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심야 숨바꼭질의 대가

[the300]


내년도 예산안이 어렵사리 국회 합의에 다다른 4일 밤, 정확히는 5일 새벽이었다. 예산 업무를 담당하는 정부부처 관계자로부터 전화가 왔다. 차분한 성격의 관료인데 조금 흥분한 목소리로 “지금 의원회관으로 가는 길”이라고 했다. “시트(세부예산표) 마무리 작업을 안 하시고 웬 회관이냐” 묻자 “잠자고 있는 A의원을 깨우러 간다”고 했다.

사정은 이랬다. 예산안 논의를 잠정적으로 마무리지은 각 정당이 기획재정부와 개별적으로 만나 최종적으로 예산 증액을 논의하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야당 예산결산특별위원회(예결위) 간사인 A의원이 갑자기 예산안을 못 받겠다며 논의를 중단시켰다는거다. 문을 닫아 건 A의원을 만나러 여당 간사와 정부 관계자들이 몰리면서 A의원 사무실은 새벽부터 북적였다.

예결위의 다른 야당 간사 B의원도 사라졌다. 정부 관계자들이 그를 찾으러 동분서주했다. 심야 숨바꼭질의 대가는 며칠 후 확인됐다. A의원실은 ‘사상 최대 규모의 호남 예산 확보해 내다!’라는 제목의 보도자료를 냈다. 광주 1940억원, 전남 4983억원, 전북 4970억원의 예산을 증액시켰다는 내용이다. B의원실 역시 지역구 내 사업예산을 증액시킨 것으로 집계됐다.

예산심사 막판에 관행처럼 이뤄지는게 이런 간사 지역구 예산 증액이다. 지역구에서는 이들의 성과에 환호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현장에서 지켜보며 눈살을 찌푸릴 수밖에 없다. 증액을 하더라도 정상 범주 내에서 공정하게 해야 한다. 예산은 예결위 간사의 부수입이 아니기 때문이다. 정부와 ‘밀당’(밀고당기기)하고 ‘거래’하는 대상이 될 수 없다. 더구나 이들이 예산을 놓고 숨바꼭질하던 때는 국민들과 약속한 예산안 처리 시한을 이틀 이상 넘긴 시점이었다.

어김없이 나오는 여야 지도부 지역구 예산 증액 기사도 국민들의 마음을 불편하게 한다. 국회서 예산 드잡이질을 벌이는 이면에 지도부는 영향력을 활용해 제 밥그릇을 챙겼다는 거다. 새 정부의 적폐청산 기조에 국민의 70%가 응원을 보내는 상황이다. 국회의 이런 부끄러운 관행들은 국민들의 눈에 어떻게 비춰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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