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터 소비량이 급증하고 있어 구조적으로 가계 통신비 부담이 늘 수 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보편요금제 도입이 필요하다” -과기정통부

“유례없는 가격 규제는 민간 사업자의 재산권을 부당하게 제한하고 자율적 요금경쟁을 막을 것이다.”-이동통신 업계

월 2만원대에 300분의 무료 음성통화와 1GB(기가바이트) 데이터를 제공하는 보편 요금제 도입을 앞두고 전운이 감돌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의 기본료 폐지 공약으로 시작된 통신비 인하 정책이 결국 보편요금제 출시로 귀결되면서 끝까지 밀어붙이려는 정부와 결사반대하는 통신업계간 갈등의 골이 깊어지고 있다. 정부는 시민단체와 산업계 등 각계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가계통신비 정책협의회를 통해 사회적 합의를 시도하고 있지만, 양측의 간극은 좁혀질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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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편요금제 도입방안, 왜 나왔나=문재인 정부의 인수위원회 격인 국정기획자문위원회는 지난해 6월 △선택약정할인율 25% 상향조정 △취약계층·어르신 통신요금 1만1000원 감경 △보편요금제 도입을 골자로 한 통신비 절감 대책을 발표했다. 문 대통령의 대선 공약인 ‘기본료 폐지’가 실현 불가능하자 이같은 대안을 내놨던 것. 하이라이트는 보편요금제다. 선택약정할인율과 취약계층 요금 감면조치가 기존 제도를 확대·적용하는 방안이라면 보편 요금제는 이통사들의 고유권한이던 요금설계권에 직접 개입하는 적극적인 신규정책이다.

이를 위해선 법 개정도 필수다. 이미 지난해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을 입법 예고했던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오는 6월 해당 법률 개정안을 국회 제출할 예정이다. 정부가 보편요금제를 강행하는 이유는 뭘까. 과기정통부 관계자는 “이동통신사들의 경쟁이 고가 요금제만 치중되고 저가요금제에선 상대적으로 혜택이 없고, 이로인해 이용자 차별이 심하고 소비자 선택권도 보장되지 않는다”며 “국민들의 데이터 소비량이 날로 늘고 있는 상황에서 이같은 요금제 구조를 개선하지 않으면 통신비 부담이 가중될 수 밖에 없다”고 취지를 설명했다.

정부보다 앞서 보편 요금제 관련 법률안을 대표 발의한 추혜선 정의당 의원은 “대부분 국민들의 데이터 사용량은 크게 늘어나고 있지만 현재의 요금체계는 이같은 실제 이용 패턴을 반영하지 못한다”며 “대한민국 국민 누구나 정보격차 없이 통신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보편요금제 도입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했다.

◇업계 “5G·R&D투자 절실한데…2조 매출 감소 직격탄”=이통 업계에서는 보편요금제가 정부가 사실상 가격 정책을 결정해 시장원칙을 정면 위배하는 제도라며 강력히 반발한다. 민간 기업의 영업 자율권을 심각하게 침해하는 위헌 소지까지 거론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통사들은 보편요금제가 도입될 경우 사업자 요금제 체계 전체에 막대한 영향을 미쳐 정부가 사실상 민간사업자의 요금상품 설계권을 박탈하게 될 것이라며 우려하고 있다. 공공요금 규제나 해외 사례 등을 살펴봐도 특정 요금을 강제하는 건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극단적인 규제란 주장이다. 특히 5G(5세대) 네트워크 상용화와 AI(인공지능), IoT(사물인터넷) 등 4차산업혁명 주도권 확보를 위한 투자가 절실한 상황에서 보편요금제를 도입할 경우 통신사들의 경영 악화를 초래한다는 지적이다. 투자 여력이 위축되면 궁극적으로 소비자 효용도 줄어들 수 밖에 없다고 하소연하고 있다. 

증권가에서는 보편요금제가 도입되면 이통 3사의 매출은 연간 2조2000억원이 감소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정부 역시 보편요금제 도입으로 시장 지배적 사업자인 SK텔레콤의 영업이익이 4632억원 감소할 것으로 관측했다. 2016년 기준 SK텔레콤의 영업이익은 1조5357억원이다. 약 30%의 이익이 공중 분해되는 셈이다.

◇통신비 협의회서 논의했지만…형식 위한 ‘요식 절차’ 지적도= 정부는 사회적 논의기구인 통신비정책협의회를 통해 보편요금제에 대한 사회적 합의 절차를 밟고 있지만 정부의 방침을 이미 굳힌 채 의견수렴 형식을 갖추기 위한 요식 절차 아니냐는 반발이 나온다. 실제 통신비정책협의회의 보편요금제 논의는 아직 진행 중이다. 26일에도 이 주제로 논의한다. 하지만 과기정통부는 24일 대통령 업무보고를 통해 6월 관련 법 개정안을 국회 제출하겠다고 공언했다. 26일 최종 회의에는 업계, 시민단체 등 각계의 입장을 정리하는 수순에서 마무리될 가능성이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