예산과 재정을 열심히 배워 교육부로 돌아가려 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기재부는 그를 놓아주지 않았다. 

교육행정에서 시작된 ‘나랏일’에 대한 그의 관심은 분배와 복지, 재정정책까지 넓어졌다. 진정한 아동 교육은 아동 복지에서 시작된다는 게 그의 철학인데 이같은 길을 걷다 나온 생각이다. 김 전 차관은 “기획예산처 시절엔 재정하는 사람들이 나를 보면 ‘사회복지통’이라고 했다”며 “한때는 보건복지부 공무원보다 사회복지를 더 잘아는 기재부 과장이라는 얘기도 들었다”고 말했다. 

그의 인생은 ‘승승장구’였다. 경기도 이천시 장호원 시골마을의 ‘만물박사’였던 꼬마 아이가 ‘윤리 선생님’이 됐고 대한민국 예산을 총괄하는 기재부 차관까지 거쳤다. 차관이 되기 전엔 잠시 공직에서 물러나 한국동서발전 사장으로 일하며 경영능력과 리더십을 인정받았다.

그의 목적지는 다시 이천이다. 21대 총선에 더불어민주당 소속으로 이천 지역구에 출마한다. 2000년 이후 민주당 당선자가 없던 ‘험지’지만 개의치 않는다. 김 전 차관은 “나는 어려울 수록 힘내는 체질”이라며 “능력있고 역량이 검증된 사람이 노력한다면 험지에서도 가능할 것”이라고 자신했다. 

그의 강점은 ‘인간미’다. 문재인 대통령의 ‘사람이 먼저다’라는 말에 감동해 민주당을 선택했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자주 썼던 ‘사람사는 세상’이란 말도 좋아한다. 

김 전 차관은 “소득주도성장이란 말보다 사람이 먼저다라는 철학이 더 와닿는다”며 “포용사회를 향한 진보는 변치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용진 전 기획재정부 제2차관이 13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입당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 사진=홍봉진 기자 honggg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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