껍데기 예산법률주의

[the300][정재룡의 입법이야기]

대통령 권한의 분산이 거의 없는 대통령 개헌안에 실망이 크다. 참여연대마저도 대통령과 행정부에 집중된 권한을 분산시켜야 한다는 요구에 한참 미치지 못해 실망스럽다고 비판했다. 그렇지만 참여연대는 대통령 개헌안에서 예산법률주의 도입을 긍정적으로 봤다. 언론은 그것을 국회의 예산심의권 강화라고 보도하기도 했다. 국민헌법자문특위의 곽상진 교수는 예산법률주의 도입을 대통령 권한 분산이라고 주장했다. 그동안 정부는 예산을 상당히 융통성 있게 운용해 왔는데 예산서가 법률이 되면 정부의 예산 운용의 자율성이 상당히 제한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게 국회를 존중한 결과라고 했다.

그러나 필자는 현행 헌법처럼 정부의 증액동의권이 유지되는 예산법률주의는 껍데기라고 본다. 그건 현행 예산서를 법률로 바꾸는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런 껍데기 예산법률주의를 도입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알 수가 없다. 그건 대통령 권한의 분산이 전혀 아니다. 국회의 예산심의권을 강화하지도 않는다. 굳이 말하자면 국회의 결산심의권을 강화하기는 한다. 

또 현재 국회는 예산을 확정할 때 부대의견을 채택하고 있는데 예산법률주의는 정부가 그것을 준수하도록 하는 데 유효할 것이다. 곽교수의 말처럼 예산서가 법률이 되면 정부는 예산집행에서 법률준수의무의 구속을 받을 것이고 그래서 결산심의가 보다 엄격해질 것이다. 그러나 정부는 예산법률안을 작성하면서 필요한 경우 각 사업별로 신축적 집행을 허용하는 규정을 둘 것이기 때문에 반드시 정부에 불리한 것만 있는 것도 아니다.

제도를 변경할 때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 지난 2월 발표한 여당의 개헌안이나 3월 7일 보도된 대통령 개헌안(초안)에는 모두 국회가 예산안의 총액 범위에서 사업별 증액 조정이나 비목 신설을 할 수 있도록 했다. 그런데 지난 주 발표한 대통령 개헌안에는 그것이 빠져버린 것이다. 문제는 그런 껍데기에 불과한 예산법률주의를 도입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알 수가 없다는 것이다. 특히 그게 국회와 정부에 무슨 의미가 있는지 불분명하다. 정부는 예산 운용에서 신축성이 필요하고, 국회도 기본적으로 그것을 인정하기 때문에 누구도 껍데기 예산법률주의를 원하지 않는다. 설령 그것에 어떤 의미가 있다 하더라도 그건 지엽적인 것이다. 

그런데도 대통령 개헌안에 왜 그런 예산법률주의가 포함된 것인지 그 이유가 의문스럽다. 만약 누군가 예산 관련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예산법률주의를 껍데기로 변질시켰다면 문제가 심각하다. 그는 아무런 의미 없는 것을 내세워 그것이 마치 국회의 예산심의권을 강화하는 것이라고 호도했을 것이다. 아마 정부 내 기득권 세력이 개입한 것 같은데, 그건 재조산하의 정부 철학에 반하는 것이고, 청산해야 할 적폐다.

현재처럼 정부가 예산권한을 주도적으로 행사하는 것은 대통령제의 견제와 균형의 원리에 전혀 부합하지 않는다. 그것은 사실 제왕적 대통령제의 가장 큰 문제라고 볼 수 있고, 세계적으로도 유례를 찾을 수 없다. 그렇다면 이번 개헌에서 그것은 반드시 시정되어야 하는 것이다. 사실 예산법률주의를 반드시 도입해야 할 이유는 없다. 반면, 정부에 집중된 예산권한은 반드시 분산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도 그렇게 하지 않는 건 잘못된 제도를 계속 유지하겠다는 것이기에 납득할 수 없다. 

국회는 현재 증액에 아무런 권한이 없지만 예산 심의 때마다 모든 증액 조정을 쪽지예산이라고 보는 시각 때문에 온갖 비난을 뒤집어쓴다. 그러나 현재로서는 국회가 예산조정에 관한 권한이 없기 때문에 특별히 개선할 수 있는 것도 없다. 그건 껍데기 예산법률주의를 도입해도 마찬가지다. 국회 불신이 아무리 크더라도 국회에 권한을 주고 책임을 물어야 한다. 오히려 국회가 권한을 갖게 되면 상임위와 예결위 간 권한 배분, 투명성 강화 등 개선책을 추진할 수 있게 된다. 그것이 국회에 자율적 예산조정권을 주어야 하는 이유다. [외부기고/칼럼]
정재룡 국회 수석전문위원(교육문화체육관광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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