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리포트]공운법, 코드 안맞는 기관장 압박에 악용된 '공안법'

[the300][공공기관 지정의 정치학]이명박 정부에 미운털 박혔던 이정환 거래소이사장, 임기 못채우고 사퇴

해당 기사는 2018-01-31 런치리포트에 포함된 기사입니다 런치리포트 매거진 보기
2007년 제정된 '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공운법)은 자율과 책임을 함께 부여해 조직 효율을 올리자는 취지에서 도입됐다. 법 취지는 좋았으나 한편으로는 코드가 맞지 않는 공공기관이나 괘씸죄에 걸린 기관장을 압박하는 수단으로 악용되기도 했다.

이달 초 주택금융공사 사장에 취임한 이정환 전 한국거래소 이사장이 대표적인 사례다. 이 전 이사장은 2008년 3월에 취임해 이듬해 10월까지 재임하다 3년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물러났다.

이 전 이사장과 관련해서는 "임기의 절반은 근무했지만 제대로 근무한 기간은 1년이 채 안됐을 것"이라는 얘기가 나온다. 취임 직후부터 정부와 껄끄러운 관계가 형성됐고, 2009년 자진 사퇴할 때까지 끊임없이 자리가 흔들렸기 때문이다.

구체적인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으나 이 전 이사장과 거래소 이사장 자리를 두고 경합했던 인사가 탈락한 것을 원인으로 보는 시각이 많았다. 경쟁후보는 이명박 전 대통령과 같은 고대 법대, 영남 출신이었고 대선 때는 중책을 맡았던 인사다.

그러나 이 인사는 거래소 이사장 후보 최종 면접에 앞서 3배수를 뽑는 후보군에도 들지 못했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당시 거래소 이사장 선출과정에서 특정인사 내정설이 돌 정도였다"며 "그러나 결과는 예정과 달리 흘러갔고 이후 거래소가 외부 입김에 크게 휘둘렸다"고 말했다.

이후 거래소의 비리를 캔다며 검찰 압수수색이 진행됐고 이어 감사원 감사, 금융감독원 검사 등이 진행됐다. 거래소 임직원들도 각종 조사에 시달리면서 조직의 피로감이 극에 달했다.

외풍은 이후 정부가 공운법에 따라 2009년 거래소를 공공기관으로 지정하면서 더욱 거세졌다. 거래소는 증권사, 선물회사 등 100% 민간출자 기업임에도 불구하고 기획재정부의 결정이 이뤄졌고 이후 임금동결, 조직감축, 예산·비용축소 등이 이뤄졌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거래소가 공공기관인 곳은 한국과 슬로바키아뿐이었다.

내부의 눈총도 이 전 이사장을 괴롭힌 요인이었다. 거래소 일부 임직원들은 "(이 전 이사장이) 나가지 않고 버티는 바람에 조직 전체에 누가 된다"며 화살을 돌렸다. 재직기간 내내 그를 괴롭힌 말이다. 결국 압박을 이기지 못한 이 전 이사장은 "공공기관 지정을 해제하면 사퇴하겠다”는 의사를 밝혔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결국 2009년 10월 사퇴의사를 표명하게 된다.

이 전 이사장은 당시 직원들에게 이메일을 보내 "직간접적 사퇴 압력을 많이 받았다”며 “검찰 압수수색 수사와 감사기관의 압박도 받았고, 당국의 집요한 협박과 주변 압박도 받았다"고 털어놨다. 또 "증권 관련 단체와 사외이사, 직장 내부의 몇몇 인사들까지 회유했고, 부하로 데리고 함께 근무하면서 매일 접촉하는 사람들을 흔들었다”며 “개인을 쫓아내기 위해 제도와 원칙을 바꿨다”고 심경을 고백했다.

이 전 이사장이 떠났지만 거래소는 후폭풍을 계속 받았다. 공공기관에 지정된 지 4년 뒤 글로벌 경쟁력이 세계 7위에서 15위로 떨어졌다는 것이 노조의 평가다. 회사를 떠나는 젊은 직원들도 크게 늘었다.

거래소는 2015년 초 공공기관 지정에서 해제됐으나 아직 금융당국의 관리를 받는 중이다. 금융위원회와 맺은 경영협약에 따라 매년 기관평가를 받고 있으며 이 때문에 급여는 물론 복지도 크게 뒷걸음질 쳤다.

업계 관계자는 "좋은 처우 때문에 거래소가 신의 직장이라고 불리던 시절은 이미 지나갔다"며 "신입연봉은 일반 증권사보다 20% 가량 낮은 수준으로 알고 있는데, 인상률도 낮은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공운법의 경우 기관에 미치는 영향이 절대적인데, 거래소의 경우 취지와 달리 악용되며 엄청난 후폭풍을 몰고 온 사례라고 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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