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의 영혼을 살리기 위한 입법적 대책

[the300][정재룡의 입법이야기]

 지난 정부에서는 권력사유화도 모자라 미증유의 국정농단까지 일어났다. 그 배경에는 위법·부당한 권력의 지시를 맹목적으로 따른 공무원들이 있었다. 그들은 권력에 충성을 바치는 대가로 영달을 얻고 영혼을 팽개쳤다. 그러나 헌법에 따르면 공무원은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이고 국민에 대하여 책임을 진다. 문재인 대통령도 지난해 8월 22일 공직자는 정권에 충성하는 사람이 아니며 영혼 없는 공직자가 돼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현재 정부는 공무원에게 '영혼'을 보장하려는 문 대통령의 철학을 반영하는 국가공무원법 개정안을 준비 중이고 의원이 발의한 유사한 취지의 같은 법 개정안 3건이 계류 중이다. 그 요지는 공무원 임용에서의 차별금지와 위법 또는 부당한 경우에는 상관의 명령을 거부할 수 있도록 복종의무를 완화하는 것이다. 

그런데 차별금지는 헌법규정의 반복에 불과하고, 복종의무 완화도 그대로 통과되기 쉽지 않아서 대안이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 특히 지난 정부에서 공무원이 정당정치적으로 편향된 업무 수행을 강요받은 것을 고려할 때 이에 대한 대책이 필요하다. 개정안들은 모두 그 문제에 대한 아무런 대책을 포함하고 있지 않다.

출신지 차별 악순환 끊고
공직인사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바로 출신지역 차별인사이고, 이는 적폐 중의 적폐라고 할 수 있다. 특정지역출신을 인사차별하는 것은 그 지역 출신을 똑같은 국민으로 대우하지 않는 것이기 때문에 인종차별에 버금가는 것이다. 이는 독재국가도 아닌 민주국가에서 있을 수가 없고, 엽관제에서도 상상하기 어렵다. 인사에서 우대뿐만 아니라 노골적인 차별까지 가능한 상황에서 공직자들은 선택의 여지없이 정권에 줄서기를 강요받고 이로 인해 공직사회가 위법·부당한 명령에도 맹목적 복종으로 경도되게 된다. 

국가인권위원회법 등에 출신지역 차별을 금지하는 규정이 있지만 적극적 규율수단을 갖추고 있지 않아 실효성이 없고, 실제 정권에 따른 특정지역출신 차별은 헌법상 직업공무원제도 및 평등원칙에 위배된다. 따라서 경력직공무원 등에 대한 악의적 출신지역 차별인사를 처벌할 수 있도록 하여 정권에 따른 출신지역 차별의 악순환을 끊어내고 공무원이 헌법에 따라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로서 원칙과 소신을 갖고 일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입법조치가 필요하다. 

이러한 취지로 유성엽 의원은 지난해 9월27일 여·야 의원 120명과 함께 '출신지역 차별인사금지 특별법안'을 발의하였는데, 현재 법사위원회에 계류 중이다. 

포괄적 복종의무 규정 폐지
현행법상 복종의무는 일제 식민통치의 잔재이고 군사독재 정권, 권위주의 정권의 낡은 유산이라고 볼 수 있다. 그것은 정부에 대한 비판적인 목소리를 억압하는 수단으로 악용되어 왔다. 개정안들은 모두 복종의무를 완화하는 수준에 그치고 있는데, 이제는 그러한 구시대의 폐습을 청산할 때가 되었다. 따라서 더 이상 공무원은 시키는 대로 하는 존재가 아니라는 인식이 가능하도록 근본적이고 획기적인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영·미권뿐만 아니라 독일의 입법례를 보더라도 우리와 같은 포괄적인 복종의무와 그 위반에 대한 징계 규정을 두고 있지 않다. 우리도 독일의 입법례를 참고하여 포괄적인 복종의무 등에 관한 규정을 획기적으로 전환하고 이에 관한 징계 규정을 폐지할 필요가 있다. 필요한 경우 구체적 사안에 대한 복종의무와 징계 규정을 별도로 두면 될 것이다.

공무원, 정치·이념에 동원되지 않게
헌법 제7조 제2항은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성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보장된다고 규정하고 있는데, 이는 공무원이 정치적 목적에 이용되지 않도록 하려는 취지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그동안 이 규정은 공무원의 개인적인 정치참여를 제한하는 근거로 주로 이용되어 왔다. 현재 국가공무원법에 헌법의 취지를 일부 반영하는 규정을 두고 있으나 미약한 수준에 그치고 있다. 

반면 국가정보원법에는 △공무원을 정치적 목적으로 이용하지 못하도록 보다 구체적인 규정을 두고 있고, △관련 지시에 대해서 공무원이 이의를 제기하거나 거부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으며, △처벌 수준도 3년 이하의 징역인 국가공무원법과 달리 7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따라서 국가공무원법에도 이와 유사한 규정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 현재 국가정보원법에는 특정 정당이나 특정 정치인에 대한 지지 또는 반대 의견 유포 등을 정치활동에 관여하는 행위라는 범주로 설정하여 금지하고 있지만 이 범주는 지난 정부에서 있었던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작성·관리, 역사교과서 국정화 추진 등과 같이 특정 정당 편향적인 활동을 다 포괄하지 못한다. 따라서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성을 제대로 보장하기 위해서는 공무원이 그와 같이 특정 정당 편향적인 이념이나 정책 등에 동원되는 것도 금지하는 방안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개헌 않고도 대통령제 개선
민주헌법 국가에서 직업공무원은 집권세력의 헌법적 가치질서의 훼손을 저지하고 이익추구의 편향성을 비판하는 균형추의 기능과 책무를 갖고 있다. 그러한 측면에서 직업공무원 제도는 현대 민주국가에서 권력분립을 실현하는 하나의 수단으로 간주되고 있다. 공무원의 영혼을 살리기 위한 입법적 대책은 바로 직업공무원 제도가 제대로 작동하도록 하는 의미가 있는데, 같은 맥락에서 이것은 개헌을 하지 않고도 현재 대통령제의 폐해를 개선하는 하나의 유력한 방안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는 공무원을 선거의 전리품처럼 취급하는 폐습이 있는데 그것은 직업공무원제도에 반하는 것으로서 위헌적인 것이다. 공무원의 영혼을 살리기 위한 입법적 대책은 그런 잘못된 폐습을 깨뜨릴 것이다. 향후 직업공무원제도의 취지가 제대로 구현된다면 정권 획득을 둘러싼 정당간의 극단적 대립도 다소 완화될 것이다. 국정농단이 촉발한 시민혁명으로 탄생한 현 정부의 역사적 사명이 여기에 있다. 그것이 현 문재인 대통령의 철학을 구현하는 길이고 공무원이 헌법에 따라 원칙과 소신을 갖고 국민 전체에 대해 봉사할 수 있도록 하는 길이다. [외부기고/칼럼]
정재룡 수석전문위원/머니투데이 the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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