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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용호 북한 외무상이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폐막일인 지난해8월8일 오전 아세안 50주년 기념식 및 폐막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필리핀 마닐라의 한 호텔에 마련된 숙소에서 걸어나오고 있다. /사진=뉴스1

리용호 북한 외무상이 4일 열리는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외교장관회의 참석을 위해 3일 싱가포르에 입국할 것으로 알려졌다. 리 외무상은 핵·미사일 도발로 고립무원 처지였던 지난해와 달리 적극적인 외교를 펼치며 종전선언 등을 강하게 주장할 것으로 보인다.

1일 외교 소식통에 따르면 리 외무상은 3일 오전 에어차이나 항공편을 이용해 싱가포르 창이국제공항에 도착할 예정이다.

리 외무상은 전날(2일) 오전 평양발 고려항공 편으로 베이징 서우두 공항에 도착해 주중 북한대사관에서 머물다가 당일 저녁 서두우 공항으로 이동해 싱가포르행 비행기에 탑승할 것으로 예상된다. 김창민 북한 외무성 국제기구 국장 등 북측 선발대는 1일 도착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아직 싱가포르에서 모습이 포착되진 않았다.

ARF는 북한이 유일하게 참석하는 역내 안보 다자회의체로, 북한은 2000년부터 회원국으로 참석해왔다. ARF는 전통적으로 북한에 우호적인 성향의 다자안보협의체지만 최근 핵·미사일 도발이 거듭되며 대북 규탄 수위가 높아졌다. 특히 지난해엔 '엄중한 우려(grave concern)'을 표하는 역대 최고 수위의 ARF 의장성명이 채택됐다.

북한 대표단은 ARF에서 미국의 대북 적대시정책을 비판하면서 핵실험과 탄도미사일 발사에 대한 자위권적 당위성을 강조해왔다. 리 외무상은 지난해 ARF 기간 내내 취재진의 질문에 침묵으로 일관했으며, 중국 등 불과 3개국과 회담을 가지는 등 소극적인 태도를 보였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난 4월 '핵-경제 병진노선' 대신 '사회주의 경제건설'을 새 전략노선으로 채택하고 미국과 완전한 비핵화를 약속한 만큼 올해 ARF에서 리 외무상이 이전과 달라진 행보를 보일 것으로 보인다.

리 외무상은 이번 ARF를 계기로 약 5~6개국과 양자회담을 추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올해 남북 정상 간 회담을 두 차례 가진 만큼, 리 외무상과 강경화 외교장관과의 회담은 성사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관측되지만 아직 일정은 확정되지 않았다. 외교부 당국자는 "저희가 제안을 해놨고 북측에서 반응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역대 ARF에서 남북 외교장관 회담은 4차례 있었으며, 마지막은 2007년이었다.

북미 외교장관 회담 성사 여부도 아직 미정이지만 미측은 가능성을 열어놓은 분위기다. 미국 국무부는 31일(현지시간)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과 리 외무상과의 양자회담 일정은 별도로 잡히지 않았지만 양측의 접촉 가능성은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리 외무상과 왕이 중국 외교담당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도 회동할 것으로 보인다. 리 외무상은 지난해에도 마닐라에서 ARF 계기에 왕이 부장과 회담을 갖고 쌍무관계 및 지역정세에 대한 의견을 교환했다.

일본 매체들은 리 외무상이 고노 다로 외무상과 만나 일본인 납치 문제와 국교정상화 등에 대해 의견을 교환할지 주목하고 있다. 고노 외무상은 지난해 필리핀 마닐라 ARF 장관회의 때 회의 전날 만찬 자리에서 리 외무상과 조우해 이야기를 나눴으나 별도 회담을 갖진 않았다.

리 외무상은 이번 ARF 기간에 교착상태에 빠진 북미 비핵화 협상과 관련한 의견을 표명할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서해 위성발사장 해체작업 등 자국의 비핵화 노력을 강조하며 미측이 북한의 체제안전보장과 종전선언에 적극 나서야 한다는 당위성을 피력할 것으로 전망된다. 중국을 포함한 4자 종전선언에 대한 리 외무상의 입장 표명이 나올지도 관심사다.

북한의 비핵화 관련 최근 행동 변화가 올해 ARF 외교장관회의 의장성명에 어느 정도 반영될지는 미지수다. 일본 마이니치신문은 올해 ARF 의장성명 초안에 지난해에 이어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CVID)' 표현이 들어갔다고 보도했다. 미국은 북측에 핵물질 신고 등 추가적 행동조치를 요구하며 압박하고 있다. 다만 아세안 국가들의 대북 기조가 다소 누그러진 만큼 CVID보다 완화된 표현이 최종 의장성명에 들어갈 수도 있다는 평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