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미 협상장소 스웨덴 유력…文 6월 스톡홀름 연설 재조명

[the300]"北 핵폐기 실질 의지 보여야 국제사회 응답"-실무협상 성패 기준

스웨덴을 국빈 방문 중인 문재인 대통령이 15일 스톡홀름 유르고덴 내 공원에서 열린 한국전 참전 기념비 제막식에서 기념사하고 있다. 2019.06.15. photo1006@newsis.com
스웨덴 스톡홀름이 북미 비핵화 실무협상지로 떠오르면서 청와대도 예의주시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4개월전인 6월, 스톡홀름 의회 연설에서 비핵화-평화 비전을 강조했다. 당시 연설에 비추면 북미 실무협상의 기준점이 대략 나온다.

문 대통령은 6월14일 스톡홀름의 스웨덴 의회 연설에서 "북한은 완전한 핵폐기와 평화체제 구축 의지를 국제사회에 실질적으로 보여줘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국제사회는 북한이 (비핵화를) 진정으로 노력하면 즉각적으로 응답할 것"이라며 "제재 해제는 물론이고 북한의 안전도 국제적으로 보장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북한의 평화를 지켜주는 것도 핵무기가 아닌 대화"라고 밝혔다. 문 대통령은 노르웨이 스웨덴 등 당시 순방에서 6월29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방한 전에 남북 정상회담을 할 것도 공개 제안했다.

그로부터 8개월 전인 지난해 10월, 문 대통령 유럽 순방 화두는 대북 제재완화였다. 적절한 상응조치는 북한의 '액션'을 담보할 마중물이라는 거다. 9월 평양 남북정상회담 직후인 점도 이 메시지에 영향을 줬다. 6월 북유럽에선 다시 국제사회의 '마지노선'과 맞춰졌다. 실질적 비핵화 의지를 보여야 한다고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게 공개 촉구했다. 국제사회의 공감 속에 북핵 대화를 재개해야 하는 절박함이 컸다. 

"실질적 핵폐기 의지 보여야 국제사회 응답"= 이 같은 스톡홀름 제안은 성과가 없을 뻔했다. 남북 정상회담은 끝내 성사되지 않았다. 그러나 6월의 마지막날 극적인 일이 벌어졌다. 일본 오사카 G20 정상회의를 마치고 트럼프 대통령이 방한, 문 대통령과 최전방 GP를 오른 데 이어 판문점에서 김정은 위원장과 전격 회동했다. 

판문점에서 남북미 정상의 동시회동도, 북미 정상의 별도 회동도 역사상 처음이다. 김 위원장이 트럼프 대통령의 '번개' 제안에 판문점까지 이동해 모습을 보인 것만 해도 대화 의지로 해석됐다. 북미는 실무협상을 하기로 약속했다. 
【판문점=뉴시스】박진희 기자 =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도날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30일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 자유의 집에서 회동을 마치고 나오고 있다. 오른쪽은 문재인 대통령. 2019.06.30. pak7130@newsis.com

문 대통령은 이를 바탕으로 3개월 후인 지난달 유엔총회 기조연설에서 DMZ 국제평화지대화라는 구체적 제안으로 나아갔다. 국제사회가 한반도의 평화를 관망하는 게 아니라, 유엔 등 국제기구의 DMZ 입주와 같은 '행동'으로 한반도 평화 구축에 참여해 달라는 것이다.

문 대통령의 스톡홀름 제안을 고려하면 북한은 이번 실무협상에서 영변 핵시설 폐기를 포함, 실질적 비핵화 계획을 밝혀야 한다. 말이 아니라 로드맵 형태가 필요하다. 미국은 이 과정에서 대북제재를 어떻게 할 것인지 이른바 단계별 상응조치의 시간표를 북한과 맞춰야 한다.

북미는 4일 예비접촉, 5일 본협상을 앞뒀다. 문 대통령의 6월 표현처럼 "대화 모멘텀은 살아 있지만 대화가 없는" 국면이 마침표를 찍고, 새로운 방식을 적용하는 새 대화가 가동될까. 북한은 마치 기싸움을 하듯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로 추정되는 미사일 한 발을 2일 쐈다. 

청와대는 "강한 우려"를 밝히고 "북한의 의도에 대해 한미간 협의할 것"이라고 밝혔다. 북미 협상 자체에 대해선 말을 아꼈다. 청와대 관계자는 3일 "협상이 잘 되길 바라는 입장"이라고 밝혔다.

북미, 스웨덴 선호 이유 있다= 첫째 미국, 북한 모두 스웨덴에 자국 대사관이 있다. 본국과 원활하면서도 기밀이 유지되는 의사소통이 필요한데 상주 대사관이 없다면 제약이 따른다. 지난 6월 북한에서 억류된 걸로 알려진 호주인 북한 유학생이 7월초 풀려난 데 스웨덴의 외교적 노력도 일조했다. 

둘째 우리로서도 스웨덴은 '민주적 비핵화'의 모델이다. 냉전이 시작된 1950년대에 독자적 핵무기 보유를 검토했다. 1958년에는 핵무기 개발 옵션을 열어뒀다. 하지만 1년후 1959년 스웨덴 정부는 핵무기 개발 여부 결정을 보류했고 1968년 "핵무기 보유가 안보에 도움되지 않는다"고 선언했다. 같은 해 핵확산금지조약(NPT)에 서명했고, 1970년 비준하면서 공식적인 비핵 국가가 됐다.

셋째 북한 협상단이 평양으로 복귀하는 동선도 주목된다. 이석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3일 "북한의 김명길 대표는 5일 실무회담을 마치면 바로 귀국하지 않고 모스크바에 이어 북경(베이징)을 경유, 러중 양국에 회담결과를 설명하고 평양에 복귀할 것으로 보인다"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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