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안을 들여다보면 하나의 인격체 같다. 정신(법 취지)과 육체(법 조항)가 있다. 개정이 반복되며 살을 붙이기도, 빼기도 한다. 그렇게 사연이 쌓인다. 그 역사는 법의 얼굴(face)에 고스란히 남는다. ‘face법’을 통해 사연많은 법을 짚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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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분폭리-코로나 자동차서 태어난 나를 아시나요
나는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이하 공정거래법)이다. 제정된 건 1980년 12월31일(시행은 1981년 4월1일)이지만 사람들은 기원을 좀 더 오래된 지점에서 찾는다. 요즘 세대엔 이름도 생소한 ‘3분(粉) 사건’과 ‘코로나 폭리 사건’이다.
예나 지금이나 특혜엔 파리가 꼬이기 마련이지. 개발 경제가 한창이던 1964년 ‘밀가루, 설탕, 시멘트’ 등 세 가지 가루, 이른바 ‘3분 산업’ 기업들이 매점매석으로 가격을 조작했다는 사실이 국회 야당의원들을 통해 폭로됐어. 가격 조작은 물론 엄청난 세금도 탈루하고 있었는데 이걸 묵인해주는 댓가로 당시 여당인 박정희의 공화당이 거액의 정치자금을 제공받았다는 거지. 하지만 군사정권이 비리의 주범이었기 때문에 이 사건의 진상은 제대로 밝혀지기 어려웠어.
신진 자동차의 코로나 폭리사건도 내 탄생에 직접적 영향을 줬어. 일본 도요타와 제휴로 생산한 코로나 승용차의 판매가격이 문제가 됐지. 해외에선 한 대 22만원(당시 800달러) 정도에 판매됐던 자동차인데 국내선 이보다 3~4배 비싼 가격에 판매한거야. 경쟁업체 없이 독점적 지위를 누리면서 횡포를 부렸지.
마각은 국정감사에서 드러났어. 1968년 ‘외자도입 특별 국정감사’에서 차관업체 폭리문제가 불거졌는데 신진자동차의 횡포가 주요 현안으로 논의된거야.
이 두 사건이 사회에 경종을 울리면서 비로소 독과점 규제에 대한 논의가 시작돼. 정부가 여론을 등에 업고 1969년 마침내 ‘독점규제법안’을 만들어 국회에 제출하지. 하지만 국회를 통과하진 못했어. 경제 성장이 최우선 과제인 사회 분위기 속에서 기업을 견제하는 법안이 나오긴 어려웠지. 정부가 독과점 피해에 대해 사실상 무지했던 것도 또다른 이유야. 이 법안이 좌절되고 개발독재가 이어지면서 ‘개발주의>공정경쟁’의 부등식이 확고해졌어. 이후로도 수십년간, 아니 어쩌면 지금까지 우리 사회와 경제를 옭아매고 있는 바로 그 개념이야.
이런 배경에도 불구하고 독과점 문제가 결국 경쟁법 제정의 성과로 이어지는데는 뜻밖의 요소가 작용했어. 바로 ‘물가’였지. 중산층이 확산되고 가계 규모가 커지면서 너나 할 것 없이 물가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어. 그런데 독과점 기업들이 떼돈을 버는 과정에서 그 피해를 누가 보겠니. 바로 소비자들이지. 재벌 대기업의 독과점으로 소비자들이 피해를 입는다는 인식이 확산됐어. 합당한 경우도 많았지만 사실 석유파동이나 급격한 환율변동으로 어쩔 수 없이 물가가 오를때도 있었는데 이 때도 화살이 기업으로 갔지. 여기에 대해서는 여전히 해석이 분분하지만 결국 내가 태어나는데는 물가에 대한 국민들의 폭발적 관심이 긍정적으로 작용했어.
사실상 내 전신으로 1976년 시행된 ‘물가안정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은 이런 시대상을 반영해서 만들어진 법이었지. 1981년엔 공정거래위원회가 출범했고 공정위와 함께 바로 나 공정거래법이 시행됐어. 내가 태어난 역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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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머니투데이DB |
# 경제민주화 바람…재벌개혁 키워드로
이런 과정을 통해 태어난 공정거래법은 △담합 규제 △독과점 방지 △재벌 개혁 등을 위한 수단이 됐어야만 했다. 하지만 신군부는 처음부터 공정거래법을 ‘재벌 길들이기’ 용으로 사용했다. 노태우 정부가 개정하면서 ‘재벌 경제력 집중 억제’를 타이틀로 내세운게 대표적이다. ‘대규모 기업집단’이라는 용어가 이 과정에서 처음 등장했다. 자산 4000억원 이상 기업 32개를 이렇게 묶어 대기업으로 별도 관리하기 시작했다.
