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소 핵전쟁 막은 '친서외교'…북미 다시 '협상궤도'로(종합)

[the300][런치리포트-친서외교] '하노이 노딜' 후 4개월...친서 주고받은 김정은-트럼프, 북미 대화 재개 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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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북한 노동신문이 23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대통령이 친서를 보내왔다며,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친서를 읽는 모습의 사진과 함께 보도했다. 이날 김 위원장은 친서 받고, "훌륭한 내용이 담겨있다"며 만족을 표시하며, "트럼프대통령의 정치적판단능력과 남다른 용기에 사의를 표한다고 하시면서 흥미로운 내용을 심중히 생각해볼것" 이고 밝혔다. 2019.06.23. (출처=노동신문) photo@newsis.com

①정상간 서신 '신뢰·소통' 마중물...쿠바 미사일 위기도 '친서'로 돌파구

꽉 막힌 북미 비핵화 협상 과정에 '친서(親書·autograph letter)'가 불쏘시개로 재등장했다. '하노이 노딜' 후 4개월째 교착 상태인 북미 협상이 '친서외교'를 계기로 재개될 조짐이다.

'친서'는 주권국가의 정상(수반)들이 주고받는 서한(편지)이다. 통상 상대를 추어올리는 외교적 수사(레토릭)와 신뢰와 진정성을 알리려는 메시지를 담는다. 현안이나 협상 관련 '디테일'을 넣는 경우는 흔치 않다.

우정엽 세종연구소 미국연구센터장은 "친서에는 정상들이 '정치적 결단'을 할 수 있다는 정도의 내용이 담긴다"며 "친서에 결정적 내용을 담는 경우는 없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친서는 때로 정상간 직접 만남(정상회담)에 준하는 정치·외교적 효과를 낳는다. 정상 간 '신뢰'를 토대로 '소통'의 기회를 마련해주기 때문이다. 동맹국 정상의 친서 교환보단 적대국 수반의 서신 주고받기가 더 극적인 효과를 낳는 사례가 많다. 고비마다 친서가 등장하는 북미 비핵화 협상 과정도 마찬가지다.

친서의 드라마틱한 외교적 성과를 보여주는 실례는 1962년 10월 '쿠바 미사일 위기' 사태다. 1962년 10월 소련이 미국의 턱밑인 쿠바에 핵미사일을 배치한 사실이 들통나면서 미소 핵전쟁 위기가 찾아왔다.

2차 세계대전 당시 핵·원자폭탄의 위력을 이미 경험한 인류는 핵공포에 휩싸였다. 존 F. 케네디 당시 미 대통령은 소련 함대가 오가는 쿠바 해상을 봉쇄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미국의 고강도 압박조치에 소련이 반발하면서 상황은 일촉즉발로 흘러갔다.

파국을 막은 단초는 미소 정상이 은밀히 주고받은 '친서'였다. 니키타 흐루시초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은 케네디 대통령에게 최소 두 차례 친서를 보냈다. 1차 편지에는 "(미소 모두) 전쟁의 매듭을 묶은 로프의 끝자락을 잡아당겨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둘 다 더 잡아당길 경우 매듭이 더 조여질 것이기 때문"이라는 말이 적혀 있었다고 한다.

세부적인 협상 내용과 요구 조건 등은 담지 않았으나 "전쟁은 원치 않는다"는 입장을 분명히 전달한 것이다. 미소는 군사적 행동 대신 밀사(특사)를 통한 물밑접촉을 이어갔다. 결국 △미국의 쿠바 불가침 보장 △소련의 쿠바 미사일 철수 △미국의 터키 미사일 철수 등에 합의하고 극적으로 핵 전쟁을 막았다. 친서에 획기적이고 구체적인 내용은 없었지만 적절한 '상황 관리'로 전쟁을 막은 사례다.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은 재임 당시 국제무대에서 '친서외교'를 가장 적극적으로 활용했던 정상으로 꼽힌다. 2009년 취임 이후 이란의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 최고지도자에게 양국 관계 개선을 촉구한 내용을 담은 친서를 최소 4차례 보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취임 초 '저자세'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으나 2015년 이란 핵협상 타결을 결국 이끌어 냈다. 오바마 전 대통령은 2014년 1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에게도 서한을 보냈다. 미중 온실가스 감축 합의 도출의 시발점으로 평가되는 '친서'였다.
(워싱턴 AFP=뉴스1) 우동명 기자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1일(현지시간) 아이오와주로 이동하기에 앞서 워싱턴 백악관에서 멕시코 협상 관련 서류를 들고 기자들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 1주년 시점에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으로부터 아름답고 따뜻한 친서를 받았다고 밝히며 "매우 개인적이고, 따뜻하고, 멋진 서한"이라고 강조했다. © AFP=뉴스1 <저작권자 © 뉴스1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70년 적대관계인 북미 사이에도 유독 친서가 많이 오갔다. 2014년 오바마 대통령은 김정은 당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에게 북한에 억류된 미국인 2명의 석방을 요청하는 친서를 보냈다. 북한은 친서를 받은 후 이들을 전격 석방했다.

