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0랭킹]엿새 지각한 예산 정국, 결정적 장면 '다섯'

8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2019년도 예산안에 대한 수정안이 재석 212인 중 찬성 168, 반대 29, 기권 15인으로 가결되고 있다. 이날 본회의에서는 정부 원안보다 9000억원 감액된 469조6000억원의 내년도 예산안이 최종 의결됐다. /사진=뉴스1

국회가 법정시한(12월2일)을 엿새 넘긴 8일 469조6000억원 규모의 내년도 예산안을 처리했다. 국회는 예산심사를 통해 내년도 정부 총지출 예산을 원안 470조5016억원에서 4조2983억 증액, 5조2248억 감액, 9265억원 순감액해 469조5752억원으로 수정했다. 올해도 '쪽지 예산'은 여전히 횡행해 지역구 챙기기 예산인 SOC(사회간접자본) 예산은 1조원 이상 증액됐다.

올해 예산 대비 9.7%(41조7000억원)이 증가한 '슈퍼 예산'은 오전 4시30분쯤에야 최종 의결됐다.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만 표결에 참여했다. 선거제도 개편을 합의하지 않았다고 반발한 바른미래당, 민주평화당, 정의당은 회의에 불참했다. 영하 10도 아래의 강추위가 닥쳤지만 국회는 얽히고 섥힌 갈등에 뜨거웠다. 열탕 같았던 예산정국의 다섯 가지 장면을 뽑았다.

◇장면#1. '더불어한국당'의 탄생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홍영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김성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가 지난 6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운영위원장실에서 2019년도 예산안 합의문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이동훈 기자

'더불어한국당'이 국회에 등장한 것은 지난 6일. 이 말은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의 당명을 합친 말이다. 이날 홍영표 민주당 원내대표와 김성태 한국당 원내대표만의 합의가 이뤄진 데서 유래됐다. '적폐'냐 '신적폐'냐 다투며 올해 여러 정국에서 두 당이 대립각을 세워온 것을 생각하면 이례적인 일이다.

이날 홍·김 원내대표는 당시 12월7일에 예산안 처리를 하겠다는 내용의 합의문을 발표했다. 한국당이 요구하던 일자리예산과 남북협력기금 일반회계 전입금 등 5조2000억원 감액과 공무원 증원 정부안 중 3000명 감축이 받아들여졌다. 대신 '소득 수준 관계 없는' 아동수당 지급 등 민주당이 주장하고 한국당은 반대해오던 내용이 포함됐다.

민주당과 한국당이 손 잡은 것을 이처럼 표현한 '신조어 창시자'는 윤소하 정의당 원내대표다. 그는 6일 국회 정론관 기자회견에서 "지금 이 순간 새로운 '더불어한국당'이 생기고 있다는 점을 국민과 함께 규탄한다"고 말했다.

◇장면#2. '이판사판' 야3당, 단식농성 돌입

지난 7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로텐더홀에서 정의당 이정미, 바른미래당 손학규 대표 등이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의 예산안 합의 규탄과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촉구하는 단식농성을 하고 있다. /사진=이동훈 기자

'더불어한국당'의 탄생 속 교섭단체 지위의 바른미래당과 비교섭단체인 민주평화당·정의당은 없었다. 연동형 비례대표제로의 선거제도 개편이라는 바른미래당 등 야3당의 요구를 여당과 제1당이 받아들일 수 없다고 판단하면서다.

민주당·한국당의 지난 6일 합의에 "협조 못하겠다"고 선언한 3당은 강경책을 택했다.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와 이정미 정의당 대표가 국회 본회의장 앞 '로텐더 홀'에서 단식 농성에 돌입했다. 정동영 민주평화당 대표는 단식에 참여하지 않았다. 다만 평화당은 이미 지난 3일부터 국회 본청 계단 앞에 천막을 쳐 '천막당사'를 만들고 항의 중이다.

◇장면#3. 민주·한국 손에 발동된 '질서유지권'

바른미래당·민주평화당·정의당 의원들이 7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기획재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정성호 국회 기재위원장을 비롯한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예산부수법안을 처리하려 하자 이를 저지하고 있다. /사진=뉴스1

야3당은 단식농성에서 그치지 않고 '행동'으로 항의했다. 수정 예산안과 함께 처리돼야 하는 예산부수법안을 의결하기 위해 7일 밤 기획재정위원회와 8일 새벽 법제사법위원회가 잇따라 열렸지만 회의 진행이 원활하지 않았다.