공정거래법 상 대표적 제도였던 ‘출자총액제한제도’(출총제)는 여기 해당하는 기업들이 자기 순자산액의 40%를 초과해서 국내 회사에 출자할 수 없도록 묶는 규제였다. 또 대규모기업집단에 속하는 기업들은 계열사끼리 서로 주식을 취득하지 못하도록 하는 상호출자금지제 역시 이때 도입됐다. 재벌이 문어발식으로 확장하는걸 막자는 취지였지만 사실상 재벌의 목에 목줄을 채우는 의도라는 해석이 지배적이었다.
이어 들어선 YS(김영삼) 정부도 마찬가지로 공정거래법을 활용, 재벌을 계속 억제했다. 1993년에 도입한 업종 전문화 제도가 대표적이다. 대규모기업집단은 주력업종을 별도로 정해야만 출자규제나 은행대출 규제를 풀어주는 제도다. 역시 문어발 확장을 막자는 취지였지만 불필요한 규제라는 지적 속에 1995년 폐지됐다. YS정부는 이에 앞선 1994년엔 공정거래법 상 출총제 한도를 40%에서 25%로 줄이는 방식으로 대기업 규제를 한층 강화하기도 했다.
DJ(김대중)정부는 △경영투명성 제고 △상호채무보증해소 △재무구조 개선 △핵심역량강화 △책임경영제고 등의 5대 원칙을 세우고 재벌개혁을 추진했다. 여기에 △제2금융원 경영지배구조개선 △순환출자 억제 및 부당내부거래차단 △변칙상속 및 증여방지 등을 더한 이른바 ‘5+3 재벌개혁’ 계획을 세우고 적극 추진했다. 일시 폐지됐던 출총제를 2001년에 3년만에 다시 시행한 것도 이와 같은 맥락이었다.
참여정부는 상호 출자 고리를 끊어야 재벌개혁이 이뤄진다는 생각을 바탕으로 재벌개혁을 추진했다. 역시 공정거래법을 적극 활용했다. 지주사 도입을 의무화하고 재벌의 지배구조 개선을 추진했다. 계열금융사 의결권 한도는 30%에서 15%로 줄였다 .반면 실제 출총제 출자한도를 종전 40%로 완화하고 대규모기업집단의 기준을 10조원으로 상향하는 등 규제 완화를 추진하기도 했다.
MB(이명박)정부는 부활과 폐지를 거듭하던 출총제를 아예 정권 초기에 폐지해버렸다. 2008년에 806개였던 30대기업 계열사는 MB정부 말기인 2012년엔 1220개로 늘어났다. 박근혜정부는 공약으로 재벌개혁을 내세웠지만 연기만 무성할 뿐 아무 구체적인 변화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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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 그리고 김상조
문재인 정부의 시작은 공정위 기업집단국 신설이었다. 대기업 전담부서를 만든다는 내용은 문 대통령의 공약이었는데 말 그대로 공정거래법을 제대로 휘둘러보겠다는 의도다. DJ정부 당시에도 공정위엔 조사국이라는 기구가 있었다. 대기업 내부거래 등을 전담 조사하며 사실상 재벌의 저승사자급 위상을 확보했다.
총 17회의 직권조사로 31조원 상당 내부거래를 적발하는 성과를 냈다. 기업집단국은 출범 초기 이에 비견됐다. 올 들어서만 일감몰아주기 분석결과와 공익법인 실태조사 결과, 지주사 수익구조 분석 등을 연이어 발표하며 대기업을 강하게 압박하고 있다. 이 공약 이행을 전담한게 김상조 공정위원장이다.
재벌개혁에서 빼놓을 수 없는게 시민단체이고 김 위원장은 그 역사를 함께한다. 김 위원장은 △경제력 집중 억제 △지배구조 개선 등 두 가지 흐름으로 나뉜 재벌개혁에서 지배구조 개선을 중시해 온 인물이다. 사전적 규제보다도 외부 통제장치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지배구조를 합리화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기업을 인수할 때 대주주만이 아니라 다른 주주들의 주식까지도 같은 가격에 함께 사들이도록 하는 의무공개매수 등도 주장해 왔다. 대기업 계열사 전체를 하나의 단위로 보는 대기업집단법도 구상했었다. 향후 공정거래법 운영의 밑그림을 여기서 엿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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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거래법 전면개정, 국회 넘을까
민관합동 공정거래법 전면개편 특별위원회는 29일 공정거래법 개편 권고안을 내놨다. 사실상 법 탄생 이후 38년만의 전면개편 추진이다. △일감몰아주기 규제를 강화하고 △공익법인 의결권 행사를 제한해 대기업 지배구조를 개선하고 △대기업 지주사의 벤처 인수 활성화를 위해 벤처지주사 규제를 완화하는 내용 등을 담았다.
그러나 이번 개편의 화두로 여겨졌던 전속고발권 폐지 문제에 대해선 결론을 내지 못했다. 9명의 특위 경쟁법제분과 위원 중 5명은 ‘보완·유지’, 4명은 ‘선별 폐지’에 표를 던졌다. 일견 팽팽해보이지만 ’전면폐지‘를 택한 위원이 없었다는 점에서 사실상 유지 결론으로 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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