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수출규제’ 침묵하는 美, ‘지소미아’ 연일 압박 왜?

[the300]공개비판 자제요청에도 "지소미아 연장해야"...경제보복엔 '대화' 원론적 입장 강조

【서울=뉴시스】최진석 기자 = 마크 에스퍼 미국 국방부장관이 9일 오전 서울 용산구 국방부에서 열린 한미 국방장관 회담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2019.08.09. photo@newsis.com
외교부가 해리 해리스 주한 미국대사를 사실상 초치한 직후인 28일(현지시간). 워싱턴에선 한일 관계 주요 현안에 대한 미국 정부의 입장이 고위 당국자들이 입을 통해 비교적 소상히 전해졌다. 

한일군사정보보협정(GSOMIA·지소미아) 종료 결정에 따른 안보 영향에 대해선 “(한일) 양측이 관여된 데 대해 매우 실망했고 여전히 실망하고 있다”(마크 에스퍼 미 국방장관)는 말이 나왔다. 지소미아 종료 후 우리 정부에 연일 ‘강한 우려’와 ‘실망’을 표명해 온 미국 정부가 원론적으로나마 일본에 대한 실망감을 함께 언급한 것이다. 미국 정부가 한일 갈등 악화 국면에서 일본에 대한 실망을 공개적으로 밝힌 건 처음이다.

그러면서도 한국 정부를 향해 “지소미아를 연장해야 한다”(랜들 슈라이버 미 국방부 인도·태평양 안보담당 차관보)는 압박 기조는 여전했다. 슈라이버 차관보는 북핵 위협을 거론하면서 “(한국 정부가) 국내 정치적 동기로 안보에 영향을 주는 결정을 한 데 대해 우려한다”고도 했다. 일본이 28일 시행한 화이트리스트(백색국가·전략물자 수출우대국 지위) 한국 배제 등 수출규제에 대해선 “한국과 일본 양측이 의미 있는 대화를 하는 것(이 미국 정부의 입장)”이라고 답했다.

지소미아엔 한국 정부의 책임을 분명히 하면서도 원인 제공을 한 일본의 수출규제엔 양측의 대화를 촉구하는 원론적인 해결책을 조언한 것이다. 이에 앞서 미 정부 고위 당국자는 지난 25~26일 해군이 실시한 독도방어 훈련(영토수호 훈련)이 “한일 갈등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으며 오히려 문제를 악화시킨다”고 우리 정부를 비판했다고 로이터통신이 27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종합해보면 악화일로인 한일 관계의 책임을 사실상 한국에 돌리는 듯한 발언이 이어져온 셈이다.  

청와대와 정부 내에는 공개적으로 일본을 두둔하는 듯한 미국 고위 당국자들의 잇단 발언들이 한일 관계를 되레 어렵게 하고 한미 관계에도 부정적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기류가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조세영 외교부 1차관이 여러 외교적 부담에도 28일 해리스 미 대사를 불러 “공개적인 실망 발언을 자제해 달라”고 요청한 배경이다. 미국 정부는 그러나 공개 비판 자제 요구를 사실상 거부하고 우리 정부에 대한 압박을 이어가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의 강경한 태도에는 철저히 미국 국익의 관점에서 강제징용(역사)과 수출규제(경제), 지소미아(안보)를 분리해 바라보는 인식이 반영돼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대법원의 강제징용 개인 배상 판결과 이에 따른 일본의 경제보복은 한일 양국이 대화로 풀어야 할 사안인 반면, 지소미아는 한미일 안보협력과 관계된 만큼 미국의 국익 훼손을 막기 위해 적극 개입하려 한다는 것이다.

문제는 미국 정부의 이런 입장이 일본 측 논리와 궤를 같이 한다는 점이다. 일본은 안보상 신뢰 훼손을 이유로 반도체 소재 수출을 제한하고 한국의 수출 우대국 지위(백색국가)도 박탈했다. 정부의 지소미아 종료 결정은 안보상 신뢰 문제를 먼저 꺼내든 일본과 민감한 군사정보교류를 지속하긴 어렵다는 현실적 대응 차원의 결정이었다. 트럼프 행정부는 그러나 한일 안보협력 관계를 흔든 일본의 경제보복 조치에 대해선 사실상 침묵하고 있다. 

자유무역 원칙에 반하는 일본의 보복성 수출규제에 대한 미국의 모르쇠 전략에는 현재 진행형인 미중 무역분쟁이 일정 부분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안보 훼손을 막기 위한 무역규제 조치는 미중 무역전쟁 과정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꺼내든 핵심 대중 압박카드였다. ‘안보 위협’을 이유로 단행한 중국 화웨이 제재가 실사례다. 지난 달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안보를 명분으로 한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한국 경제 때리기를 ‘트럼프 따라하기’로 명명하는 기사를 싣기도 했다. 

같은 맥락에서 대중 외교정책의 차이도 한일 갈등 국면에서 한미보단 미일 관계의 결속을 부각시키는 핵심 배경으로 꼽힌다. 미국 정부는 북핵 위협과 함께 동북아시아 패권 도전을 꾀하는 중국과 러시아의 부상·밀착을 견제하기 위해선 굳건한 한미일 안보협력 틀이 긴요하다고 본다. 지소미아를 한미일 3각 군사공조를 이어주는 유일한 끈이자 협력 강화의 출발점으로도 인식한다. 한 외교 소식통은 "우리 정부는 북핵 위협과 미중 대립 구도 속에서 한미동맹과 대중 관계를 효과적으로 관리해야 하는 ‘딜레마’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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