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사위이야기]변호사 '밥그릇'인듯 법사위 '밥그릇'인듯

[the300]세무사법, '기울어진 운동장' 법사위서 발목…직역이기주의에 '상임위 이기주의'까지

세무사법 개정안 처리와 관련해 국회를 방문한 김현 대한변호사협회장을 비롯한 변협 임원들이 28일 서울 여의도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법안심사제2소위원회장 앞에서 김진태 소위원장에게 인사를 하고 있다. 변협은 "세무사법이 세무사의 직무로 정한 조세에 관한 신청, 상담, 자문 등은 변호사 제도의 본질상 당연히 변호사의 직무 범위에 속하는 법률사무의 일부분"이라며 "변호사에 대한 세무사 자격을 당연히 인정하는 규정을 폐기하려는 건 세무 분야에 관해 변호사 조력을 받을 국민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2017.11.28/뉴스1 <저작권자 © 뉴스1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지난달 28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회의실 앞에는 국회나 소관부처 관계자 외에 변호사들이 십여명이 진을 치고 있었습니다. 김현 대한변호사협회장을 비롯한 변협 관계자들입니다. 이들은 이날 법사위 법안심사2소위에 상정된 세무사법 개정안에 반대 입장을 전달하기 위해 법사위를 찾았습니다만, 흡사 법사위를 포위한 듯한 비장한 분위기였습니다.

법사위원들을 향한 무언의 시위였습니다. 변호사의 세무사 자격 자동취득 규정이 56년 만에 폐지될 위기 앞에서 이를 저지하기 위한 실력 행사에 나선 셈이었습니다. 

이에 반해 세무사 측은 별로 눈에 띄지 않았습니다. 대신 이들은 정세균 국회의장을 움직여 법사위에서 잠자고 있던 세무사법 개정안을 깨우는 물밑 압박을 구사해왔습니다. 정세균 의장은 법사위에 장기계류 중인 이 법안을 의장 직권상정으로 본회의에 올리겠다며 '충격요법'을 사용, 여야 원내대표 간 처리 합의 약속을 이끌어 내 사실상 세무사 손을 들어줬습니다. '소리없이 강한' 세무사 단체의 저력이라 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법사위가 변호사가 일방적으로 유리할 수밖에 없는 '기울어진 운동장'이란 점입니다. 법사위야말로 변호사들의 '홈그라운드'이니 말입니다.



◇'선수'가 '심판'보는 '사짜의 전쟁'


세무사법 개정안을 심사하기 위해 모인 면면을 한번 살펴보겠습니다. 법사위 법안심사2소위 소위원장은 김진태 자유한국당 의원입니다. 검사 출신으로 국회의원 당선 전까지 변호사 활동을 했습니다. 같은 당 주광덕 자유한국당 의원 역시 검사 출신으로 변호사 자격을 갖고 있습니다. 더불어민주당은 검사 출신인 금태섭·백혜련 의원과 판사 출신인 박범계 의원, 박주민 의원까지 모조리 변호사 출신입니다. 이용주 국민의당 의원 역시 검사 출신입니다. 

10명의 법안심사2소위 위원 중 무려 7명이 변호사 자격으로 법안 심사에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들이 현재 국회의원으로 일하고 있지 않으면 변호사로 사회 활동을 할 가능성이 매우 클 것입니다. 따라서 변호사들의 이해관계가 걸린 이 법은 이들의 이해관계와도 무관하다고 할 수 없습니다. 비유하자면 변호사팀과 세무사팀의 경기에 변호사팀의 후보 선수들이 심판을 보고 있는 격입니다.

이날 회의에서는 '팔은 안으로 굽는' 것 같은 '편파 진행'이 드러나기도 했습니다. 김현 대한변협 회장이 직접 회의에 참석해 이 법안을 통과시키지 말아달라며 법사위원들에게 호소한 뒤 이창규 세무사회 회장의 입장을 들을 차례였습니다. 김진태 소위원장은 그러나 "세무사회 회장은 굳이 안불러도 된다"며 세무사 업계의 주장은 들을 필요가 없다는 태도를 보였습니다. 위원장이 공정하게 진행해야 한다는 지적을 듣고서야 "알겠다"며 이창규 회장에게 발언권을 줬습니다. 

다른 법사위원들도 반대하는 이유는 조금씩 달랐지만 변호사의 세무사 자격 자동취득을 이대로 폐지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며 변호사 측 주장에 무게를 실었습니다. 

