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트체크]'대통령제와 안맞는 비례대표제?'…미국은 지금 어디

[the300][연동형비례제 글로벌 리포트]극우화 만드는 비례제? 미국에서 트럼프도 나온다…현실가능성 낮은 개헌, 법개정부터 차근차근

 더불어민주당 김종민 간사, 홍영표 위원장, 심상정 전 위원장, 자유한국당 장제원 간사가 7월23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정치개혁특별위원회 회 전체회의에서 손잡고 있다./사진=홍봉진 기자
선거는 흔히 '민주주의의 꽃'으로 불린다. 국무총리·장관 등 수천개의 굵직한 인사와 수백조의 예산, 군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힘은 바로 선거에서 비롯된다. 대통령제 아래에서 이 권력의 '정통성'을 획득한 집단은 크게 대통령과 국회의원이다. '한 하늘 아래 두개의 태양은 없다'는 말이 무색하게 대통령제는 애초에 두개의 태양이 작동할 수 있게 설계됐다. 삼권분립으로도 불리는 권력기관간의 견제와 힘겨루기는 끊임없이 이뤄진다.

지난해부터 대한민국을 뜨겁게 달군 연동형 비례대표제 등 선거제도 개혁을 단순히 입법부 내의 문제로만 치부할 수 없는 이유다. 대통령을 중심으로 한 100만명이 넘는 행정부관료를 견제할 기관은 사실상 국회가 유일무이하다. 국회의원을 어떻게 선출하느냐에 따라 대한민국 전체의 풍경이 달라진다.

비례제 확대를 골자로 한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반대하는 자유한국당 측은 대통령제도와 비례제도와의 '조응성'을 문제삼는다. 다당제를 촉진시키는 연동형 비례제도가 대통령의 막강한 힘을 견제할 국회의 힘을 지나치게 약화시킨다는 이유다. 비례제 개혁을 하려면 대통령의 힘을 낮출 권력구조 개헌이 이뤄져야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머니투데이 더300(the300)은 이 문제의 답을 듣기 위해 해외로 눈을 돌렸다. 대통령제를 세계 최초로 도입한 미국의 사례가 궁금했다. 대통령제와 비례대표제는 함께 갈 수 없는 제도일까.

[검증대상]

대통령제와 비례대표제는 맞지 않고 대통령의 힘을 지금보다 강화시킬 거라는 주장

[검증내용]

◇244년 ONLY 다수대표제…선거제 개혁 무풍지대?

1776년 건국한 미국은 240년이 넘도록 다수대표제를 근간으로 한 선거제도의 큰 틀을 바꾸지 않았다. 미국은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고사하고 비례대표제도 없다. 철저한 지역중심의 선거제도를 고수한다. 미국만의 독특한 선거제도인 '선거인단'의 독식문제가 대선 때마다 개혁의제로 오르내리지만 그 이상의 개혁움직임은 좀처럼 찾기 어렵다.

미국은 선거제 개혁보다 철저한 삼권분립으로 부족한 점을 채워왔다. 예산·입법 등 미국의 의회권력은 한국의 그것보다 훨씬 강력하다. 특히 의회가 법안발의권을 독점하고 있어 정부의 법안제출이 허용되는 한국과 달리 의회중심의 정치가 원활하게 이뤄진다.

미국의 사법부도 행정부의 권력견제에 큰 역할을 담당한다. 연방대법원 판사는 종신직으로 행정부의 개입으로부터 어느정도 자유롭다. 사법적극주의를 채택한만큼 사법부가 입법부와 행정부간의 교착상태를 푸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아렌드 레이프하트(Arend Lijphart) UCSD 명예교수/사진=조준영 기자

◇비교정치학의 거장 레이프하트 UCSD 명예교수 "문제는 대통령제"

'민주주의의 유형'이란 책으로 국내에 알려진 비교정치학의 거장, 아렌드 레이프하트(Arend Lijphart) UCSD 명예교수는 지난 5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자택에서 기자를 만났다.

그는 대통령제와 비례대표제가 서로 맞지 않다는 지적들에 "그분들은 비례제와 대통령제를 결합시키면 여당이 입법부에서 과반수를 차지하지 못할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비례제가 없는 미국에서도 똑같은 문제가 발생한다"며 "지금도 상원은 공화당(여당)이 잡고 있지만 민주당(야당)이 하원을 잡고 있다. 예전엔 공화당 출신이 대통령이었지만 상하원 모두를 민주당이 차지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여야가 협상해야하는 건 비례제가 아닌 대통령제의 근본적인 결함 때문"이라며 "제도간의 결합을 지적하는 사람에게 말하고 싶은 건 비례제가 아니라 대통령제가 문제라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비례제로 다당제가 정착되면 극단적인 목소리를 내는 정당들이 득세할 것이라는 지적에도 "기본적으로 목소리를 낼 기회를 주는게 중요하다"고 반박했다. 레이프하트 교수는 "민주주의의 기본질서를 깎아내리지 않는다면 다른 목소리들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며 "트럼프 대통령은 당선된 이후 많은 사람들이 보기에 극단적인 목소리를 내왔다. 이게 꼭 선거구제의 문제라고 보지 않는다"고 말했다.

