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담배 들어온지 12년…국회와 정부는 뭐했나

[the300][런치리포트-액상담배의 딜레마](종합)규제공백 속 위협받는 국민건강

해당 기사는 2019-11-16 런치리포트에 포함된 기사입니다
'주도권' 다툼에 3년째 국회서 계류… 전자담배, 법개정 안하나 못하나
[런치리포트-액상담배의 딜레마①]"연초도 유해한데"…유해성 기준은 어떻게

액상형 전자담배가 국내에 도입된 지 12년이 지났다. 그러나 이 제품을 규제할 어떤 규정도 없다. 해외에서 사망자가 다수 발생하고 국내에서도 폐질환 의심사례가 발생하고 나서야 부랴부랴 대책 마련에 나섰다. 국회도 손놓고 있기는 마찬가지였다. 유해성에 대한 경고는 했지만 법안 처리에 대한 의지는 없었다.

◇주도권 싸움에 국민 건강은 뒷전으로 =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은 23일 “액상형 전자담배와 (폐손상의) 인과관계가 명확히 규명되기 전까지는 액상형 전자담배의 사용을 중단할 것을 강력히 권고한다”고 밝혔다. 복지부가 판매중단, 제품회수 등의 조치가 아닌 ‘권고’에 그친 것은 액상형전자담배가 법의 사각지대에 놓여있기 때문이다. 

담배사업법에 따르면 담배는 ‘연초의 잎’을 원료로 한 제품을 말한다. 연초의 줄기나 뿌리에서 추출한 니코틴을 사용한 액상형 전자담배는 ‘담배’가 아니라 ‘공산품’으로 분류된다. 

이 때문에 식품의약품안전처의 화학물질 안전성 분석대상에서도 제외된다. 쥴랩스코리아의 ‘쥴’과 KT&G의 '릴베이퍼'를 제외한 사실상 대부분의 제품이 연초의 줄기나 뿌리에서 추출한 니코틴을 사용하거나 합성니코틴을 사용하고 있어 시판되는 약 70여종의 액상형 전자담배는 ‘담배’가 아니다. 

자유한국당 이현재(2016년 12월)·김승희(2019년 2월)·윤영석(2019년 6월) 의원과 더불어민주당 정춘숙 의원(2019년 9월) 등이 잎이나 줄기에서 추출한 니코틴을 사용한 제품을 담배로 규정하도록 하는 법안을 발의했지만 논의조차 못했다. 

쥴과 릴베이퍼도 담배로 분류돼 있지만 담배사업법에 액상형 전자담배에 대한 규정이 없어 액상형 전자담배와 담배연기에 포함된 성분과 첨가물 등의 정보를 제출하지 않는 상황은 마찬가지다. 담배의 정의를 확대하는 법안과 동시에 성분공개, 가향물질 함유 규제 등의 내용을 담은 법안이 함께 통과돼야 한다.
 
법은 이미 발의돼있다. 박맹우 자유한국당 의원이 2016년 7월 담배제조사가 유해성분을 의무적으로 제출토록하고 유해성분 최대함유량을 초과한 담배 판배를 금지하는 ‘담배사업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이 법안은 20대 국회가 열린 뒤 발의된 담배사업법 1호법안이다. 그러나 3년이 넘도록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한채 법제사법위원회에 계류돼 있다.

박주민 민주당 의원도 담배제조사에 성분 제출의무를 부과하고 검사 결과를 공개토록한 내용을 담은 ‘국민건강증진법 개정안’을 발의(2017년 1월)에 발의했지만 의원간 의견불일치로 통과되지 못했다. 지난 3월 법사위 소위원회 속기록을 보면 ‘유해성분’의 정의를 법에 규정할 것인지, 시행령에 위임할 것인지 등을 두고 논란을 벌였다. 

이완영 한국당 의원은 “담배유해성분이 과학적으로 입증되지 않았다”며 “유해성분을 분류해 제조·수입·판매를 금지하겠다는 건데 이건 법체계상 (시행령이 아닌) 법에 들어와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회가 정해야 한다는 얘기다. 

반면 김종민 민주당 의원은 “전문적 판단이 필요하고 집행재량에 속하는 사항이라 대통령령으로 정하는게 맞다”고 주장했다. 

