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최연소 민주당 女 변호사 장현주 "가장 존경하는 정치인은요~"

[the300][피플]장현주 민주당 민생국 부장 변호사

2019.01.09 장현주 더불어민주당 변호사 인터뷰/사진=이동훈 기자

여기자, 여변호사, 여비서. 어떤 직업 앞에 '여'자를 붙이는 일은 이제 사회적 합의로 점차 퇴색하고 있다. 남녀가 대등해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여성이 첫 발을 내딛은 분야라면 기록하고 기념해둘 만 하다. 60년에 달하는 민주당계 정당 역사에서 첫 공식 여성변호사로 굵직한 선거를 치르고, 정당 관련 법률검토를 총괄하는 장현주 변호사의 이야기다.

장 변호사는 사법연수원 43기로 2013년 법조인이 됐다. 첫 변호사생활은 '돈'이 중요한 보험회사에서 시작했다. 그는 "모든 회사는 돈이 중요하지만, 적어도 내가 처음 다닌 회사는 돈만 추구하는 회사는 아니었다"며 "능력과 인성을 갖춘 오너를 만나 전쟁과도 같은 비즈니스 세계에서 최전방 공격수이자 수비수 역할을 해야하는 사내변호사가 '사익'과 '공익'을 고민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고 말했다.

연봉도 두둑했고, 회사에서 신임도 받았다. 안정적인 삶이라며 주변에서 부러워할 때 쯤 장 변호사는 "내 삶의 추를 옮기는 시도를 하고싶었다"고 회고했다. 당시 5년차 변호사였다.

대학시절 정치외교학을 공부했다. 정치격변기였던 2016년은 그의 마음을 뜨겁게 만들었다. 당시 나이 34살. 아직은 젊으니 도전할 수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장 변호사는 과감히 2017년 초 문재인 당시 후보의 캠프 법률지원단에 합류했다. 장 변호사는 "전공서적과 이론으로 접하던 정치문제가 눈 앞에서 펼쳐졌다. 이론과 현실은 지독하게 달라보였고, 눈앞에 던져지는 문제는 어렵기만했다"며 "하지만 정치학과 법률로 현상과 원인을 다각적으로 분석하고 대안을 고민하는 일은 매일매일 가슴을 뜨겁게 했다"고 말했다. 

대선 후 장 변호사의 무게중심은 '돈'에서 '표'로 옮겨갔다. 당으로부터 '러브콜'을 받고 고민 없이 당직자 변호사로 정식 입사했다. 당과 관련된 각종 소송, 고소고발, 법률문제의 검토 및 자문 등을 총괄한다. 이제는 민주당 최고위원회의도 배석하고, 당헌당규 관련 자문이나 해석, 당 소송현황을 체크한다. 
2019.01.09 장현주 더불어민주당 변호사 인터뷰/사진=이동훈 기자
지난해 민주당의 압도적인 승리로 끝난 6.13 지방선거에서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밤을 새우며 전국단위 선거의 법률검토를 도맡았다. 장 변호사는 "지방선거는 공천 준비과정부터 선거 종료일까지 크고 작은 분쟁과 법률검토로 쉴새없이 달렸다"고 밝혔다. 법조인 출신 의원들도 있지만, 중앙당에선 유일한 변호사다보니 홀로 검토하고 판단·진행해야 할 일도 많았다. 고생이 많았던 만큼 지방선거 승리는 당내에서 '장 변호사는 복덩이'라는 별명을 안겨줬다.

최근 윤창호법, 김용균법 등 가슴을 아프게 한 사건들이 빠른 입법으로 보완되는 걸 보면 정당활동에 보람을 느낀다고 장변호사는 말했다. 그는 "변호사 시절, 완성된 법을 해석하기만 하다보니 '입법불비' 라는 이유로 의뢰인들에게 불합리한 부분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상담한 기억이 있다"며 "법조인 출신 의원님들이 법으로 세상을 바꾸려는 고민을 하는 걸 보면 후배로서 감동을 느낀다"고 말했다.
  
민주당에 오기 전부터 꼭 만나고 싶은 정치인이 있느냐는 질문에 장 변호사는 "정치인 이전에 존경하는 법조인 선배로 문재인 대통령이었다"며 "하지만 직접 봰 적은 한번도 없다"고 쑥쓰럽게 웃었다. 그는 "대선캠프 합류도 정당 편향이 아닌, 문재인 변호사 한 명의 삶을 떠올리며 결정했다"고 강조했다.

장 변호사는 "법조인 준비때부터 변호사 자격증을 손에 쥔 후까지 '그 시절 변호사였다면, 난 저 길을 선택할 수 있을까' 라는 고민에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고 털어놨다. 이어 장 변호사는 "지금 내 위치에선, 초심을 잃지 않고 내년 총선을 위한 공당의 시스템과 원활한 법률검토를 위해 다시금 심기일전 하겠다"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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