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딜 하노이]다시 본 북미 협상의 역사

[the300]김정은-트럼프, 공동합의문 서명 않고 다음 기약

【서울=뉴시스】 북한 노동신문은 지난 27일(현지시각) 베트남 하노이 메트로폴 호텔 회담장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단독회담과 만찬을 했다고 28일 보도했다. 2019.02.28. (출처=노동신문) photo@newsis.com <저작권자ⓒ 공감언론 뉴시스통신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순조롭게 진행되는 것처럼 보였던 2차 북미정상회담이 '노 딜'(합의 없음)으로 마무리됐다. ‘탑다운’ 방식으로도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는 것은 비핵화 문제가 장기 난제로 자리매김할 것이란 비관론을 키운다.

북미협상은 항상 아슬아슬한 줄타기로 진행됐다. 합의에 이르더라도 파기가 되풀이되는 불신의 역사였다. 양측의 본격적인 비핵화 협상은 1993년 3월 북한이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를 선언한 ‘1차 북핵위기’부터 시작됐다.

갈등으로 치닫던 북미관계는 빌 클린턴 대통령 시절인 1994년 6월 지미 카터 전 미 대통령이 특사자격으로 평양을 찾으면서 출구를 찾았다. 그는 김일성 주석과 협상을 했고, 10월 북핵을 일부 동결하는 ‘제네바 합의’를 체결해 1차 핵위기를 끝냈다. 

하지만 미 공화당의 반대로 제네바 합의에 따른 경수로 지원약속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 북한은 1998년 장거리미사일인 대포동 1호를 발사하면서 다시 긴장국면을 조성했다. 

북한은 2002년 10월 제임스 켈리를 미 국무부 동아태차관보를 대표로 한 미국 협상단이 평양을 방문했을 때 비밀리에 고농축 우라늄(HEU)으로 핵탄두를 개발하고 있다는 사실을 시인했다. ‘2차 북핵위기’의 시작이다. 제네바 합의는 백지화됐다. 

조지 부시 미 대통령은 북한을 ‘악의 축’으로 규정하며 선제공격 가능성을 언급했다. 당연히 북미 양자간 협상은 진행되지 못했고 협상의 틀은 ‘6자 회담’으로 바뀌었다. 

북미에 한국과 중국, 러시아, 일본까지 모여 앉은 6자회담은 2005년 9·19공동성명을 도출하며 2차 핵위기를 종결시켰다. 핵문제 해결을 위한 북미 동시행동 원칙에 합의하고 북한의 핵무기 폐기와 NPT 복귀, 미국의 대북 에너지 제공 등의 약속이었다. 

그런데 9·19 공동성명이 나온 바로 다음날부터 문제가 생겼다. 미국 재무부는 마카오에 있는 방코델타아시아은행(BDA)이 북한의 불법자금을 세탁하는 곳으로 사용됐다며 제재를 발표했다. 

북한은 강력히 반발했고 2006년 7월 미국의 독립기념일에 딱 맞춰 대포동 2호를 비롯해 7발의 미사일을 쐈다. 그해 10월에는 1차 핵실험도 단행했다. 

이후 2007년 2.13합의와 10.3합의, 2008년 6월 27일 북한의 영변 냉각탑 폭파 등 진전된 합의가 있었지만 2017년 9월 북한의 6차 핵실험, 11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발사에 이르기까지 북미관계는 계속 도돌이표만 맴돌았다.

베트남 하노이에서 만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28일 단독·확대회담을 거쳐 업무오찬을 갖고 공동합의문에 서명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업무오찬과 합의문 서명 없이 양측은 회담장을 각각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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