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시시(野視視)]억울한 淸酒, 모욕당한 국민…'싸움의 수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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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  야(野)의 시각에서 봅니다. 생산적인 비판, 견제와 균형의 원리를 고민하면서 정치권 안팎의 소식을 담겠습니다. 가능한 재미있게 좀더 의미있게 이야기를 전하겠습니다.
 4일 오후 국회에서 일본의 화이트리스트 배제 조치에 따른 대응방안 논의를 위한 당·정·청 협의회가 진행되고 있다. / 사진=이기범 기자 leekb@

청주(淸酒)는 억울하다. 청주는 말 그대로 맑은 술이다. 막걸리의 맑은 부분을 따로 분리해 숙성시켜 만든다고 보면 크게 틀리지 않다. 조선왕조실록 원문에만 108번 등장하는 엄연한 '우리나라 술'이다.

정종(正宗, 마사무네)은 청주의 일종으로 상표명이다. 일제가 19세기 후반 부산을 시작으로 국내 곳곳에 양조장을 세우고 주류산업에 침투했는데 그때 가장 유명한 브랜드가 정종이었다.

일제는 식민지 지배 과정에서 주세령을 통해 우리나라 술에는 아예 청주라는 이름을 붙이지 못하게 했다. 조선인의 술은 아무리 맑게 만들어도 '약주'로만 불렸다. 이름을 뺏긴 셈인데 어느 새 사람들의 인식에서도 낯설어졌다. 흔히 정종, 사케(酒, 일본에서 술을 통칭하는 말), 청주를 혼용해 쓰는데 청주로서는 모욕일 수 있겠다.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사케 논란'으로 정치권이 시끄러웠다. 실제 '일본산 청주'를 마셨는지 아니면 해명대로 '국산 청주'를 마셨는지는 사실 중요치 않다. 일본 경제보복 사태가 일어나기 전부터 이미 일본산 청주를 사다 놨을 우리나라 관련 자영업자들은 무슨 죄인가. 물론 집권여당 대표가 하필 일본의 화이트리스트(백색국가) 배제 발표가 나온 날 점심 때 술잔을 기울였다는 점에서 비판의 소지는 충분하다.

그럼에도 이같은 논란을 접하면서 국민이 느끼는 모욕감은 또 다른 차원인듯하다. 국가적 위기가 닥쳤는데 '사케 논란'으로 싸워야 하나. 앞다퉈 논평을 내며 여당을 맹공격하는 야당들이나, 국산 술을 마셨다고 해명하는 여당이나 안타깝다.

사케 논란 직전에는 조국 전 청와대 민정수석의 페이스북 '좋아요' 클릭이 도마에 올랐다. 문재인 대통령의 아들 문준용씨가 페이스북 활동을 재개하자 조 전 수석이 게시물마다 '좋아요'를 클릭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사람들은 대통령의 주변을 살펴야할 민정수석 출신이자 차기 법무부 장관으로 유력한 그가 그렇게 한가한지 의아해 하면서도 이런 게 논란거리가 되는 현실에 황당해 하기도 했다.

7년 만에 동물국회를 연출하며 올해 국회를 마비시킨 패스트트랙 사태 당시에는 심지어 '양말 논란'까지 빚어졌다. 나경원 한국당 원내대표가 신었던 양말에 일본 만화 캐릭터가 새겨져 있었다며 소위 '토착왜구'로 공격하는 식이다.

시간을 거슬러 350년전 이 땅의 지도층들은 예송논쟁으로 서인과 남인으로 나뉘어 수십 년 간 죽기 살기로 싸웠다. 왕이나 왕비가 죽었을 때, 어머니나 시어머니가 상복을 얼마 동안 입어야 하느냐가 관건이었다. 이웃 청나라와 일본 에도막부가 발전에 발전을 거듭할 때 우리는 '3년을 입어야 한다' '1년을 입어야 한다'로 사생결단을 벌였다. 당시 조선 사회의 특수성이 반영된 결과이긴 하지만 더 실질적인 내용으로 미래를 내다보며 싸울 수는 없었을까.

일본이 관보 게재를 거쳐 이달 말부터 화이트리스트 배제를 현실화하면 1194개 품목 중 최소 100개 이상이 직접적 영향을 받는다. 이 100여개 때문에 앞으로 생산을 멈추게 될 사업장이 몇백, 몇천 개가 나올지, 사태가 장기화 되면 얼마나 많은 이들이 일자리를 잃을지는 가늠조차 어렵다. 생각지 못한 돌발 타격이 언제 어디서 터져나올지도 모른다. 안타까운 지난 날을 되풀이하기에는 시간이 없다. 그 결과도 참담하다. 더 이상 소모적 논쟁은 국민이 용납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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