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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은둔의 지도자였다. 2011년 12월 부친 김정일 전 국방위원장의 사망 이후 최고지도자에 오른 뒤 6년 넘게 정상 외교 무대에 나서지 않았다. 중국 공산당 대표단 등 외교 사절단과 접견에서도 제대로 된 대화를 한 적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던 그가 최근 우리 대북특별 사절단과 만나고 우리 예술단 공연에 나타나 뒷줄에 서서 기념촬영을 하는 등 '파격' 행보를 보였다. 과연 우린 김 위원장을 제대로 알고 있었던 걸까. 20여일 후 정상회담에서 우린 그를 어떻게 대해야 할까.

◇선대와 다른 김정은 = 김 위원장은 지도자로서 선대인 김일성·김정일과 여러모로 차별화된다. 우선 그는 20대의 젊은 나이에 권력을 잡았다. 김정일이 33세에 후계자로 확정된 후 무려 20년이 지난 53세가 돼서야 김일성 사망으로 완전히 권력을 승계받은 것과 비교하면 지도자 수업 기간이 짧았다.

김 위원장은 장남도 아니다. 김정일은 김일성의 적장자임을 명분으로 내세워 권력을 받았다. 반면 김 위원장은 김정일의 셋째 부인이자 천대받는 북송 재일교포 출신인 고용희의 차남이었다. 김 위원장은 2000년대 후반에야 김정일의 후계자로 대내외에 거론됐고 2010년 9월28일 노동당 대표회의에서 후계자로 공식 지명된 이후 성인시절 사진이 공개됐다.

2000년대까지 본명이 '김정운'으로 잘못 알려졌고 생년월일도 2012년에 이르러서야 확인됐다. 북한 매체에선 생모 고용희의 이름이 등장한 적이 한번도 없다. 2013년 고모부 장성택 숙청과 백두혈통 적장자인 김정남 암살에 김 위원장의 '정통성 컴플렉스'가 작용했다는 분석도 있다. 많은 이들이 김정은 체제의 안정적 유지 가능성을 회의적으로 봤다.

그러나 김 위원장은 현재 아버지 김정일보다 더 강한 권력 체제를 만들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김 위원장은 집권 초기부터 대외적으로 핵무력 완성을, 대내적으로는 인민 경제번영을 추구하는 '핵-경제 병진노선'을 채택해 추구해왔다. 김 위원장은 선대와 달리 자신을 신격화하는 데 몰두하기보다 일종의 시장경제 체제인 장마당을 활성화해 인민의 숨통을 트여줬다. 휴대전화가 500만대 이상 보급돼 외부정보에 노출된 현재의 북한 주민들은 과거 부모세대와 다르단 현실을 인정한 것이다.

김동엽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김정은의 국가 통치는 '핵'과 '인민'이라는 두 가지 코드로 읽을 수 있다"며 "안보를 해결하면서 경제를 얘기하는 것인데, 핵심은 인민의 변화를 수용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500만대의 핸드폰, 500여개의 장마당을 통해 돌아가는 북한은 더 이상 과거식의 통제나 압박이 통하지 않는다"며 "김정은은 과거처럼 소수의 백두혈통, 빨치산, 테크노크라트가 아니라 인민을 관리함으로써 정권유지가 가능하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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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권 7년차 김정은 = 김 위원장이 올해 신년사 이후 보이는 '파격' 행보도 이러한 연장선상에 있다. 김 위원장은 지난해 '핵무력 완성' 선언 이후 관심의 방향을 경제 건설로 완전히 돌린 것으로 분석된다. 북핵의 실제적 완성 여부와 별개로 김 위원장은 북핵 능력이 내부적으로 자신의 안정적 권력기반을 확보하고 나아가 대미협상이 가능한 수준에 이르렀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실제 핵·미사일 완성을 공표한 김 위원장은 평창동계올림픽을 계기로 전면적인 남북관계 개선에 나서고, 남북정상회담에 이어 최초의 북미정상회담 카드까지 내밀며 대외무대로 적극 나오고 있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 교수는 "할아버지 땐 전후 냉전시대에 비동맹외교에 몰두했고 김정일은 과도체제로서 선군정치를 내세워 국방위원회를 키웠다"며 "김정은은 지난 6년간 국내정치를 장악했단 자신감을 통해 집권 7년차에 대외적으로 정상국가의 지도자로서 인정받으려 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남북관계를 택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어 "단번에 북미관계를 택하고 싶겠지만 북미간 불신이 크기 때문에 '통남통미'라는 전략목표를 통해 하나하나 이행하고 있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렇다면 김 위원장은 정말 비핵화 의지가 있는 걸까. 외견상으로는 중국까지 동참한 국제사회의 전방위적 대북제재 속에서 국가 번영을 택하려면 비핵화를 택할 수밖에 없다는 판단에 이른 것으로 보인다. 이는 겉으로 인민경제를 위한 것이지만 김 위원장 자신의 집권을 위한 것이기도 하다. 북한은 핵개발이 미국의 위협에 맞선 자위권적 조치라고 일관되게 주장해왔다. 실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의 협상에 나서봐야 알겠지만 체제보장과 경제지원 등이 확보된다면 비핵화는 김 위원장에게 손해보는 선택지가 아니란 분석도 나온다.

조한범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김정은은 대북제재로 국가경제가 한계에 부딪히고 사회통제가 어려운 취약한 구조 속에 있다"며 "북한이 비핵화 조치를 취한다 해도 핵개발 기술은 남기 때문에 철저한 비핵화는 어렵다. 핵을 고집하는 것보다 팔아먹는 것이 유리한 상황에 온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김 위원장의 정상외교 데뷔를 북한 체제개방의 신호로 해석하는 등 지나치게 낙관하면 안 된다는 시각도 있다. 김 위원장은 최근 평양 동평양극장에 여자아이돌 레드벨벳의 '빨간맛'이 울려 퍼지도록 하고 백지영의 노래를 특별 언급했다. 또 우리 예술단과 일일이 악수하고 농담을 주고받는 이례적인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동시에 북한은 우리 취재진을 평양에 초대하고도 해당 현장 접근은 차단하는 이중성을 드러냈다. 조선중앙TV에는 우리 예술단 공연을 무음처리해 내보냈다. 김동엽 교수는 "최고지도자의 표정과 행동 모든 것을 남측 기자들이 직접적으로 취재하지 못하게 한 것"이라며 "김정은은 지금 정상국가화를 지향하는 게 맞지만 그 자체가 목표라기보다 이를 통한 정권 유지, 장기집권이 목표"라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