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산법률주의 도입, 재고가 필요한 이유

[the300][정재룡의 입법이야기]국회에 자율적 예산심의권 없어..'공염불' 우려

현재 우리나라에서 예산서는 예산 총칙 이외에 표 형식으로 비목과 금액만 적시하고 있다. 예산법률주의는 이러한 예산서를 표가 아닌 조문 형식의 법률로 만드는 것이다. 지난 3월 26일 대통령이 발의한 개헌안은 이러한 예산법률주의의 도입을 포함하고 있다. 이제 국회는 예산법률주의의 도입 여부에 대한 논의가 필요한 상황이다.

예산서를 법률로 만들면 예산집행에서 법률준수의무의 구속을 받게 된다. 또한 현재 국회는 예산을 확정하면서 예산의 집행방법 등에 관한 사항을 부대의견으로 채택하고 있는데, 예산법률주의가 도입되면 그것을 법률에 명시하여 준수하도록 할 수 있다. 예산서가 법률이 되면 국회의 결산심의는 법률 위반 여부를 점검하는 것이 되어 지금보다 엄격해질 것이다.

예산은 길게는 1년 수개월 후까지 미리 예측해서 수립하는 것이기 때문에 집행과정에서 상황 변화나 예측 부족 등에 따른 신축성이 불가피하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예산법률주의는 그러한 신축성을 허용하지 않는 것이다. 따라서 예산법률주의를 도입할 경우 재정운용에 대한 제약을 회피하기 위한 목적으로 편법적인 예산 외 재정운용이 증가할 것이라는 우려가 있다.

주요국을 보면 우리와 일본을 제외하고 거의 모든 나라는 예산법률주의를 채택하고 있다. 아마 예산법률주의의 도입에는 우리도 주요국과 같은 예산제도를 운영하는 게 좋겠다는 사고가 반영되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어떤 제도도 장·단점이 있다. 우리의 정부 주도의 국가운영, 재정운용 환경 등에 대한 고려 없이 무조건 외국의 제도가 좋은 것은 아니다.

예산법률주의는 사실 그것 자체에 별도로 큰 의미가 부여될 수 있는 제도는 아니라고 봐야 한다. 오히려 그것은 국회가 자율적인 예산심의권을 행사하면서 예결위원회와 상임위원회 간 권한 배분, 대통령 거부권 부여 등을 위하여 부수적으로 필요한 제도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예산법률주의는 국회의 자율적인 예산심의권을 전제로 도입하는 게 바람직하다.

그러나 현행 헌법과 대통령 개헌안 모두 국회는 예산심의에서 감액은 가능하지만 증액에는 아무런 권한이 없다. 국회가 정부 제출 예산안의 총액보다 증액하는 것뿐만 아니라 그 범위에서 아무리 사소한 금액이라도 비목별 조정을 하기 위해서는 정부의 동의가 필요하다. 설령 국회가 자율적인 예산심의권을 갖게 되더라도 반드시 예산법률주의를 도입해야 하는 것은 아닌데, 대통령 개헌안이 그렇지 않은 상황에서 정부의 예산집행에 제약을 자초하는 예산법률주의를 포함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의문이 든다.

대통령 개헌안의 제안이유 및 주요내용, 언론 보도 등에 따르면 예산법률주의가 도입되면 국회의 예산심의권 또는 재정통제권이 강화되는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대통령 개헌안의 예산법률주의는 예산서를 법률로 바꾸는 것에 불과하기 때문에 국회의 예산심의권을 강화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운영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국회의 결산심의권 강화를 기대할 수는 있다.

그런데, 대통령 개헌안은 정부에서 예산안을 편성하여 제출하면 국회는 예산안을 심의하여 예산법률로 확정하도록 하고 있다. 이는 정부는 예산안만 편성하고, 예산법률안의 입안(발의)과 확정 권한은 모두 국회가 갖도록 하는 것이어서 국회와 정부 간 견제와 균형의 원리에 부합하지 않고 갈등을 야기할 수 있다. 물론 세부적인 사항은 법률로 정하도록 위임하고 있지만 헌법에서 국회에 준 권한을 법률로 제한할 수는 없다.

대통령 개헌안은 국회에서 수정할 수는 없고 찬·반 표결만 가능하다. 만약 국회가 이와 같은 대통령 개헌안의 문제점을 보완하기 위하여 정부에서 예산법률안을 입안하여 제출하도록 따로 개헌안을 마련한다면 그 경우는 국회가 심의과정에서 예산법률안의 조문을 자율적으로 수정할 수 있도록 할 것인지가 문제가 된다. 현재 국회는 감액 이외에 예산안에 대한 일체 수정권이 없다.

유력한 방안은 현재처럼 수정권을 주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할 경우 이 역시 견제와 균형의 원리에 부합하지 않을 뿐 아니라 예산법률주의 도입에 따른 국회의 재정통제권 강화는 공염불이 되고 만다. 그렇다고 국회에 수정권을 주는 것도 어렵다. 같은 예산법률안 중 증액 관련 사항에는 수정권이 없는데, 조문에만 수정권을 줄 경우 견제와 균형의 원리에 따라 그 수정에 대하여는 대통령 거부권을 부여하는 것이 필요하지만, 그것은 하나의 법률안을 사실상 분리하여 일부는 국회가 확정하고 다른 일부는 대통령 거부권에 따르도록 하는 것이어서 상상하기 어렵다.

이상의 문제점을 고려할 때 결국 국회가 자율적인 예산심의권을 갖지 않는 상황에서 예산법률주의를 도입하는 것은 재고가 필요하다고 본다.
정재룡 국회 수석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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