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死전입법'은 왜 안 됐을까…정쟁에 밀린 목숨들

[the300][사(死)후 입법부 '국회']②정쟁·우선순위·국민 관심에서 밀려난 법안들…"지속 감시 필요"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스물넷 비정규직 노동자 김용균씨가 목숨을 잃은 사고는 2년 전인 2016년 구의역 스크린도어 사고로 세상을 떠난 김군의 상황과 닮았다. 당시 원청의 안전책임을 확대하는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이 통과됐더라면 김용균씨의 허무한 죽음을 막았을 수도 있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보호하는 것은 국가의 기본적인 책무다. 그럼에도 안전 관련 법들의 사(死)전입법이 어려운 이유는 뭘까. 정쟁과 부처간 칸막이로 밀리고, 우선순위에 밀리고, 국민의 관심에서 밀려났기 때문이란 분석이 많다.

◇여야 정쟁으로 오늘도 계류중=위험의 외주화를 막기 위해 원청의 안전 책임을 강화하는 산업안전보건법(산안법)은 대표적인 여야 쟁점 법안이다. 산업계와 노동계를 대변하는 정치인들 간 이견이 커 합의가 어려웠다. 대립이 날카로울수록 법안 상정은 늦춰졌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관계자는 20일 머니투데이 더300과 통화에서 "기업과 관련이 있는 법은 여야 간 대립이 심하다"고 밝혔다. 그는 "산안법만 하더라도 (여야 대립으로) 여태 제대로 논의되지 않았다"며 "쟁점 법안이거나 부처에서 반기지 않는 법안이면 상정이 잘 되지 않더라"고 말했다.

김용균씨 사망사고 이후 정치권이 산안법 개정안을 올해 안에 처리키로 합의했지만 본회의 통과까지 낙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산업계는 사업주 책임 범위와 처벌 수위가 과도하다고 반발하고 있다. 21일로 예정된 산업계·노동계 공청회와 이어질 상임위 논의에서 갈등이 빚어질 것으로 보인다. 

◇쏟아지는 법안들 사이 우선순위 밀려=쟁점 법안은 논의할 게 많아 통과가 늦다. 반면 비쟁점 법안은 뒷전으로 밀려 검토조차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소방기본법과 같은 안전 관련 법 대부분은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관이다. 문제는 행안위가 처리해야 할 법안이 너무 많다는 데 있다. 20대 국회 들어 행안위에 계류 중인 법안은 1544개로 타 상임위 평균인 544개에 비해 압도적으로 많다.

행안위 관계자는 "행안위에는 지방재정법, 지방자치단체법 등 행정법들이 계속 올라온다"며 "이 과정에서 안전 관련 법은 우선순위에서 밀린다"고 지적했다. 이어 "필요성이 있는 법과 시급성이 있는 법은 다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비쟁점 법안은 사고가 생기고 나서야 우선순위가 올라간다. 이 관계자는 "사건이 터지고 언론 주목을 받으면 심사 1순위로 올라가서 정쟁 없이 통과된다"며 "그 전까지는 안전 관련 법이더라도 법안소위 심사대상으로 올리는게 쉽지 않다"고 말했다.

◇부처 간 칸막이…"우리 소관 아냐"=부처 간 소관이 명확하지 않아 법안 처리 주체가 애매해지기도 한다. 지난 18일 고교생 10명이 죽거나 다친 강릉펜션 사고의 경우 숙박시설 관리의 책임 소재가 불명확했다는 비판이 나왔다.

이 사안은 복수 상임위에 얽혀있어 문제가 된다. 사고가 난 펜션만 들여다보면 농어촌민박 시설로 등록돼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소관이 된다. 그러나 소규모 관광숙박시설을 총체적으로 다루는 관광진흥법은 문화체육관광위 소관이다. 학생들 상황에 국한하면 교육위원회, 안전 전반을 점검할 경우 행안위까지 확장된다. 부처별 혼란이 발생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가깝게는 지난 4월 BMW 차량 화재사건이 연달아 일어났을 때도 환경부와 국토교통부의 칸막이가 문제였다. 양 부처가 "규정상 자료를 공유할 수 있는 규칙이 없다"며 늑장 대응을 야기했다는 지적이다. 강릉펜션 사고의 경우에도 각 상임위가 제 목소리만 낼 경우 문제를 보완하는 입법이 어려워질 수 있다. 


◇해답은 국민의 지속적 관심=당장 어떤 사안이 이슈로 떠올라도 법이 바로 통과되는 건 아니다. '구의역 김군'의 비극은 정책 개선으로 이어지지 못하고 '태안화력발전소 김씨'로 이어졌다. 그나마 장기 논쟁거리였던 김성수법(심신미약 감경 의무를 삭제한 형법 개정안)은 119만명에 달하는 청와대 국민청원이 입법 견인차 역할을 했다. 법안 통과까지 국민들의 지속적인 관심이 필요한 이유다.

김준석 동국대 정치외교학 교수는 "사건이 터지고 법이라도 만들어지면 다행"이라며 "문제는 그 법의 통과가 어렵다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윤창호법도 통과는 됐지만 결국 누더기로 처리됐다"며 "유치원3법만 해도 점점 뒷전으로 밀리고 있어 나중에 어떤 식으로 통과될 지 모른다"고 비판했다. 이어 "조직화된 소수가 조직화되지 않은 다수보다 강하다"며 "그동안 목소리를 높이지 않았던 다수의 국민들이 눈을 부릅뜨고 끝까지 (법 통과를) 지켜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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