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노이 리뷰]미디어에 눈 뜬 김정은 정권 "속도가 중요해"

[the300]며칠 걸리던 보도, 8시간만에…한·미 정상 영향?

김성휘 기자,오상헌 기자 | 입력 : 2019.03.02 08:10
해당 기사는 2019-03-04 런치리포트에 포함된 기사입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제2차 북미정상회담 참석차 베트남 하노이를 방문 중인 가운데 27일 평양 거리에서 시민들이 김 위원장에 관련한 신문 기사를 읽고 있다. 2019.02.27. 【평양=AP/뉴시스】 <저작권자ⓒ 공감언론 뉴시스통신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이렇게 빨리…그럴 리가 있나." 

북한의 미디어 보도 태도가 '상전벽해' 수준으로 바뀌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행보와 일정이 불과 몇 시간 만에 노동신문, 조선중앙방송 등 북한 관영매체에 뜬다. 남북 대화를 시작하던 1년 전만 해도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조선중앙통신은 1일 새벽, 전날 북미 정상회담 소식을 보도했다. 합의문 도출에 실패했다는 사실은 별도로 언급하지 않고 생산적인 대화들을 계속 이어나가기로 했다고 밝혔다. 

통신은 하루전 28일 "조미 최고 수뇌(북미 정상) 분들이 포괄적이고 획기적인 결과를 도출하기 위해 진지하고 심도 깊은 의견들을 나눴다"며 전날(27일) 시작된 2차 북미 정상회담 사실을 보도했다. 북미 정상의 첫 단독회담과 만찬 결과를 불과 8시간 만에 신속 보도한 것이다. 

노동당 기관지인 노동신문도 1면과 2면에 걸쳐 회담 소식을 자세히 전했다. 전용 특별열차를 타고 베트남에 도착한 김정은 위원장의 동당역 환영 행사 모습을 상세히 전했다. 김 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의 재회 모습과 만찬장 풍경 등이 담긴 17장의 사진을 실었다. 

김 위원장이 하노이 도착 후 실무대표단으로부터 협상 결과를 보고 받았다는 사실도 사진과 함께 언급했다. 노동신문(로동신문)이 북한 국민을 위한 매체라고 보면, 최고지도자 동정을 극히 제한적으로 며칠 뒤 알리던 관행은 깨졌다고 볼 수 있다.

'최고존엄'의 활동을 언제, 어떻게 보도하는가. 지난해 4월 판문점 남북정상회담, 9월 평양 남북정상회담 실무 협상 중 까다로웠던 부분이 보도의 '속도'에 대한 합의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4월 27일 경기 파주시 판문점 도보다리에서 산책 하며 대화 하고 있다. 2018.12.26. 【판문점=뉴시스】전신 기자 = photo@newsis.com <저작권자ⓒ 공감언론 뉴시스통신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북한은 당초 김 위원장 움직임을 '생중계'하자는 데 동의하지 못했다고 한다. 북측과 협의했던 청와대 관계자들은 우리와 너무 다른 북한의 보도 관행을 뚫고 회담과 오찬·만찬, 백두산 천지 방문 등의 보도 방식을 정하는 게 쉽지 않았다고 털어놨다. 남쪽은 너무 빠른 것을, 북쪽은 너무 느린 것을 요구했다.

최근 북한 미디어는 '실시간' 개념을 탑재한 걸로 보인다. 이유는 첫째 김 위원장의 통치 스타일이다. 은둔의 지도자로 불린 김정일 국방위원장과는 다르다. 리더십도 차별화가 느껴진다. 노동신문 사진 속 김 위원장은 실무협상단과 상하 구분 없는 원탁에 둘러앉아 긴밀히 대화하는 모습이다. 기존 북한 관영매체의 보도가 김 위원장에게도 갑갑했을 수 있다. 

둘째 김 위원장이 국제무대로 성큼 나오면서 과거 보도관행을 유지할 수 없게 된 측면이다. 긴밀하게 대화중인 남북미 3국 정상만 봐도 그렇다. 

트럼프 미 대통령의 언론활동은 김 위원장과 비교조차 안 된다. 수시로 트위터를 한다. 트럼프 대통령의 트위터(@realDonaldTrump)는 사실상 '1인 언론'이다. 트럼프 대통령 자신이 백악관에서 최고로 권위있는 취재원이다. 

문재인 대통령과 청와대도 실시간 속보와 라이브 생중계에 친숙하고, 능하다. 행사기획과 의전 준비는 전국민이 '실시간 중계'로 본다는 걸 전제하고 만들어진다. 

지난해 초 평창동계올림픽으로 남북 접촉이 막 시작될 때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은 당 선전선동부를 사실상 이끌며 언론·문화 분야를 맡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렇다면 북한 매체의 놀라운 변화는 결국 김정은-김여정 남매의 글로벌 감각이 만들어낸 셈이다. 두 사람은 '스위스 유학파'다.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이 늘어난 대외 접촉이 이들의 '감각'을 깨웠다. 북한이 국제사회 일원으로 나서고, 해외의 대북투자를 이끌자면 그만큼 글로벌 스탠다드가 통한다는 걸 보여줄 필요도 있다. 

'노 딜'이라는 북미 정상회담 결과는 이들에게 또 어떤 자극이 될까. 김 위원장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1분이라도 귀중하다"고 말했다. 김정은 시대 북한의 변화는 신문·방송 등 미디어 부문에서도 극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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