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 광주, 진실 밝히자"…'5.18 진상규명 특별법'의 존재이유

[the300][5·18 돋보기]②민간인 학살 은폐·조작 의혹 불거지며 법 제정, '북한군 개입설'도 조사

11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5.18민중항쟁구속자회·5.18서울기념사업회 관계자들이 최근 5.18 민주화운동 폄하 발언을 한 자유한국당 김진태 김순례 이종명 백승주 이완영 의원 제명과 지만원 구속수사 등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한 뒤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사진=이동훈 기자
1980년 5월18일 광주 시민들은 군부 쿠데타 세력에 맞서 싸웠다. 군부는 시민들을 '폭도'로 몰아세웠다. 이 과정에서 인권유린과 폭력, 학살, 암매장이 자행됐다. 시간이 흐른 뒤에도 5.18 민주화운동 폄훼는 이어졌다.

지난해 3월13일 '5·18민주화운동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법'이 제정됐다. 5.18 당시 국가권력이 민간인을 학살하고 이를 은폐·조작했다는 의혹이 나오면서다.

5·18 민주화운동의 진상이 아직도 정확히 규명되지 않았다는 판단 하에 나온 법이다. 그간 국가 차원의 진상규명 활동은 수차례 있었다. 그럼에도 국민 모두가 납득할만한 진상규명은 이뤄지지 않았다.

5.18 진상규명 특별법의 골자는 진상규명조사위원회를 설치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1980년 5월 광주 일대에서 국가 권력에 의해 벌어진 인권 유린을 조사한다는 내용이다.

특별법의 핵심 입법 취지는 5.18 관련 '왜곡'되거나 '은폐'된 진실을 규명하는 것이다. 5.18이 국가 차원에서 '민주화운동'으로 결론을 내린 만큼 북한군 개입설 등 왜곡을 막겠다는 취지다.

조사 범위는 △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과 이로 인한 사망·실종·암매장 △군의 최초 발포 경위와 집단 발포 책임 소재 △군이 헬기를 동원해 사격했다는 의혹 △북한군 개입설 등이다.

여권이 먼저 이 법 제정을 요구했다. 5·18 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이 헬기를 동원했고 민간인들에게 사격했다는 보도가 2016년 나오면서다. 당시 공군이 출격 대기 상태로 있었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더불어민주당은 진상 조사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2017년 8월 국방부에 5·18 특별조사위원회가 설치됐다.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지시했다. 조사위는 지난해 초 의혹들이 사실이라고 결론지었다. 

그러면서 여야는 관련 법 제정 논의를 시작했다. 자유한국당은 탐탁찮아했다. 다만 '북한군 투입설'을 조사대상에 포함시키기로 하면서 한국당도 제정안에 합의했다. 이 법은 제정 후 6개월이 지난 지난해 9월14일 시행됐다.

하지만 5.18 진상규명특별위원회는 아직 구성조차 이뤄지지 않았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1일 한국당 추천위원 2명에 대해 재추천을 11일 요청했다. 법이 요구하는 요건을 충족하지 못했다는 판단에서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한국당 후보 가운데 권태오, 이동욱 후보는 법에 규정된 자격 요건을 충족하지 못했기에 후보 재추천을 요청했다"며 "한국당 추천 차기환 후보의 경우 이미 국민적 합의가 끝난 5.18 민주화운동에 대해 왜곡되고 편향된 시각이라고 우려할만한 언행이 확인됐지만 법률적 자격 요건을 충족하고 있어 재추천을 요청하지는 않았다"고 밝혔다.

'5.18민주화운동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법' 7조 2항은 위원 자격 요건을 명시한다. 요건은 △판검사 또는 변호사 5년 이상 재직자 △대학에서 역사고증·군사안보·정치·행정·법·물리학·탄도학 등 관련 분야 교수·부교수 또는 조교수 5년 이상 재직자 △법의학 전공자로서 관련 업무 5년 이상 종사자 △역사고증·자료편찬 등의 활동 5년 이상 종사자 △국내외 인권분야 민간단체 5년 이상 종사자 등 5가지다.

한국당은 강하게 반발했다. 정용기 정책위의장은 "우리당이 추천한 조사위원을 청와대에서 임명 거부한 것은 전례 없는 일이며 심히 유감스러운 일"이라고 밝혔다. 정양석 한국당 원내수석도 "특별법에 제시된 자격 요건과 기준에 따라 객관적으로 진상규명할 위원으로 추천한 것"이라며 "국민 의사를 대변하는 국회와 자유한국당을 무시함은 물론이고 청와대의 의회민주주의에 대한 정면 도전"이라고 비난했다. 

문 대통령의 재추천 요청을 한국당이 사실상 거부한 셈이다. 특위 출범 시기는 더 늦어질 것으로 보인다.

진상규명 특별법에 앞서 발의된 관련 법은 '5.18 민주화운동 특별법'이 있다. 1995년 제정됐다. 이 법 제정으로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 등 가해자에 대한 법적 처벌이 가능해졌다.

당시 검찰은 5.18 가해자에 대한 불기소 결정을 내렸다. 이는 시민사회를 움직이는 촉매가 됐다. 두 전 대통령을 사법적으로 단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면서 법 제정까지 이어진 것이다.

1995년 7월14일 '5.18 학살자 재판회부를 위한 광주‧전남 공동대책위원회'가 출범했다. 서울에선 '5.18 완전 해결과 정의실현, 희망을 위한 과거청산국민위원회'가 있었다. 이 단체들은 검찰의 불기소 결정을 뒤집기 위한 방안을 찾았다.

8월25일엔 전국 78개 대학 교수 3560명이 5.18 특별법을 입법청원했다. '5.18 진상규명과 광주항쟁전신 계승 국민위원회'도 국회에 특별법 입법을 요구했다.

당시 야당이던 새정치국민회의 소속 조순현 의원 등 14명은 9월22일 '5.18 특별법' 초안을 발의했다. '5.18 광주민주화운동의 진상규명 등에 관한 특별법안'이 그 초안이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그해 11월24일 당시 집권 여당이던 민주자유당에 특별법 제정을 지시했다. 결국 국민회의와 민자당, 자민련이 각각 발의한 법안들을 참고해 법사위안이 나왔다. 이 법안은 같은 해 12월19일 국회를 통과했다.

당시 김 전 대통령은 "5.18 특별법 제정을 계기로 이 땅에 정의와 진실, 그리고 법이 살아 있다는 것을 국민에게 보여주는 기회가 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이후 1997년엔 5월18일이 국가기념일로 지정됐다. 2011년 5월 유네스코는 5.18민주화운동 기록물을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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