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4 베트남 첫 해외파병, 2003 이라크 땐 임종석 단식

[the300][런치리포트-해외파병]③평화유지군 멤버 된 韓 파병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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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10월 청해부대가 선박을 호송하는 모습. 2019.03.12. (사진=해군 제공) photo@newsis.com <저작권자ⓒ 공감언론 뉴시스통신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해외파병은 크게 세 종류다. 이라크·아프가니스탄 파병, 소말리아의 청해부대 등 다국적군이 하나다. 둘째 1991년 유엔 가입에 따른 평화유지군(PKO) 참여가 있다. 레바논 동명 부대, 남수단 한빛부대가 PKO다. 셋째는 양국간 국방교류나 인도적 지원이다. 아랍에미리트(UAE)서 활동중인 아크부대가 대표적이다.

베트남전은 국군의 사상 첫 해외파병이다. 1964년 9월 의료진 130명과 태권도 교관단 10명이 최초 파병됐다. 1973년 휴전까지 10년간 연인원 약 32만 명이 57만7476회의 작전을 수행했다. 기록상 미국 다음으로 많은 인원을 파병한 게 한국이다.

일부 기업이 전쟁특수를 보는 등 파병에 따른 경제적 이득도 있었다. 그럼에도 공식 집계된 전사자 4960명, 부상자 1만962명이라는 희생을 치렀다. 한국-베트남 사이 역사적 아픔도 남았다. 

2003~2008년 이라크전 파병은 극심한 논쟁을 일으켰다. 한국은 미·영 연합군의 '이라크 자유작전' 지원을 위해 2003년 건설공병지원단(서희부대)과 의료지원단(제마부대)을 파병했다. 미국은 전투병 추가 파병을 요청했다. 여당 재선의원이던 임종석은 전쟁의 늪에 빠져든다며 13일간 단식농성으로 이에 반대했다.

참여정부는 한미관계를 고려, 2004년 4월 약 3000여명 규모의 자이툰부대를 파병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그해 12월 이 부대를 찾아 여러분의 존재가 외교에 큰 힘이 된다며 장병들을 격려했다. 조지 W. 부시 당시 미국 대통령은 지난 5월 노 대통령 10주기 추도식에 참석했다.

대한민국에게 해외파병은 남다른 일이다. 1950년 6·25전쟁이 터지자 유엔(UN)은 안전보장이사회를 개최, 한국군사원조안을 의결했다. △미국 영국 캐나다 등 16개국 병력 △노르웨이 덴마크 스웨덴 독일 등 6개국 의료지원 △스위스 오스트리아 칠레 등 38개국의 물자 및 재정지원이 이뤄졌다. 파병을 받아 나라를 구한 것이다. 

70여년이 지나 한국은 파병을 보내는 나라로 성장했다. 1993년 소말리아 상록수부대를 시작으로 서부사하라 국군 의료지원단, 앙골라 공병부대, 동티모르 상록수 부대, 아이티 단비부대 등을 UN PKO로 파병했다. 물론 어떤 종류의 전쟁에도 참여해선 안 된다는 비판론은 있다.
【서울=뉴시스】최동준 기자 = 합동참모본부가 설날을 맞아 5일 해외파병부대의 연휴간 활동에 대해 소식을 전했다. 사진은 동명부대 장병들이 합동차례를 지내는 모습. 2019.02.05. (사진=합동참모본부 제공) photo@newsis.com <저작권자ⓒ 공감언론 뉴시스통신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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