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추석, 김일성 지시로 금지됐다가 부활한 사연

[the300]조상숭배 등 ‘봉건주의’ 잔재 청산, 1972년 남북대화 이후 부활

【파주=뉴시스】권현구 기자 = 추석인 4일 오전 경기도 파주시 임진각을 찾은 실향민이 북한 지역을 바라보고 있다. 2017.10.04. stoweon@newsis.com <저작권자ⓒ 공감언론 뉴시스통신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북한의 명절은 설날·추석 등 '민속명절'과 김일성·김정일 생일 등의 '사회주의 명절'로 구분된다. 우리는 추석을 민족의 최대 명절이라고 부르지만 북한에서는 김일성 생일(4월15일, 태양절)과 김정일 생일(2월16일, 광명성절)이 최대 명절이다.

북한에 전통적인 민속명절들이 아예 사라졌던 역사도 있다. '우리식 사회주의 생활양식과 맞지 않는다'며 1967년 5월 봉건 잔재의 발본색원을 촉구한 김일성 주석의 교시에 따른 것이다. 1948년 북한 정권수립 이후 배격됐던 추석은 완전히 자취를 감추게 됐다.

북한의 추석은 1972년 남북대화가 시작된 이후 부분적으로 부활했다. 이산가족들이 북한에 남겨둔 조상묘의 안부를 물어옴에 따라 성묘를 허용해야 했기 때문이다. 1972년 추석부터 거주지 인근 조상묘를 성묘할 수 있게 됐다.

북한이 추석을 민속명절로 규정하고 공휴일로 지정한 건 1988년의 일이다. 긴 공백을 깨고 부활한 추석이지만, 민속명절의 모습이 적지 않게 퇴색했고 ‘사회주의 생활양식’으로 변모했다. 남한에선 추석을 전후해 3일을 쉬지만 북한에선 당일만 쉰다.

우리는 추석 때 가족·친지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의미가 크지만, 북한에서는 국가를 위해 일을 더 잘하도록 다짐하는 날로서 추석의 의미를 되새긴다. 민속명절로서 하루를 즐겁게 보내기보다는 단지 하루 쉬는 휴무일로 여기고 있다고 한다.

북한 사회는 자유로운 이동이 보장되지 않기 때문에 우리처럼 고향을 찾아 ‘대이동’을 하는 경우가 없다. 인근 친척들이 모이기도 하고 조상들의 묘소로 성묘를 하러 가기도 하지만 그 수가 남한만큼 많지는 않다.

성묘나 제사를 지낼 때도 남한과 차이점이 있다. 남한은 두 번 절을 하고 허리를 숙여 인사하는 것이 보통이지만 북한은 절을 세 번 한다. 차례를 남자들만 지내는 것이 전통적인 풍습인 남한과 달리 북한은 딸, 손녀도 함께 절을 한다.

추석 음식은 생활수준·지역마다 차이가 있다. 보통 차례상에는 햅쌀밥, 송편, 두부, 계란, 산적, 과일, 생선찜, 돼지고기 등이 올라간다. 식량난과 풍습이 간소화된 탓으로 생과일이나 마른 과일, 생선이나 마른 물고기, 술, 밥 등이 주로 올라간다고 한다.

송편의 경우 남한보다 2~3배 크기로 빚고, 속에는 팥과 시래기, 야채를 볶아 넣는 등 내용물도 다르다. 북한에서도 송편을 빚을 때 '송편을 예쁘게 만들어야 예쁜 딸을 낳는다'는 속설이 있다고 한다.

추석날 씨름대회가 열리는 것은 남북이 비슷하다. 북한은 추석 때 평양 능라도 민족씨름경기장에서 '대황소상 전국민족씨름경기'를 열고 우승자에게 황소 등 상품을 수여하고 있다. 이를 조선중앙TV를 통해 경기 일부를 녹화 중계한다.

북한의 선전매체 메아리는 “추석을 맞으며 곳곳에서 진행되는 민족씨름경기는 제일 볼만하다”며 “바줄당기기, 활쏘기, 그네뛰기, 거부기놀이, 길쌈놀이 등 다채로운 민속놀이들이 있지만 민족씨름경기야말로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민속놀이 중 가장 인기있는 경기”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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