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심판론'의 유혹

[the300]

 정치권은 총선 체제에 돌입한 지 오래다. 여야 모두 선거 구도를 계산하느라 바쁘다. 새롭지는 않다. “쟤네들보다는 낫다”는 게 전략 전술의 전부다. 역학 관계가 엇비슷한 때문이다. 문재인 대통령 취임 2년을 맞이할 즈음 썼던 칼럼에서 ‘묘한 균형점’이란 표현을 했는데 지금도 같다.

취임초나 지난해 지방선거 때 같은 ‘쏠림’은 없다. 반대로의 ‘이탈’도 제한적이다. 지난해 가을부터 이어져온 흐름이다. 여야 지지율도 크게 다르지 않다. 더불어민주당은 40%, 한국당은 30%선을 오간다.

총선 전망이나 이른바 ‘심판론’에 대한 답변도 비슷하다. ‘여당 심판’ 못지않게 ‘한국당 심판’ 기조가 존재한다. 보고 싶은 것만 보는 정치권은 ‘심판론’을 부여잡는다. 하지만 ‘균형 국면’ 속 이런 관측은 1차원적이다. 누가 잘 했냐, 누가 못했냐를 묻는 질문으로는 본질을 짚지 못한다. 현 ‘균형 국면’ 속 심판론의 유혹에 빠지면 흐름을 놓친다.

유혹은 달콤하다. 정부 실정을 지적하고 심판을 외치는 것만으로도 득점이 가능하다. 다만 지속성이 떨어진다. ‘압박 축구’를 90분 내내 할 수 있다면 바랄 것이 없지만 체력이 떨어지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체력 저하나 방심은 곧 실점으로 이어진다. 대안 세력을 포기하는 것처럼 비쳐지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한국당이 국회 등원 타이밍을 놓친 것은 뼈아프다. 국회에 들어간 뒤 ‘경제 청문회’를 내걸었으면 ‘심판’의 주제를 ‘경제 실정’으로 구체화시킬 수 있었을텐데 말이다. ‘경제 청문회’나 ‘경제 토론회’도 그저 정쟁의 한 수단이 돼 버렸다.

여당도 유혹을 즐긴다. 국정에 대한 무한 책임을 말하면서도 속으론 국회 파행이 ‘야당 심판’의 호재로 작용한다고 믿는다. 국회 의석의 80%를 차지하고 있는 제1당과 제2당은 ‘심판’ 프레임에 갇혀 맞붙는다.(3당이라고 다를 것은 없다. 떡고물만 바랄 뿐 심판 프레임은 같다).

밑바탕에는 결국 ‘그래도 쟤네보다는 낫다’는 자만이 깔려 있다. 그렇게 ‘쟤네’를 싫어하는 이들을 모아낸다. ‘혐오’ ‘막말’은 효율적 수단이다. 이 과정에서 피해를 보는 이는 오롯이 국민이다. 불행 정치, 후진 정치는 국민을 불행하게 만든다.

정치권이 짜고 있고, 짜려 하는 ‘심판론’에서 한발 더 들어가자. 심판의 대상 대신 내용을 묻고 그 내용에 맞춰 어떤 설계도를 그리는 지 지켜봐야 한다. 사실 이것도 뻔하다. 정답은 ‘혁신’이다. 그렇지만 실천하기 제일 어려운, 알면서도 못하는 게 ‘혁신’이다.

‘황교안 체제’에게 묻는 것은 ‘문재인 정부 심판’ 구호 그 다음이다. ‘그 나물에 그 밥’ ‘쟤네보다는 낫다’는 여당의 비아냥을 받아칠 혁신의 내용이다. ‘친박 물갈이’ 등 인적 청산을 해 내고 새 인물로 채워내는 것은 여당이 생각하는 최악의 시나리오다. ‘경제 실정’을 공격한다면서 자칫 ‘외국인 노동자 차별’로 읽힐 수 있는 발언을 하면 ‘심판 대상’이 된다.

여권도 마찬가지다. ‘진보 꼰대’를 털어낼 수 있는지가 1차 혁신 과제다. 과거의 진보가 현재와 미래의 진보를 담보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도 요구받는다. 경제를 챙기지 않는다는 비판을 받았던 문 대통령은 지난해 가을 이후 ‘경제 올인’ 행보를 보였다.

올들어 경제계 초청 대화를 네차례 가졌고 혁신금융비전선포식, 시스템 반도체 비전 선포식, 제조업 르네상스 비전 선포식 등 분야별 비전 선포를 이어가고 있다.

하지만 성과 체감은 없다. 억울하겠지만 ‘경제 실정’ 책임론이 나오는 이유도 여기 있다. 대통령이 경제를 챙기는 데도 안 나타난다면 경제팀에 비전을 되묻고 경제팀 교체까지 고려해야 한다. 사람 바꾸는 게 혁신의 전부냐고 반문할 수 있지만 인적 개편은 혁신의 시작이자 끝이다.

이는 청와대, 내각, 여야 모두에게 해당한다. 혁신하지 못하면 승리는 없다. 그 혁신은 그들을 위한 게 아니라 국민을 위한 것이다. 교체를 제 때, 제대로 하는 이가 심판을 피한다.

박재범 정치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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