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년만에 9→16명…예산심사의 꽃 '예산소위' 변천사

[the300]1964년부터 시행…19~20대 국회 '15명 관례' 깬 2018년도 예산소위



국회가 지난 21일 예산조정소위 구성을 최종 16명으로 확정했다. 1964년 9명으로 시작된 예산조정소위는 조금씩 늘었고, 54년만에 역대 최대 규모로 커졌다. 여당이 7명, 자유한국당이 6명, 바른미래당이 2명이고 비교섭단체가 1명 포함됐다. 비교섭단체로는 민주평화당이 참여하기로 했다. 본격적인 증·감액 심사를 위한 예산조정소위 첫 회의는 22일 오전부터 시작됐다.

예산조정소위 구성 문제는 최근 여야 갈등의 불씨 중 하나였다. 여당은 16명, 제1야당 한국당은 15명으로 구성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한국당 예결위 간사 장제원 의원은 지난 19일 당 상임위원장·간사단 회의에서 "지난해 민주당 소속 백재현 당시 예결위원장이 '소위 15인 정수는 19대 국회부터 5년 내내 지켜온 관례라 15인 이상 안 된다'며 자신들에게 우호 당인 정의당의 소위 참여도 배제했다"는 이유를 댔다.

예산조정소위 인원은 매년 교섭단체간 합의로 정하게 돼 있다. 이 과정에서 이번처럼 잡음이 나오기도 한다. 20대 국회 들어 다당제 국면에서 이같은 논의는 더욱 복잡해졌다.

예산조정소위에서 각종 '쪽지예산'을 위한 증·감액 등 예산 조정이 이뤄지기 때문에 예산조정소위는 '예산 심사의 꽃'으로도 불린다. 그만큼 매년 소위 구성 협의 과정에서 국회는 소위 규모를 조금씩 늘려왔다.

◇제도도입 첫 10년 9명…32년간 '관례' 된 11명

'계수조정소위'라고도 불리는 예산조정소위가 시작된 것은 제6대 국회 2년차인 1964년부터다. 1965년도 예산안 심사부터 예산조정소위를 통한 증·감액 심사가 이뤄졌다.

예산조정소위가 처음 등장했을 당시 인원은 9명이었다. 당시 예결위원이 36명이었으니 4분의 1 수준이다. 전체 인원의 3분의 1 수준인 올해 예산조정소위 인원 비율보다 적은 편이다.

9명의 예산조정소위는 그 후 제9대 국회 첫 해인 1973년까지 약 10년 간 이어졌다. 이듬해 예산 심사 국면에서 여야는 11명으로 2명을 늘렸다. 전체 예결위원이 40명으로 늘어난 가운데 예산조정소위 인원도 함께 증가했다.

'11명의 예산조정소위'는 1974년부터 제17대 국회 3년차인 2006년까지 무려 32년간 관례처럼 이어졌다. 예결위 전체 인원이 1977~1979년 45명, 1981년 이후부터 현재까지 50명으로 늘어난 가운데 국회는 거의 매년 11명의 소위 위원을 뽑았다.

예외도 있었다. 1985년에는 13명, 1990년에는 9명으로 증감이 있었다. 2000년 이후에는 △2000년 13명 △2003년 10명 등으로 구성되기도 했다.

◇12명에서 16명까지…'고무줄' 예산조정소위

11명이 관례처럼 굳어졌던 예산조정소위 인원은 17대 국회 마지막 해인 2007년부터 매년 '고무줄'처럼 늘었다 줄었다 했다. 당시 여당인 대통합민주신당은 관례를 깨고 여야 교섭단체 각 6명씩, 비교섭단체(민주노동당) 1명을 포함해 13명으로 예산조정소위를 구성했다. 이듬해에도 비교섭단체 2곳(선진과창조의모임·친박연대)에 각 1석씩을 내준 13명으로 예산조정소위가 이뤄졌다.

2010년에는 갑자기 15명으로 소위 인원이 불어났다. 이전처럼 비교섭단체 2곳(자유선진당·미래희망연대)에도 의석을 주는 한편 여야 양 당이 한 석씩 의석을 더 가져가게 됐다. 여당이던 한나라당은 8석, 민주당은 5석을 받았다.

반면 이듬해에는 예산조정소위 인원이 12명으로 급감했다. 직전 해 여야 양당이 한 석씩 더 가져갔던 의석을 반납하는 한편 비교섭단체 의석도 1석을 줄였기 때문이다.

19대 국회 들어서는 15명의 예산조정소위가 이어졌다. 여당인 새누리당과 야당인 새정치민주연합이 각각 8대 7 비율로 구성됐다. 비교섭단체는 지난해까지 포함되지 못했다.

다당제가 시작된 20대 국회 들어서도 지난해까지는 매 해 15명에 맞춰 정당 별 인원을 배분했다. 대신 기존 양당 체제를 이뤄 오던 새누리당(자유한국당)과 더불어민주당은 기존보다 각 의석 수를 줄이고 새 교섭단체 국민의당(2016·2017년), 바른정당(2017년) 등에 내줬다.

다당제가 되며 예산심사 국면에서 여당이 불리하게 됐다. 20대 국회 첫 해인 2016년엔 여당(새누리당)이 7석, 제1야당(민주당)이 6석, 국민의당이 2석을 차지했다. 여야 비율이 7대 8로 이전에 비해 역전된 셈이다. 지난해에는 한국당에서 분리된 바른정당에도 1석을 내줘야 해 민주당과 한국당 의석 수가 6석으로 동일했다. 여야 비율은 6대 9로 여야 의석 수 격차가 더 벌어졌다.

올해는 역대 최대 규모인 16명으로 예산조정소위가 꾸려졌다. 민주당이 7석, 한국당이 6석, 바른미래당이 2석, 민주평화당이 1석 등을 가져갔다. 비교섭단체가 포함된 것은 2011년 이후 7년 만이다.

민주당은 최대한 여소야대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지난해와 달리 7석을 사수하려 했던 것으로 풀이된다. 여야 비율은 7대 9로 여전히 여당이 밀리지만 상황은 지난해보다 낫다는 평가다. 한국당과 바른미래당이 전날까지 국회 보이콧을 함께 해 온 가운데 평화당의 의중이 중요해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예산조정소위에서 평화당 지분이 민주당에 우호적으로 작용한다면 여야 세력 비율을 8대 8로 비등하게 생각해볼 수도 있다.

◇예산조정소위의 '오점' 1993년과 2009년

국회 파행으로 아예 예산조정소위가 구성되지 못했던 적도 있었다. 예산조정소위 제도 도입 이래 국회는 1993년과 2009년 단 두 번 소위 구성에 실패했다.

김영삼 대통령의 문민정부 첫 해였던 1993년, 제14대 국회는 전 정부 비리 척결을 둘러싸고 국회 운영에 진통을 겪었다. 당시 노태우 전 대통령 비자금 문제를 비롯해 안전기획부(안기부)법 개혁입법, 쌀 시장 개방 문제 등을 놓고 여야가 갈등하다 예산심사까지 난항을 겪었다.

18대 국회인 2009년 예산 정국은 몸싸움의 향연이었다. 당시 야당인 민주당이 회의장을 점거하는 일도 있었다. 당시 2010년도 예산안은 이명박 정부의 4대강 사업 예산이 핵심이었다. 민주당은 극렬하게 반대하며 예결위 회의장을 15일간 점거하기도 했다. 결국 여당(한나라당) 출신 김형오 국회의장이 여당 의원총회에서 예산안을 직권상정했다. 예산안은 여당 단독으로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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