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인들을 잔뜩 초대한 집들이 날. 음식상을 차리고 냉장고 문을 열고 외친다. "오늘은 특별히 '통일 폭탄주'로 마셔볼까?" 냉장고에 가득한 대동강 맥주와 평양 소주가 눈에 들어온다. 평소에 먹던 소주와 달리 다음날 숙취도 덜하다. 평양 소주는 알코올에 물을 타는 '희석주'가 아니라 발효와 증류를 반복하는 고농도 '증류주'다.

상상이지만 기대해볼 수 있는 ‘미래’이자 경험했던 '과거'이기도 하다. 불과 10여년 전만 해도 서울에서 대동강 맥주, 평양 소주를 사는 일이 가능했다. 인터넷으로 대동강 맥주를 주문하면 3~4일 만에 받을 수 있었다. 당시 통일부는 민간 기업이 사전 승인을 받기만 하면 북한의 제품을 남한에 판매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관세청도 별도의 남북교역 통관 시스템을 구축해 남북교역을 뒷받침했다.

관세청에 따르면 북한의 맥주 수입이 가능해 진 2004년부터 2011년까지 8년간 국내 유입된 북한 맥주는 210톤에 달한다. 대동강 맥주 한 병이 640ml 인 점을 감안하면 약 남측에서 32만9000여병을 마셨다. 금액으로 환산하면 14만9000달러(한화 약 1억5995만원) 규모다.

이 시기 소주로 대표되는 증류주 수입은 565톤(172만1000달러)로 맥주보다 더 많았다. 평양 소주 외에도 창광술, 혜산술, 양덕술 등 지역별 소주 종류가 많았다.

이미지 크게보기

가장 인기가 좋은 건 사과, 배, 산삼 등으로 만든 발효주였다. '6.15 남북정상회담 건배주'로도 유명한 들쭉술은 유명세를 타기도 했다. 북한의 자강도 강계 포도주, 장뇌산삼술, 백두산 더덕들쭉술, 개성인삼주, 송이버섯술 등 다양한 지역명물을 활용한 특산술이 많이 팔렸다. 2011년까지 국내 유입된 북한 발효주는 약 694톤(95만2000달러)에 달했다.

또 동네 가게에서 산 일회용 라이터를 우연치 않게 살펴보면 'D.P.R.KOREA'라는 문구를 종종 볼 수도 있었다. 북한의 공식 명칭인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약자다. 2010년까지 남한에 반입된 북한제조 라이터 규모도 7920톤이나 됐다. 개당 40g씩 계산하면 1980만개의 라이터가 수입된 셈이다.

뿐만 아니라 표고버섯이나 고사리, 산삼과 같은 식품부터 도자기, 공예제품 등 다양한 제품들이 군사분계선을 넘어 남측으로 왔다.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모피나 귀금속과 같은 '사치품' 들도 북으로부터 들여왔다. 모피 반입은 2007년부터 2009년까지 3년간만 이뤄졌지만 모두 413건, 12톤어치가 수입됐다. 일례로 함경북도 경원군지역은 검은 수달 털가죽으로 유명하다. 기양모피가공공장, 장풍모피공장, 평양모피수출품가공공장 등을 운영해왔다. 주로 최고급 검은 수달, 흑담비, 토끼 모피를 수출용으로 제작·판매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민간 무역기업의 성장도 있었다. 2000년대를 지나며 북한 상품 인터넷 백화점을 표방한 '북남교역'은 2003년 남북 공동으로 상품포장, 판매, 사후관리 등을 함께 하는 온라인 쇼핑몰 'NK몰'을 선보이기도 했다. 인터넷으로 필요한 물품을 북쪽에 주문하면 선박 편으로 물품을 받는 시스템을 갖췄다. 물품 대금은 북측이 개설한 중국계좌에 입금했다.

이미지 크게보기

이 회사는 당시 북한의 ‘조선민족경제협력련합회’와 ‘개선무역총회사’,‘광명성총회사’,‘삼천리무역총회사’ 등에서 제품을 직접 공수해왔다. '100% 북한 제품'을 강조했고, 남측 시장에서도 통했다. 교류가 활발하던 시절 최대 연매출 50억원을 찍기도 했다. 이밖에도 북한 특산물을 판매하는 '남북교역주식회사'나 '아바이', '북한마을', '고려샵' 등도 북한의 한약재, 건강상품, 생활용품 등도 줄줄이 등장하며 유명세를 탔다.

북한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16년 전 남한에서 들여온 '커피'의 맛을 잊지 못하고 입맛을 다시는 사람들이 있을 법 하다. 2002년, 북한은 커피를 78톤이나 사갔다. 과자와 초컬릿류는 2013년까지 수입해갔는데 그 규모가 1700톤에 달한다. 한국산 담배는 북한에 4327톤이 넘어갔다. 바로 피울 수 있는 담배부터 직접 말아피우는 궐련 및 잎담배까지 포함한 수치다. 남북정상회담을 앞두고 민간 교역의 물꼬가 튼다면 이제는 북한 포털과 커뮤니티를 통한 남북한 공동 온라인 마켓 등의 가능성도 염두에볼 수 있다. 공존의 한반도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지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