이보다 앞선 2000년 10월10일 한국전쟁 후 방미한 북한 최고위급 인사였던 조명록 북한 국방위 제1부위원장의 손에도 김정일 당시 국방위원장의 친서가 들려 있었다. 조 부위원장은 백악관에서 만난 빌 클린턴 대통령과 적대관계 종식, 북한의 미사일 시험발사 유예 등을 담은 북미 '공동 코뮈니케'를 발표했다.

친서외교는 같은 달 23일 매들린 올브라이트 당시 미 국무장관의 방북과 김정일 위원장 접견 등으로 이어졌다. 북한 정상의 편지 외교가 북미간 오랜 적대관계를 풀어내는 실마리를 제공했던 셈이다. 클린턴 대통령도 재임 기간 김정일 위원장에게 세 차례나 친서를 보냈다.

조지 W 부시 대통령 집권 때도 친서가 오갔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효과를 보진 못 했다. 김정일 위원장은 2002년 11월 부시 대통령에게 "미국이 대담한 조치를 취하면 우리도 이에 상응하겠다"는 친서를 보냈다. 대북 강경파가 득세했던 부시 행정부가 반응을 보이지 않은 사실은 후일에야 알려졌다.

반대로 2007년엔 실무진이 주도한 6자회담의 한계를 느낀 부시 대통령이 김정일 위원장에게 핵신고와 핵폐기를 촉구하는 친서를 보냈다. 2001년 부시 대통령 집권 후 처음으로 보낸 친서다. 그러나 북한이 핵신고를 거부하면서 기대했던 외교적 효과를 달성하지 못 했다.


②'친서외교' 싱가포르·하노이 불쏘시개…3차 만남도 임박?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북미관계가 고비를 겪을 때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친서를 보내 돌파구를 마련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11일(현지시간) 공개한 친서외교 재개 이후 북미 대화 불씨가 다시 살아나는 분위기다.

김 위원장은 지난 23일 북한 매체들을 통해 트럼프 대통령에게 답신 성격의 친서를 받은 사실을 대대적으로 공개했다. 김 위원장은 “훌륭한 내용이 담겨 있다”며 만족을 표시하고 “흥미로운 내용을 심중히 생각해 볼 것”이라고 말했다.

북미 정상의 친서가 오고간 뒤에는 의미 있는 후속 움직임들이 이어졌다. 김 위원장의 첫 번째 친서는 지난해 6월 1일 백악관을 방문한 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을 통해 트럼프 대통령에게 전달됐다.

트럼프 대통령이 싱가포르 1차 북미 정상회담 취소를 전격 발표한 직후다. 트럼프 대통령은 친서를 전달받은 뒤 예정대로 정상회담을 열겠다고 밝혔다. 위기에 빠진 북미 정상회담의 불씨를 다시 살리는 데 친서가 큰 역할을 한 셈이다.

김 위원장은 지난해 7월 6~7일 방북한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의 손에 두 번째 친서를 들려 보냈다. 폼페이오 장관의 방북을 놓고 ‘빈손’ 논란이 불거졌을 때 트럼프 대통령은 7월 12일 친서를 공개하며 북미협상의 끈을 유지했다.

김 위원장은 지난해 7월 27일 정전협정일에 맞춰 미군 전사자 유해 55구를 송환하는 과정에서 친서도 함께 보냈다. 트럼프 대통령이 공개한 세 번째 친서는 북미협상의 교착 국면에서도 정상간 신뢰를 재확인하기 위한 의도로 분석됐다.

백악관은 지난해 9월 10일 김 위원장의 네 번째 친서를 공개했다. 김 위원장이 2차 북미 정상회담 개최를 요청했고 관련 일정을 양측이 조율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폼페이오 장관의 4차 방북 취소 등 악화하던 북미관계는 다시 해빙기를 맞았다.

