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존·번영 손맞잡은 남북정상회담, 세번째 화두는 북핵

[the300][런치리포트-다시보는 남북 정상회담]①

'김일성과 아스피린'
2000년 6월14일 평양. 김대중 대통령과 마주앉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김일성 주석의 사망 경위를 말했다. 김일성은 사망(1994년) 몇 해 전 심장 쇼크를 일으켰다. 그때 소련에서 가져온 페이스메이커(인공심박자극기)를 몸에 달았다. 이 기기를 쓰면 혈액응고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혈액을 묽게 하는 약이 아스피린이다.

김정일은 "서방세계에선 아스피린을 복용하고, 중국도 개혁개방 이후 아스피린을 복용한다는데 당시 소련 의료진은 아스피린을 권고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제 페이스메이커가 소련제보다 낫다는 점도 말했다. 그러면서 "(김대중) 대통령께서도 말씀하셨지만 더 넓은 세계를 내다봐야 한다는 데 전적으로 동의한다"고 했다. 

임동원 전 통일부장관이 쓴 '피스메이커' 한 대목이다. 임 전 장관은 "놀랍게도 '폐쇄사회의 폐해'를 시인한 것"이라고 소개했다. 내밀한 이야기를 한 김정일의 의도가 무엇이든 정상회담을 통해서야 듣게 된 북한 내부의 고민이다.

두차례 남북정상회담은 이렇게 남북관계 개선은 물론 서로를 이해하는 데 결정적 계기가 되곤 했다. 후속조치가 제대로 이행되지 않으면서 적잖은 숙제도 남겼다.

그래픽=이승현 디자이너
2000년 회담은 글자그대로 역사적이었다. 남북에 각자 정부가 수립된 후 첫 정상회담이었다. 남북 정상이, 그것도 평양에서 악수하며 회담하는 장면 자체가 패러다임의 획기적 전환을 상징했다. 아스피린 일화에서 보듯 남북이 서로의 속내를 들어봤다는 의미도 있다. 6·15 공동선언은 남북의 통일방안에 공통점을 찾고, 통일을 지향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이산가족 교환방문, 교류확대도 약속했다.

북한은 남쪽을 포격할 수 있던 군사기지 개성을 공단 용지로 내놨다. 해군항이던 장전항도 금강산 관광용으로 개방했다. 우리측은 경의선-동해선 철도와 도로 등을 연결하기로 했다. 노무현정부로 넘어가긴 했지만 2003년 개성공단 1단계 개발에 착공했고 2004년 첫 제품이 생산됐다. 

2007년 2차 정상회담은 '공존'을 넘어 함께 '번영'하자는 쪽으로 한걸음 전진했다. 노무현 대통령 내외가 노란 군사분계선을 밟고 육로로 평양을 향하는 장면이 이를 보여줬다. 문재인 대통령은 당시 비서실장으로, 회담준비 책임자였다. 남북 합의내용은 1차 회담 성과를 확대, 구체화한 게 많다. 서해 NLL은 그대로 두되 그주변에 같은 면적으로 공동어로 구역을 만들기로 했다. 남북관계를 안보에서 경제로 바꾼다는 대담한 구상이 실현되는 듯했다.

김대중정부는 임기중 정치·경제·군사 등 60차례 남북대화를 열면서 햇볕정책을 고수했다. 노무현정부에서도 남북교류는 늘어났다. 그러나 두차례 정상회담은 미완의 성과로 남았다. 1차 정상회담의 경우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합의는 우리로선 북한 안보위협을 현저히 낮추는 효과를 가졌다. 대신 북한 영역에 우리 국민이 들어가야 한다는 리스크를 안았는데, 이게 끝내 불씨가 됐다. 2008년 금강산 관광을 갔던 박왕자씨 피살사건 후 금강산 관광이 막혔다. 

2015년엔 북한의 연이은 도발 끝에 개성공단이 폐쇄됐다. 각각 북한의 책임이 크지만, 이명박정부 박근혜정부에서 남북관계가 악화된 측면도 있다. 서해 NLL은 대선판을 뒤흔드는 안보 쟁점이 됐다. 김대중정부 시절에 대한 대북송금 특검도 국내에 정치적 파장을 안겼다.

문 대통령이 추진하는 3차 정상회담이 성사된다면 5년임기 중 3년차에 성사된 2000년 1차회담과 비슷하다. 임기내내 정책적 노력이 이어진다면 성과도 볼 전망이다. 2007년 2차 회담은 정권말, 12월 대선이 임박한 10월에야 성사됐고 그나마 정권이 바뀌어 후속조치 이행이 막혔다.

반면 회담에 임하는 정부입장은 '우선 만나고, 만나야 이야기한다'는 김대중정부보다는 '북핵 해결과 관계 진전에 도움이 돼야 만난다'는 노무현정부와 비슷하다. 무엇보다 북한이 사실상 핵무기를 보유한 것은 1·2차 회담과 질적으로 다른 조건을 형성했다. 만남을 위한 만남은 안 된다는 게 문 대통령 생각이다. 한반도 주변정세도 변수다. 남북 대화는 미국 일본 등 전통적 우방의 신뢰를 흔들지 않아야 하는 고난도의 외교방정식이다.
문재인 대통령과 영부인 김정숙 여사,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의 동생인 김여정 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 북한 대표단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 9일 오후 강원도 평창군 대관령면 올림픽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8 평창동계올림픽'에서 남북 단일팀이 한반도기를 들고 입장하자 자리에서 일어나 손을 흔들고 있다./사진=김창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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