또한 "가장 좋은 건 의원내각제에서 비례대표제를 도입하는 게 좋지만 대통령제에서 비례대표제를 도입한다고 큰 일이 일어나는 게 아니다"며 소수의견을 대표할 기회를 줘야한다고 강조했다. 19세기 이후 전세계 대부분 국가에 비례대표제가 도입됐고 그 이후엔 곧바로 정치권이 적응했다는 설명이다.

다만 현재 한국에서 연동형 비례대표제 논의가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의 강한 반대속에서 이뤄진다는 이야기에 "그러면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을 것(Nothing is going to happen)"이라고 지적했다.

프랜시스 로젠블러(Frances McCall Rosenbluth) 예일대 교수/사진=조준영 기자

◇"끔찍한 대통령제"…로젠블러 예일대교수 "비례제는 아예 없애야"

일본정치의 대가로 불리는 프랜시스 로젠블러(Frances McCall Rosenbluth) 예일대 교수는 지난 5월 미 뉴헤이븐에 자리한 사무실에서 기자를 만났다. 그는 인터뷰 내내 정책에 대한 책임을 물을 수 있는 '강한 정당'을 강조했다. 대통령제는 필연적으로 정당을 약화시키는 제도라며 "끔찍하다(terrible)"고 고개를 내저었다.

로젠블러 교수는 '끔찍한' 대통령제 아래에서 비례대표제가 시행되면 극우화를 촉진할 위험이 높다며 아예 비례제를 폐지하자고 주장했다. 그는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한 독일은 많은 제조업 일자리들이 사라지면서 정당이 극우화되는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며 "비례제는 경기가 악화되면 더 나쁜 결과를 낳는다"고 설명했다.

로젠블러 교수는 다당제를 촉진하는 비례대표제에 반대파들이 함께 모일 인센티브가 없다며 부정적인 입장을 드러냈다. 또 정당이 지나치게 다양해질 경우 유권자가 정당을 투표할 때 어떤 정책이 일어날지 모른다는 점을 치명적인 문제로 지적했다. 그는 "다양한 정당이 있으면 선택지가 많아 보이지만 오히려 선택지가 적어지는 것"이라며 "정당은 고를 수 있어도 정책은 고를 수 없다"고 꼬집었다.

1987년 민주화 이후 30년동안 비대해진 대통령의 권력을 낮추기 위해 비례제 확대가 필요하다는 일각의 주장에 "그건 정당이 약했고 대통령이 강했기 때문이다. 비례대표제 확대는 진단을 잘못한 것"이라며 "처방은 비례대표제가 아니라 정당을 강화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정당이 갑(甲)이 되서 대통령에게 일을 시켜야 한다"며 한국은 지금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비판했다.

[검증결과]

대통령제와 비례대표제의 조응성에 대한 학자들의 의견은 다양했다. 대체로 의원내각제 아래에서 비례대표제가 도입될 때 큰 효과를 낼 수 있다는 의견이 우세했다. 하지만 레이프하트 교수는 비례제의 문제보다 여야간 협상이 필수인 대통령제의 책임이 크다고 지적했다. 다당제를 촉진하는 비례대표제를 확대해 소수의견이 대표될 기회를 확보하는 것은 민주주의 기본질서에 부응한다는 의견도 덧붙였다.

반면 로젠블러 교수는 대통령제만큼 비례제가 극우화 등 민주주의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는 제도라고 지적했다. 조응성에 맞지 않다는 의견에서 더 나아가 강한 정당을 만들어 대통령을 움직일 수 있는 힘을 키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두 학자 모두 대통령의 힘을 낮추기 위한 개헌의 현실가능성을 낮게보고 입법부 차원의 법개정부터 시작해야한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대통령제와 비례대표제는 맞지 않는다는 주장은 명백한 사실이라 보기 어렵다. 오히려 운용의 묘를 발휘해 여야가 어느 선거제도 아래에 있든 원활한 협상이 가능한 정치토양을 만드는 게 필요하다.

본 기획물은 한국 언론학회-SNU 팩트체크 센터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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