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당당히 北 돌아가고파"…두만강 건넌 소년이 국회로 온 까닭

[the300]조경일 김영춘 민주당 의원실 정책비서 "당당하게 두발로 北으로 돌아가고 싶어"

2004년 탈북해 한국에 들어온 조경일 더불어민주당 김영춘 의원실 정책비서. 조 비서를 22일 국회의원회관에서 만났다./사진=김민우 기자


두만강 물이 턱밑까지 차올랐다. 까치발을 들었는데도 숨을 쉴 때마다 입으로 물이 들어왔다 나갔다를 반복했다. 한 발만 발을 잘 못 디디면 물살에 떠밀려갈 수도 있다는 두려움이 덮쳤다. 

소년은 엄마의 손을 꼭 잡았다. 뒤에서 북한군 초병이 따라붙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소년은 사력을 다해 국경을 넘었다. 

더불어민주당 김영춘의원실에 근무하는 조경일 정책비서가 12살이던 해(2000년) 겪었던 일이다. 조 비서의 고향은 두만강 하구에 위치한 함경북도 경흥군. 우리에게는 아오지 탄광으로 더 잘 알려진 곳이다. 

“두만강을 건넌 뒤 중국 도문을 거쳐 연길로 갔어요. 교회에서 저를 보살펴줬죠. 신분을 위장해 학교도 보내줬어요. 학교엔 저 말고도 북한 학생이 세 명 더 있어요.” 

조 비서의 어머니는 돈을 벌기 위해 다른 곳으로 떠났고 조 비서는 이곳에서 머물렀다. 그러나 오래가지 못했다. 두만강을 건넌 지 2년만에 누군가의 신고로 인해 중국 공안의 손에 붙잡혔다.

중국 도문 감옥에 38일 동안 갇혀있다가 북송됐다. 다행히 북한에서는 3일간 보위부에서 취조를 받고 풀려났다. 조 비서는 탈북했다고해서 우리가 생각하는 아오지탄광 같은 곳에 끌려가는 건 아니라고 했다.

“언론에선 아직도 아오지 탄광에 보내 강제노동 시킨다고들 하는데 다 거짓말이예요. 고난의 행군을 막 지난 시기라 자고 일어나면 옆집 사람들이 사라져요. 배급제도 붕괴됐는데 그 많은 사람들을 가둬두고 먹일 식량도 감시할 인원도 없어요. 정치범이 아니면 단련대 같은 곳에서 수개월 강제노동과 사상교육을 한 뒤 집으로 돌려보내요”

북한으로 돌아온 지 2년 뒤 엄마가 브로커를 통해 연락을 줬다. 한국으로 넘어오라는 연락이었다. 고지식한 아버지는 그냥 북에서 살기를 원했다. 조 비서는 아버지를 남겨두고 다시 국경을 넘었다. 3개월에 걸쳐 중국과 베트남을 거쳐 캄보디아로 갔다. 

“캄보디아 한국인 브로커가 저희를 북한 대사관에 넘겨버렸어요. 외국인 감옥에서 가지고 있던 돈을 간수에게 주고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죠. 엄마가 외교부, 통일부 등에 도와달라고 요청을 했대요. 18일 후 검은양복을 입은 사람이 우리를 차에 태웠어요. 국정원 사람들이었어요.”

조 비서는 2004년 한국에 입국했다. 당시 조 비서의 나이는 15살이었다. 그 때부터 검정고시를 통해 초·중·고교를 졸업장을 땄다. 같은 또래가 대학을 가던 해인 2007년 성균관대 정치외교학과에 진학했다.

조 비서는 “한국에 정착한 후부터 정치에 관심을 가졌다”고 했다. 대학에 들어가서는 반값등록금 집회와 비정규직 노동자 처우개선 집회 등에도 나갔다. 국회에 오기전에는 정치 컨설팅 회사에서  20대 총선을 경험했다. 

조 비서가 국회로 들어온 것은 “남북관계 개선에 조금이나마 힘을 보태고 싶어서”다. 조 비서의 꿈은 “당당하게 휴전선을 넘어 북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북에 두고 온 친구와 아버지 때문에 정치에 관심을 갖게 됐어요. 어려울 때 도망친 사람이 아니라는 말을 들으려면 제가 여기에서 무엇이라도 해야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래 우리 서로 힘든시기에 각자의 자리에서 고생했구나라는 말을 듣고 싶어요. 숨어서 내려왔지만 돌아갈 때는 두 발로 당당하게 휴전선을 넘고 싶어요. 그게 통일이 됐든 남북 교류가 됐든….그 길을 가장 빨리 만들 수 있는 게 정치라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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