이들 뿐 아니라 이날 소위에 참석한 관계자들도 대부분 변호사 업계에 경도된 주장을 펼쳤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법무부를 대표해 의견 제시에 나선 이용구 법무실장도 변호사 자격을 지닌 법조인이며 법안 검토보고서를 작성하는 법사위 전문위원도 업무 특성 상 법조계 의견을 많이 접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날 뜻밖에 세무사법 개정안 통과를 가장 강력하게 주장한 것은 주광덕 의원이었습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검사 출신의 법조인임에도 그는 이 법이 통과되면 세무 관련 법률 대리 업무까지 못하게 될 것이라는 변호사 업계의 주장을 '직역이기주의'라고 작심비판했습니다. 전문직의 자격 제도에 대해 공정하고 투명한 프로세스를 갖춰야 한다고 강조하기도 했습니다. 또 변호사 업계 주장에 동조하는 일부 인사들과 격돌을 피하지 않으며 조목조목 논박에 나섰습니다.

역시 검사 출신인 금태섭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법사위 여당 간사의 균형 감각을 발휘하며 양쪽 의견을 수렴하는 한편 국회의장의 요청과 원내대표 간 합의라는 점을 고려해 찬성 의견을 나타냈습니다.


김진태 법사위 제2 소위원장이 28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 법안심사제2소위원회에서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2017.11.28/뉴스1 <저작권자 © 뉴스1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변호사 '밥그릇' 챙겨준 법사위…법안 '밥그릇' 챙기기에도 열심

결국 세무사법 개정안은 '법사위 고개'를 넘는 데 실패했습니다. 법조인 출신이 다수인 법사위에서 예상됐던 결과이긴 합니다. 연간 1조원대에 이르는 세무 시장을 놓고 변호사와 세무사 간 '밥그릇 싸움'에서 변호사의 '밥그릇'을 챙겨준 셈입니다.

국회 안팎에서는 변호사와 일전을 준비 중인 또다른 '사짜의 전쟁'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현재 변호사만 할 수 있는 특허침해소송을 변리사도 대리하도록 하는 변리사법 개정안이 산업통상자원위원회 계류 상태입니다. 또 노무사, 공인중개사 등을 두고 변호사의 권한을 축소하는 움직임도 지속적으로 전개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모든 법안들이 법사위를 거쳐야만 하는 입법 환경에서 전쟁의 승패는 이미 정해진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법을 만드는 입법부의 특성상 법률 지식을 갖춘 법조인들이 국회로 진출하는 경우가 많지만, 국회에서 다뤄지는 법안이 변호사와 다른 직역 간 영역 다툼에 관한 것이 되면 특정 직역에 유리한 불공정 경쟁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변리사나 세무사 등 다른 전문직 업계에서도 자신들의 입장을 보다 잘 대변해줄 수 있는 국회의원 배출을 고민한 지 오래지만 '기울어진 운동장'에서는 이마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물론 법사위가 비정상적으로 법안 처리를 지연시키면 직권상정을 통해 법사위 의결 없이 본회의에 상정할 수 있는 '패스트 트랙' 제도가 있습니다. 이번 세무사법 개정안이 그 대상이 될 뻔했으나 법사위의 '상임위 이기주의'도 만만치않았습니다.

이날 법사위는 세무사법 개정안의 의결을 또한번 보류한 후 국회 일각에서 제기되는 직권상정 요구에 대해 "법사위 관행 상 받아들일 수 없다"는데 의견 일치를 봤습니다. 

한 법사위원은 "그동안 법사위가 만장일치로 통과되지 않는 법에 대해서는 계속 심사하고 시일이 지나면 자동폐기했다. 모든 국회가 다 그랬다"며 "법안을 찬성 통과시키는 것도 필요하지만 법사위의 권한을 무력화하고 직권상정하면 다른 모든 법안들을 (직권상정으로) 가져가는 현상이 발생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국회의장에게)법사위가 강력하게 계속심사하겠다고 이야기하고 (직권상정 요구를) 법사위원 전체가 좌시하지 않겠다고 이야기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즉, 법사위의 '밥그릇'을 국회의장이나 다른 상임위에 뺏기는 일은 절대 없어야 한다는 다짐입니다.


 
  • 법안
  • 팩트체크
  • 데스크&기자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