野, 잉크도 마르기 전에 조국 해임건의안…통과 가능성은

[the300]역대 통과된 적은 6번 뿐…통과되면 나경원 리더십↑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와 오신환 바른미래당 원내대표가 지난 2일 국회에서 열린 국회의장 원내대표 회동에서 자료를 보고 있다./사진=뉴시스

문재인 대통령이 9일 조국 법무부 장관에게 임명장을 수여했다. 자유한국당과 바른미래당 등 야권은 즉각 국무위원해임건의안을 제출하고 국정조사를 추진하겠다며 반발했다.

국무위원 해임건의안은 야당에 주어진 몇 안되는 무기다. 성공하면 강력한 리더십을 인정받고 정국을 주도할 수 있다. 반면 여권에는 큰 위협이다. 해임건의안 통과는 대통령에 대한 신임도를 떨어뜨리는 것은 물론 정권을 뒤흔든다. 

그러나 역대 국무위원 해임건의안이 통과된 비율은 3.7%에 불과하다. 그만큼 국회 본회의 문턱을 넘기가 쉽지 않다.

◇野, 조국 임명과 동시에 해임건의안 제출=
나경원 자유한국당 대표는 9일 조 후보자의 장관 임명 소식이 전해지자 "이 정권이 민심을 거스르고 개혁에 반대했다"며 "조국 장관 해임건의안과 특검 등은 다른 야당과 논의해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오신환 바른미래당 원내대표도 이날 "조국 임명 강행에 반대하는 모든 정당, 모든 정치인들과 연대해 법무부장관 해임건의안 국회 의결 추진에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해임건의안은 재적의원 3분의 1 이상의 서명을 받아 발의할 수 있다. 재적의원 297명 중 99명의 서명만 받으면 되기때문에 한국당 단독으로도 발의는 가능하다.

해임건의안이 통과되려면 재적의원 과반인 149명의 찬성이 필요하다. 현재 자유한국당(110명), 바른미래당(28명) 대안정치(9석), 우리공화당(2석)과 서청원·이정현·이언주 등 무소속 의원이 모두 해임건의에 찬성할 경우 152석으로 통과가 불가능 한 것은 아니다. 

투표가 무기명이라 여권 내 이탈도 있을 수 있다. 1971년 오치성 내무무 장관 해임건의안도 여권 내 파워게임의 여파로 여당에서 반란표가 나오면서 통과됐다. 당시 신민당이 제출한 오 장관 해임건의안 표결에서 오 장관과 알력관계에 있던 김성곤 공화당 의원 세력 20명이 찬성표를 던지면서 안건이 통과됐다. 

해임건의안이 발의되면 국회의장은 안건이 발의된 후 처음 개의하는 본회의에 그 사실을 보고하고 본회의에 보고된 때부터 24시간 이후 72시간 이내에 무기명 투표로 표결해야 한다. 이 기간 내에 표결하지 않은 해임건의안은 폐기된 것으로 본다.

이 때문에 야권은 해임건의안에 대한 확실한 공감대를 형성한 뒤 해임건의안을 제출할 가능성이 높다.

지난 7월에는 정경두 국방부 장관에 대한 해임건의안이 제출됐지만 민주당이 국회 본회의를 열지 않는 방식으로 표결을 피했다. 

그러나 정기국회에서는 대정부질의 등 본회의를 소집할 요건이 충분해 여당이 반대하더라도 해임안을 본회의에 올리는 것은 어렵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해임건의안 정국은 나경원 한국당 원내대표 등에게 '기회'다. 해임건의안을 통과시키면 청문회 협상 과정에서 요구 조건을 관철하지 못하면서 흔들렸던 리더십 문제를 만회할 수 있다.

과거 이승만정권 시절 임철호 농림부 장관의 해임건의안 통과는 김영삼(전 대통령)이라는 스타정치인을 탄생시키기도 했다. 1955년 7월 야당은 쌀값 폭등과 부실 대책의 책임을 물어 임 장관의 해임건의안을 제출했다. 

28세 최연소 국회의원으로 주목받던 김영삼 의원은 당시 "우리 국회가 생긴 후에 개별적인 국무위원 불신임 결의를 한 적이 없다. (하지만) 옛말에 일벌백계란 말이 있다. 이번 기회에 책임 없는 행정을 하는 모든 국무위원에게 경종을 울려주고 우리 국민에게 안도감을 주고 정부의 잘못을 규탄할 용의가 있다는 것을 분명히 밝혀 주어야만 한다"며 해임건의안 통과를 주도해 가결시켰다. 


◇역대 통과된 적은 6번뿐…통과 여파로 공동정부 붕괴도 =
역대 국무총리와 장관 등 국무위원에 대한 해임건의안이 통과된 사례는 단 6번뿐이다. 전체 164건의 해임건의안이 발의됐으니 통과율은 3.7%다.

김영삼정권 때 가장 많이 발의됐다. 성수대교붕괴 등 참사 책임론이 온 나라를 휘감은 1994년 한 해에만 총 45건의 해임건의안이 발의됐다.

그해 4월에 국무총리를 제외한 22명의 국무위원 전원에 대한 해임건의안이 제출됐고 같은해 10월 국무총리를 포함한 23명의 국무위원에 대한 해임건의안이 각각 발의됐다.

1994년 4월에 발의한 해임건의안 22건은 표결에 부치지 못하고 폐기됐다. 10월에 발의한 해임건의안은 표결에 부쳤으나 모두 부결됐다.

현행법에 따르면 해임건의안은 법적 구속력을 갖지는 않는다. 그러나 거부할 경우 입법부를 무시했다는 정치적 부담을 고스란히 대통령이 떠안아야 한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그랬다. 2016년 9월 김재수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에 대한 해임건의안이 국회에서 통과됐지만 대통령은 수용 거부 입장을 천명했다. 정국은 급속히 얼어붙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최순실 국정농단 게이트가 터지면서 결국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으로 이어졌다.

김대중 정부 시절 DJP연합(김대중-김종필 연합)을 깬 결정적 계기도 당시 임동원 통일부장관에 대한 해임건의안 가결이었다. 2001년 8·15 민간 방북단의 친북 활동이 문제가 돼 야당인 한나라당은 임 장관의 교체를 요구했다. 공동정부를 구성하고 있었으나 보수 성향이었던 자유민주연합(자민련)이 여기에 가세하면서 임 장관의 해임건의안이 가결됐다.

이 사건으로 새천년민주당-자민련의 공동정권은 3년 7개월 만에 붕괴됐고 ‘여소야대’정국으로 바뀌게 됐다.

노무현 정부에선 김두관 행정자치부 장관에 대한 해임건의안이 통과됐다. 당시 한나라당은 국회 재적 과반(137석)보다 많은 149석을 가지고 있었다.

그 결과 김 장관의 해임건의안이 손쉽게 통과될 수 있었다. 김재수 장관이 해임건의안 통과에도 불구하고 자리를 지킨 것과 달리 김두관·임동원 장관은 해임건의안이 통과되자 스스로 사표를 제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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