김 위원장의 다섯 번째 친서는 지난해 유엔총회 때 공개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9월 26일 유엔총회 계기에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정상회담을 하면서 양복 안주머니에서 김 위원장의 친서를 꺼냈다. 그러면서 ‘예술작품’이라고 극찬했다.

여섯 번째 친서는 김 위원장이 올해 신년사를 발표한 다음 날인 1월 2일 공개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당시 백악관 각료회의에서 친서를 꺼내들고 “또 하나의 회담을 가질 것”이라며 2차 북미 정상회담을 시사했다.

일곱 번째 친서는 지난 1월 18일 백악관을 찾은 김영철 부위원장이 들고 왔다. 친서를 받은 트럼프 대통령은 2월 5일 미 연방의회 신년 국정연설에서 김 위원장과 2차 정상회담을 하겠다고 전격 발표했다. 1차 때와 마찬가지로 2차 회담도 친서가 ‘마중물’ 역할을 했다.

지난 21일(현지시간) 미 시사주간지 타임은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17일 백악관 인터뷰 당시 김 위원장에게서 받은 친서를 꺼내 "어제 받은 생일축하 편지"라고 밝혔다고 전했다. 약 1주일 전 공개한 김 위원장의 친서와 동일한 편지인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두 정상이 최근 교환한 친서는 지난 2월 말 '하노이 노딜' 이후 정상 차원의 소통 재개를 의미한다. 이를 계기로 3차 북미 정상회담에 대한 기대감도 커지고 있다. 28~29일 오사카 G20(주요20개국) 정상회의와 오는 29일 트럼프 대통령의 방한을 계기로 북미 실무협상이 재개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앤드루스 공군기지=뉴시스】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이 23일(현지시간)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랍에미리트 방문 전 메릴랜드주 앤드루스 공군기지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19.06.24

③친서 속엔 '흥미로운 내용·대목'…폼페이오 "협상재개 진정한 가능성"

지난 2월 하노이 2차 북미 정상회담 이후 북미 정상이 처음으로 주고받은 '친서'에는 어떤 내용이 담겨 있을까.

북미 정상은 물론 중재역인 문재인 대통령도 구체적 언급을 삼가고 있지만 두 정상의 신뢰 관계를 재확인하는 메시지에 더해 최소한 "협상을 다시 시작하자"는 대화 재개 의사는 주고받은 것으로 추정된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23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게 보낸 답신 성격의 친서와 관련해 "북미 협상 재개에 좋은 토대가 되길 바란다"며 "북한이 준비가 돼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면 당장 시작할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

미국이 요구해 온 실무협상 재개 여부에 대해서도 "북한에서 나온 발언을 보면 아주 진정한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고 답했다. 노동신문과 조선중앙통신 등 북한 주요 매체들은 전날 김 위원장이 트럼프 대통령의 친서를 받은 사실을 공개하면서 "(김 위원장이) 만족을 표시하고 흥미로운 내용을 심중히(깊고 중요하게) 생각해 볼 것이라고 했다"고 전했다.

실무 협상 재개에 대한 폼페이오 장관의 낙관적 발언을 감안하면 트럼프 대통령이 친서에 "협상을 다시 시작하자"고 요청했고 김 위원장이 긍정적으로 화답했다는 추정이 가능하다. 신범철 아산정책연구원 안보통일센터장은 "친서에 구체적인 내용은 없었겠지만 북한도 대화 재개 의지가 있어 보인다"고 말했다.

앞서 문 대통령도 지난 10일(현지시간) 김 위원장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보낸 첫 친서와 관련해 "아주 흥미로운 대목이 있다"고 했다. 김 위원장이 언급한 '흥미로운 내용'과 앞서 문재인 대통령이 말한 '흥미로운 대목' 등을 조합하면 단순한 협상 재개 이상의 '함의'가 친서에 담겨 있을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스티브 비건 미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도 최근 강연에서 "북미 모두 유연한 접근의 필요성을 이해하고 있다"고 했다. 비건 대표의 발언은 북미 모두 하노이 협상 결렬을 야기한 기존의 비핵화 방법론에서 한 발 물러서는 것 아니냐는 관측을 낳았다. 워싱턴포스트 등 일부 외신은 미국 전문가를 인용해 "트럼프 대통령의 (오는 29일) 방한 때 국경(DMZ)에서 김정은과 만남을 시도할 수도 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정부 관계자는 "트럼프 대통령 방한 중 DMZ 방문을 검토중"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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