야3당 의원들이 예산부수법안 처리를 저지하자 민주당 소속의 정성호 기재위원장과 한국당 소속의 여상규 법사위원장은 각각 회의장에서 '질서유지권'까지 발동했다. 질서유지권은 국회법 제145조에 따라 회의장에서 국회법과 국회 규칙을 위반해 질서를 어지럽힌 의원에게 의장이나 위원장이 경고나 제지를 할 수 있게 한 권한이다. 경고·제지에 따르지 않는 의원에게는 위원장 권한으로 회의 발언 금지와 퇴장 조치도 이뤄질 수 있다. 질서 유지가 어렵다고 판단하면 위원장 직권으로 회의 중지와 산회도 가능하다.

김관영 바른미래당 원내대표는 이같은 상황에 대해 8일 새벽 예산 수정안의 본회의 처리 직전 반대토론을 신청해 "날치기"라며 항의했다. 그는 "오늘 민주당 의원 한명이 대연정을 이뤘다고 말했다"며 "스스로 적폐정당으로 규정하던 한국당과 함께 '날치기 법안'을 통과시키는 상황에서 웃으면서 대연정을 했다고 할 수 있느냐. 앞으로 대연정을 더 강화하라"고 말했다.

◇장면#4. 올해도 '밀실 예산'

무소속 이용호 의원이 지난 2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소소위 회의실 출입문 앞에서 "밀실 예산 나눠 먹기 반대, 힘 없고 소위된 지역예산 배분하라"라고 써진 손팻말을 들고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사진=뉴스1

국회 곳곳의 소란 속에서도 '밀실'에서는 조용히 챙길 것들을 챙겼다. 올해도 예산결산특별위원회의 예산조정소위원회는 늑장 출발한 데다 여야 싸움터로 변질됐을 뿐 '감액·증액'이라는 제 역할을 못했다. 예정보다 일주일 늦어진 지난달 22일에야 가동된 예산소위는 도중 '세수결손 4조원' 논란만 남기고 파행과 재가동을 거듭했다.

실질적인 예산 수정은 예결위 교섭대표 간사들의 비공개 모임인 '소(小)소위'와 각 당 원내대표의 비공개 회동에서 정리됐다. 소소위는 지난 1일부터 시작됐다. 이 가운데 복지 예산은 정부안보다 1조2000억원 삭감되고 '지역구 예산'이라 할 수 있는 SOC(사회간접자본) 예산은 정부안보다 1조2000억원 늘었다.

이같은 '깜깜이' 예산에 무소속 의원의 불만도 이어졌다. 무소속 이용호 의원은 지난 2일 소소위가 이뤄지고 있는 국회 예결위회의장 앞에서 "밀실 예산 나눠먹기 반대, 힘없고 소외된 지역예산 분배하라"라는 피켓을 들고 나홀로 시위를 했다.

◇장면#5. 주머니 스스로 챙긴 국회

국회의원들의 대표적인 지역구 챙기기 예산인 SOC(사회간접자본) 예산은 1조2000억원 증액됐다. 예산 심사 결과를 보면 감액된 항목보다 증액된 항목이 훨씬 많았다. 당초 정부안에 없던 예산이 늘어난 경우도 많았다. 심사과정에서 각 의원들이 지역구 또는 민원 예산을 끼워넣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당초 정부안에 편성되지 않은 '해외 건설인의 날' 예산은 심사과정에서 3억원 증액됐다. 해외 건설인의 날은 김성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가 제정을 촉구했던 날로 지난 7월 제정 촉구안이 본회의를 통과했다.

여당 대표의 지역구 예산 챙기기 의혹도 제기됐다. 전희경 자유한국당 의원은 8일 본회의 예산안 반대토론 중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 소관의 국회세종의사당건립 예산 10억원이 국회 심사과정에서 막판 새롭게 편성된데 대해 "이해찬 대표의 지역구 세종시를 위한 예산"이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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