주무부처를 기획재정부로 할 것인지 보건복지부로 할 것인지도 쟁점이다. 기재부와 복지부는 부처간 합의를 통해 담배사업법에 관련 규정을 두고 주무부처를 기재부가 하도록 했지만 법사위 논의과정에서 다시 복지위가 주관하는게 옳냐 기재부가 주관하는게 맞냐를 두고 의원들간에 이견이 생겼다.부처간 알력 다툼과 국회와 정부 사이의 권한 싸움에 국민 건강이 뒷전으로 밀린 셈이다. 

◇“연초도 유해한데…” 유해성 기준은 어떻게 정하나 = 법 체계가 정비되더라도 유해성 논란은 여전히 남는다. 유해하지 않은 담배가 없다는 점에서 어느 정도까지 인체에 유해할 경우 판매나 제조를 금지할 것인지 기준을 정하기 어렵다. 

미국의 경우 ‘기존에 시판된 담배’를 기준으로 삼는다. 새로운 담배가 나오면 2007년 이전에 출시된 담배와 유해한 정도가 동일하거나 유사한 제품만 판매할 수 있도록 했다. EU의 경우 정부가 담배 유해성을 평가하는 기준을 토대로 제품을 평가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어느 정도를 판매해도 되는 ‘유해한 담배’인지에 대한 기준조차 없다. 복지부 관계자는 “판매되는 담배가 모두 유해한 것은 맞다”면서도 “최소한 담배 제조성분 제출 의무만 부과하더라도 역학조사 등 관리할 수 있는 범주로 들어오게 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실제 성분을 제출받고 기준과 항목을 만들어 가야 한다”고 밝혔다.

액상형 전자담배를 피울 수 있도록 하는 ‘전자기기장치’도 규제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다. 액상형전자담배와 궐련형 전자담배는 기기가 없으면 피울수 없다. 기기 불량으로 니코틴 액상을 직접 흡입할 가능성이 있다. 자칫 치사량에 가까운 니코틴 액상이 그대로 몸에 흡수될 수 있다. 잘못된 기기를 사용할 경우 액상을 기화시키는 과정에서 추가적인 유해물질이 추가될 수도 있다. 

이 때문에 ‘기기’도 법의 테두리 안에 둬야 한다. 미 FDA(식품의약품안전청)는 법적 전자담배 정의에 배터리 등을 비롯한 일체의 전자 장치를 포괄하는 개념으로 ‘구성품’(components)을 명시하고 있다.


담배제품은 팔면서 "정부 방침 먼저"...'규제 공백' 어떻게
[런치리포트-액상담배의 딜레마②]"'제2가습기 살균제 참사' 우려…정부 위해성 조사결사나오는 내년 상반기까지 '규제공백'

"가습기 살균제 사건에서 보듯 유해성이 확인될 때까지 기다리면 늦는다"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이 지난 21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종합국정감사에서 액상형 전자담배의 유해성을 지적하며 강조한 말이다. 박 장관은 지난 23일 정부합동 브리핑을 열고 액상형 전자 담배의 사용 중단을 권고했다. 한 달전 내놓은 ‘사용 자제’보다 한 단계 수위를 높였다. 유해성이 주된 이유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에 따르면 액상형 전자담배 관련 폐질환 사망자 수가 33명, 폐손상 사례 1479건이다. 최근 국내에서도 의심환자가 발생했다. 이달 초 발생한 국내환자는 30세 남성으로 폐렴 등 폐손상 증상을 보이기 2~3개월 전부터 쥴·릴베이퍼 등 액상형 전자담배를 사용해 온 것으로 조사됐다.

하지만 정부의 ‘권고’는 한계가 있다. 강제 판매 금지조치나 징벌적 손해배상제도 등 강제 조치가 없다. 현행 제품안전기본법상 안전성 조사 결과가 나온 뒤 제품의 위해성이 확증된 경우에만 ‘리콜’ 명령을 내릴 수 있다. 

정부는 11월 말까지 유해성분 분석을 마친 뒤 위해성 여부를 내년 상반기 내 발표할 계획이다. 최소 8개월 이상 ‘규제 공백’이 발생한다. 액상형 담배 제조사들은 일제히 ‘우리 제품에 문제 성분이 없다’며 선을 긋고 있다. 

