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정 실장이 요즘 하도 미국을 자주 가서…. 저희랑 회의를 반 하고, 미국과 반 하는 것 같다."

임종석 대통령비서실장 겸 남북정상회담 준비위원장은 26일 킨텍스 남북정상회담 프레스센터에서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평양과 미국, 중국, 러시아 등을 쉼없이 오가며 문재인 대통령의 '메신저'가 된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을 치켜세운 거다. 

정 실장의 존재감은 남북 대화 국면인 지난달부터 두 달 동안 그의 행보만 봐도 알 수 있다. 서훈 국가정보원장과 함께 지난 5일 북한을 방문, 김정은 위원장을 만났다. 다음날(6일) 귀환 직후 문 대통령에게, 하루 뒤(7일) 청와대 오찬장에서 여야 대표들에게 방북 결과를 보고했다. 

이튿날(8일)엔 미국에 갔다. 도착하자마자 곧장 백악관으로 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만났다. 북미정상회담을 하겠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뜻을 백악관 앞에서 전세계에 영어로 브리핑하기도 했다.

빠듯한 '2박4일' 미국 일정을 마치고는 지난달 11일 오후 귀국하자마자 문 대통령에게 방미 결과를 보고했다. 서울에서 하루를 보내고 중국으로 향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만난 그는 이튿날인 13일부터 러시아에도 다녀왔다.

열흘 동안 4개 지역을 거의 하루 간격으로 왕복한 셈이다. 한반도 정세의 키를 쥔 트럼프·시진핑·김정은 세 사람을 열흘 새 모두 만난 진기록도 갖게 됐다. 그러면서 미국엔 방북 결과를, 중국과 러시아엔 방북·북미 성과를 조속히 설명했다. 북한과의 대화에 협조를 이끌어내는 설득 외교의 최전선이다. 올해 72세의 나이가 무색하다. 

실제 정 실장 방미 당시 트럼프 대통령과 미 정부 고위급 각료들이 그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 김 위원장의 메시지를 들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정 실장의 브리핑을 듣자마자 북미정상회담에 응한다는 역사적 결정을 내렸다.

러시아에서 돌아오자마자 지난달 17~18일에는 한미일 안보실장간 만남을 위해 다시 미국 샌프란시스코도 방문했다. 여기서는 한반도 평화 구축의 핵심인 완전한 비핵화에 대한 3개국 공조 의지를 재확인했다. 그가 한반도 비핵화를 위해 주변국과의 공조를 중시하는 '문재인 프로세스'의 선봉에 서 있다는 점이 나타나는 부분이다.

정 실장은 이달만 해도 두 번 연달아 미국행 비행기에 탔다. 남북정상회담이 코앞으로 다가오면서 대북 외교의 구체적인 노선을 동맹국인 미국과 긴밀히 논의하기 위해서다. 문 대통령의 의중을 전달할 뿐 아니라 얼어붙은 북미 관계를 풀어 대화를 이끌어내는 사랑의 천사 '큐피드' 같은 역할이다.

그는 지난 11일에는 존 볼턴 미국 백악관 신임 국가안보보좌관을 만나기 위해 1박3일 일정으로 미국에 다녀왔다. 청와대는 "남북 및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서로 의견 교환 및 조율을 위한 만남"이라고 설명했다.

정 실장은 남북정상회담을 이틀 남긴 지난 25일에도 미국에 체류 중이었다. 청와대는 이날 새벽, 미국 현지시간 24일 오후 3시에 정 실장이 볼턴 보좌관을 다시 만났다고 밝혔다. 문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이 27일 남북정상회담 직후 전화 통화를 갖고 남북 정상 간 대화 결과를 공유하기로 했다는 것을 정 실장이 미국 측과 협의했다는 설명이다. 내달 말에서 6월 초로 예상되는 북미정상회담 이전에 한미 정상의 만남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 24일 떠난 정 실장은 26일 남북정상회담 전 귀국한다. 이 같은 잦은 해외 출장이 칠순이 넘은 정 실장에게 지나친 강행군이 아니냐고 걱정하는 목소리가 청와대에서 나올 정도다. 시차 적응도 아랑곳 없는 거침없는 행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