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과 연탄리어카, "툴툴거려서 어머니 마음아프게 하기도"

[the300]피난생활 생계 꾸리고 자녀들에게 버팀목

【서울=뉴시스】문재인 대통령의 모친인 강한옥 여사가 29일 향년 92세로 별세했다. 사진은 문 대통령과 김정숙 여사가 딸 결혼식을 앞두고 강한옥 여사와 함께 기념촬영을 하고 있는 모습. 2019.10.29. (사진=문재인 대통령 공식 블로그 제공) photo@newsis.com
29일 별세한 고(故) 강한옥 여사는 아들 문재인 대통령에겐 버팀목이자 정신적 지주였다.

고인은 일제시대인 1927년 함경남도 함주에서 태어났다. 1978년 별세한 고 문용형 옹과 사이에 2남3녀를 뒀다. 한국전쟁이 일어나자 부부는 1950년 12월 흥남철수 때 경남 거제로 이주했다. 첫째인 딸 재월씨가 갓난아기였다. 이에 거제 시절 고인은 "재월네"로 불렸다. 

문 대통령은 부모가 거제에 살던 1953년 1월, 둘째이자 장남으로 태어났다. 일가족은 가난했지만 그나마 모은 돈으로 문 대통령이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에 부산으로 이주했다. 피난민이 많이 살던 부산 영도구에 정착했다.

문 대통령의 부친이 사업에 실패한 이후로 모친은 거의 전적으로 집안 생계를 책임졌던 것으로 알려졌다. 계란이나 구호물자 옷을 팔기도 했고, 구멍가게를 운영하기도 했다. 그래도 맨손의 피난살이는 쉽게 나아지지 않았다고 문 대통령은 회고했다. 

생계수단이 변변치 않던 시기, 문 대통령 가족은 연탄배달도 했다. 어머니는 남편(문 대통령 부친)에게 거들게 하지는 않고 필요하면 장남인 문 대통령이나 둘째아들에게 말했다. 문 대통령은 방과후나 휴일에 연탄 리어카를 끌었다. 

문 대통령은 '운명'(2011)에서 "검댕을 묻히는 연탄배달일이 창피했다"며 "오히려 어린 동생은 묵묵히 잘 도왔지만 나는 툴툴거려서 어머니 마음을 아프게 했다"고 썼다. 

부친 별세 후 어머니는 문 대통령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해왔다. 문 대통령의 좌우명인 "아무리 힘들어도 가지 말아야 할 길을 돌아보지 마라"도 어머니의 가르침이었다고 한다. 문 대통령이 천주교 신자가 된 것도 독실한 신자이던 어머니의 영향이다. 

문 대통령은 20여년 동안 왼손 네 번째 손가락에 어머니가 선물한 묵주반지를 끼고 있다. 

청와대는 당초 빈소를 공개하지 않았으나 천주교 부산교구 주교좌 성당인 수영구 남천성당에 마련한 사실이 자연스레 공개됐다.

이호철 전 청와대 민정수석은 29일 남천성당을 찾은 후 기자들과 만나 "천주교식 장례식을 할 곳이 부산에서 두 곳뿐이다. 중앙성당과 남천성당"이라며 "그래서 여기(남천성당)로 오신 것으로 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문 대통령이) 침울하게 계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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