지난 4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국정감사 증인으로 선 김정후 KT&G NGP개발실장은 ‘(릴베이퍼가) 문제가 없다고 확신하냐’는 김명연 자유한국당 의원 질의에 “자체검사는 했다. ‘유해하다’ ‘덜 유해하다’고 말하기 어렵다”며 즉답을 피했다. 그러면서 “정부 당국의 조사결과 방침이 수립되면 이를 성실히 따르겠다”며 그전까지 별도 조치를 취하지 않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액상형 전자담배 소비 증가세를 보면 ‘규제 공백’ 속 우려를 키운다. 복지부에 따르면 올해 8월까지 액상형 담배수입량은 1437만3053 밀리리터(㎖)로 3년 전인 2016년(60만5335㎖)보다 24배 늘었다. 같은 기간 전자담배용 니코틴액 수입량도 2016년 1670리터(ℓ)에서 6만1694ℓ로 6배 늘었다. 국내 유통되는 액상형 전자담배는11개 회사 36개 품목인데 담배로 관리되지 않는 줄기·뿌리 니코틴 등 담배 유사제품이 대부분이다.

정부·여당은 ‘제2의 가습기살균제’ 사건이 되지 않도록 만전을 기하겠다는 입장이다. 가습기살균제의 경우 폐질환이 2006년 처음 보고됐지만 정부의 역학조사는 5년 뒤인 2011년 시작됐고  2016년에야 판매가 중지됐다. 이 과정에서 약 1400명이 사망했다. 

정치권은 징벌적손해배상제 등을 통해 기업의 자발적 안정성 강화와 책임의식을 유도해야한다고 입을 모은다. 징벌적손해배상제가 일찍 도입된 미국의 경우 2006년부터 담배회사를 상대로 한 집단소송에서 1450억달러의 손해배상판결이 나왔다. 

국회는 지난해 가습기살균제 참사 이후 ‘환경보건법’을 개정해 최대 3배의 징벌적손해배상제를 도입했지만 그 대상을 환경오염사고로 인한 환경성질환을 일으킨 사업자 등으로 한정지었다. 액상형 전자담배는 해당되지 않는다는 의미다.

※잘 팔릴수록 세금은 줄어드는 액상형 전자담배
[런치리포트-액상담배의 딜레마③]니코틴용액 양 기준 과세…점유율 상승시 건강증진기금 감소

정부가 판매 중단을 권고한 액상형 전자담배는 현행 과세 체계에서 판매량이 늘수록 담배세를 주요 재원으로 하는 국민건강증진기금이 줄어드는 기묘한 과세 유형에 속한 담배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김순례 자유한국당 의원의 분석에 따르면 쥴 등 액상형 전자담배의 점유율이 10%가 되면 2018년 기준 2조8924억원인 국민건강증진기금부담금이 2조6982억원으로 감소한다. 액상형 전자담배 점유율은 지난해 0.03%에서 올해 2분기 0.7%로 높아졌다.

액상형 전자담배의 점유율이 10%p(포인트) 확대될 때마다 건강증진기금부담금은 약 2000억원씩 줄어든다. 점유율 80% 상황에선 부담금이 1조2979억원까지 내려간다. 건강증진기금은 정부가 국민건강관리 사업, 암치료 사업, 금연교육 등에 활용하며 담배세를 주요 재원으로 한다.

이같은 현상이 발생하는 이유는 담배의 종류에 따라 부과되는 담배세가 다르기 때문이다. 담배에 부과되는 세금은 국세로 개별소비세와 부가가치세가 있고, 지방세로 담배소비세와 지방교육세가 있다. 국민건강증진기금부담금, 폐기물부담금, 연초생산안정화기금부담금도 부과된다.

건강증진기금의 경우 일반 궐련담배(20개비)는 841원을 낸다. 반면 액상형 전자담배는 니코틴용액 1ml(쥴은 0.7ml)당 525원으로 부담액이 낮은 수준이다. 쥴 0.7ml 기준으로 할 때 제세부담금 합계 역시 일반 담배의 약 50% 수준, 궐련형 전자담배의 약 56% 수준으로 상대적으로 세부담이 낮다. 

김 의원은 액상형 전자담배가 흡연율 저하를 이끄는 것도 아닌데 건강증진기금만 줄어드는 기형적 현상을 낳을 것이라며 정부가 담배세 부과 방식을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의원은 액상형 전자담배의 국민건강증진부담금을 인상하는 국민건강증진법 개정안도 대표발의했다. 기존 1ml당 525원에서 1201.4원으로 인상하는 방안이다.

정치권의 담배세 과세 개선 논의 중엔 액상형 전자담배를 니코틴의 농도(㎎/㎖) 기준으로 과세하자는 의견도 있다. 액상형 전자담배를 니코틴 농도와 관계 없이 용량 기준으로 과세하는 구조를 악용해 고농도의 니코틴 용액을 판매하는 방식으로 과세를 회피하는 사례가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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