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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한중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8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연설을 하고 있다. 미국 역대 대통령 가운데 트럼프 대통령의 국회 연설은 5번째로 1993년 빌 클린턴 대통령에 이어 24년 만이다. /사진=뉴스1

8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북한 비판과 대북 경고에 중점을 뒀다. '전쟁', 선제공격', '군사옵션'과 같은 직접적인 대북 강경 발언은 자제했지만 김정은 정권을 직접 겨냥한 인권 비판은 향후 북미 간 갈등을 증폭시키고 우리 정부의 대북정책과도 충돌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겼다는 평가다.

트럼프 대통령은 연설 전반부에 피로 맺은 한미동맹을 강조하고 한국전쟁을 극복하고 경제성장을 이뤄낸 '한국의 기적'을 찬사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한반도 주변에 배치된 항공모함 등을 언급하며 "저는 힘을 통해 평화를 유지하고자 한다"며 "한국이 어떤 나라보다 더 잘되길 원하고 이에 대해 많은 도움을 드리고 있다"며 대한 방위공약을 강조하기도 했다.

연설 중반부 이후부터는 북한 정권에 대한 작심 비판으로 채워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의 기적은 자유국가의 병력이 1953년 진격했던 곳, 이곳으로부터 24마일 북쪽까지만 미쳤다"며 남한과 북한을 극명하게 대조했다. 그는 북한 노동자들의 장시간 무보수, 북한 주민들의 기근 사망, 5세 미만 영유아들의 발육부진·영양실조 등 북한 실태를 구체적으로 거론했다. 특히 △조부가 반역죄로 고발당해 10년간 수감생활을 한 9살 소년 △김정은의 삶에 대한 세부사항을 잊었다는 이유로 학교에서 구타를 당한 학생 등 다양한 인권유린 사례를 들어 북한이 "교도국가", "종교집단처럼 통치되는 국가", "악당체제"라고 일갈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같은 김정은 정권의 불법성을 이유로 세계가 북한의 고립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책임지는 국가들은 힘을 합쳐 북한의 잔혹한 체제를 고립시켜야 한다"는 주장이다. 직접적으로 '선제공격' 등을 말하진 않았지만 전날 정상회담에서와 마찬가지로 항공모함 등을 거론하며 힘의 우위를 강조했다.

이같은 남북한 묘사는 미국의 기존 인식과 다르지 않다는 점에서 식상하단 비판도 일부 제기됐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 교수는 "미국 대통령이 한국 국회에서 연설을 할 때는 감동을 주는 메시지가 있어야 하는데 보이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어 “전반부는 북한이탈주민이 기자회견하는 느낌을 받았다”면서 “성공한 한국, 실패한 북한을 미국 대통령이 일일이 열거하는 것은 품위에도 맞지 않고 한국과 북한에 대한 이해를 과시하려는 것 자체가 그만큼 남북한을 잘 모른다는 반증이다. 힘을 토대로 강력한 대북정책을 펼치겠다고 한 후반부는 기존과 같은 내용”이라고 지적했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이 이례적으로 한국 국회 연설에서 북한 인권을 정면 비판한 것은 미국의 최근 대북정책 흐름을 보여주는 것이란 분석도 많다. 최근 미국 상원에서 '웜비어법'이 가결되고, 미국 하원이 태영호 전 영국주재 북한공사를 청문회에 증인으로 불러들여 인권 실태를 청취하는 등 미국 내에서 북한 인권에 대한 비판이 확대되고 있다.

우정엽 세종연구소 연구위원은 "북한이 자국 국민을 보호하기는커녕 유린하고 있다면서 '보호책임'(responsibility to protect)을 언급했는데, 이는 시리아 공격에서처럼 타 국가의 개입을 정당화하는 근거로서 쓰일 수 있다"며 "북한에 대한 군사개입을 정당화할 수 있는 명분을 핵미사일 개발로 인한 안보위협뿐 아니라 인권 영역까지 넓힐 수 있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어 "북한 고립은 중국과 러시아뿐 아니라 우리나라에게도 해당된다"며 "강한 용어를 사용하지 않았을 뿐 남북대화를 원하는 우리 정부에게 편한 내용이 아니었다"고 덧붙였다.

조한범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북한 정권과 주민을 분리하는 화법은 트럼프 대통령이 최근들어 처음 쓰는 것인데 사실상 '레짐 체인지'와 내부 붕괴를 염두에 둔 얘기여서 문재인 정부와 입장이 다르다"고 분석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전날 북한과의 대화 가능성을 언급하다 다시 강경노선으로 돌아서면서 빠른 시일 내 북미 간 직접협상이나 남북대화 성사 등 대화국면 전환이 이뤄지긴 어려울 전망이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이 '한반도 전쟁' 등 돌발발언을 자제한 대신 우리 정부도 남북대화나 평화체제 등 언급을 줄이는 선에서 한미 양측이 접점을 모색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우 연구위원은 "북한이 당장 비핵화 협상 테이블로 나오지 않더라도 미국은 북한 봉쇄에 나서지 비핵화 조건을 낮춰 협상의 여지를 주지 않을 것이란 입장을 밝힌 것"이라며 "북한도 무조건적 협상에 나설 가능성이 낮아 당분간 북미 간 협상이 이뤄지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양 교수는 "북한은 트럼프의 아시아 순방과 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정상회의가 끝난 후 종합판단하면서 대응수위를 조절할 것"이라며 "북한은 '잔혹한 독재자'란 언급엔 말폭탄 수준에서 대응을 할 것이고 문재인 정부가 트럼프 대통령의 강경정책을 그대로 추종했다면서 비판에 나설 가능성이 있다"고 예상했다.